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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이 ( 행18:1-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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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이 ( 행18:1-11 )

주하인 2007. 10. 21. 10:04

제 18 장 ( Chapter 18, Acts )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안식일 마다

빼놓지 않고

끝까지..................

평일에는 아굴라 등과 장막을 만들고..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온통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데

온 정성을 다 쏟는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고린도 교회에서

아직도

두려워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껏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 일에 전념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전에도 돌맞는 일이 있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열심을 내어 주님의 전도를 행해왔다.

 

 그런데..

새삼

왜?

뜬금없이

꿈에서 나타나

큰 일을 행할 사람에게 하듯이 그렇게

'두려워 하지 말라'

'잠잠하지 말라'

'말하라'..........라고 말씀하실까?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위에서 나오는 궁금증 들이 연결�다.

왜????????

 

우선 나에게 주시는

큐티적 말씀, 개인적 권면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

- 주하인 !    웬지 알지?.. 감사하지요..하나님 -

 

 다른 것은

사도 바울께서 늘 쫓기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위로차 오셔서

이 기회에 이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또 다른 하나는

바울 님께서 알게 모르게

내적인 흔들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

 난 처음에 읽을 때 여기에서

오늘 말씀의 이유를 캐취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입장에 비추어 보는 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관상하는 첫걸음이다.

특별히 나는 그렇다.

참 잘 나가다가도 갑자기 '멍~ 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다른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다.

그래야 주님께서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하는...

이것이 옳은 생각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진한 환란과 고난 속에서 견뎌 오다가

갑자기 편해지고 고민이 없어지며

주님이 기쁨이 날 사로잡아 편안해질 때

또 안절 부절 못하여 불안해 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그럴 때

어떤 일인가 해치우려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쉼을 얻기 위해 레져로 돌리려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울님께서도 혹시 있을 그런 마음의 변화를

주님께서 미리 단속하기에

상황에 맞지 않는

비전 속에서

'내가 함께 하리라'는 언약의 거창한 말씀을 허락하시지는 않았을까?
그 분은 훨씬 덜 했겠지만

특별한 주님의 저런 사랑으로

그 대단한 일을 해 낼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으로

편안함의 위험함

잔잔함의 더 어려운 연단임을

넌지시 보여 주시며

위로하시는 듯도 하여 감사하다.

 

 위에 논리를 전개한 바

평안함의 위험함,

반대로 보면

환란의 유익함은

' 이 성중에 해롭게 할 자가 없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해롭게 할 자가 없다는 데

비젼으로 나타나셔서

내가 힘께하리라... 는 희한한...

 

 한편으로

사도 바울의 인생의 그 힘있음.

그리고

위의 내용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다음에 답으로 나온다.

 

'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

 

난 그렇다.

주님의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는 싶다.

그러나,

내 자식도

내 아내도

내 모든 인연을 포함한

내 삶도

내 가진 것도....

아직 그냥 유지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

 

늘 그러니 이러한 두 가치 속에서 부딪혀 왔었다 .

솔직히 말하면

이제

세상적 가치와

하나님 일이라는 절대적 과제에서

주님 쪽으로 60% 이상 - 더 될라나? - 기울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 언급한 그 '멍한 상태'는

내 내면에서 두 가치에 대한 내 어리석은 흔들림이 그리 유발시키는 것 만 같다.

 

사도 바울님은

온전히 주님 만을 보신다.

그의 전 인생이

온전히 주님 만을 위한 삶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삶이었지만

그게 나에게 적용시키면 전혀 아니다.

 

주위 대단하신 분들 - 선교사님 들.......- 중에

그러하신 분들을 뵈면

참으로 존경심을 금할 길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저럴 수도 없고

저리하고도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땅위의 삶이  

바울 그 분처럼

오직

주님 만을 위한 삶,

그게 비록 선교지의 처절한 삶이 아니어도

이 일상에서

주님 만을 위해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은

오늘 그러신다.

 

네가 사는 삶에서도

온전히 나를 의식하며 살 수 있다......고.

오늘

일요일

아침 예배를 마치고

세미나 갔다 오는 동안

주님을 위해

날 내려 놓을 기회는 어떠한 것인가 한번 기대하며 돌아볼 예정이다.

 

한편으로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루 임을 깨닫는 하루가 되길 기대한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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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   현 상황이 그런가?

 

있는 당위성이 고린도 교인 들 중에 필요한 것 처럼 날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이곳에 있어서 이신가?

 

 

기도 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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