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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없는 천국은 지옥이다 ( 시 23:1-1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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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없는 천국은 지옥이다 ( 시 23:1-12 )

주하인 2010. 3. 11. 11:03

제 23 장 ( Chapter 23, Matthew )

 

주여

칠흙같은

이 세상에

주님 만이

유일한 등불되게 하소서

 

주여

자주 넘어지는

이 부족한 영혼의

나아갈 길을 밝히소서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모든 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이고 원리이지만

그들이 지키길 힘들 것이지만

제자될 자들은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권유하시는 듯하다.

 제자될 자란 누구인가?

그냥 구원 받고 세상에 만족하고

오직 관심이 땅의 축복에 머무는 자들을 말하지 않으신다.

더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아는 자들,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는

좁고 힘든 문을 가려 애쓰는 자들,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 하는 자들,

주님의 주시는 평강의 기쁨을 아는 자들,

천국의 삶, 영생을 위하여

세상은 약간 놓을 줄 아는 자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려는 준비가 되어가는 자들,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자들... 을 의미한다.

 그들은 아직은 '무리'에 속해있는 듯

세상의 관심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지만, 아니 못했지만

결국 주님의 뜻을 따라 나설 자들이다.

현재는 무리에 있을 지 모르지만

결국 제자의 무리에 있어질

모든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러시는 것 같다.

'주하인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제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자들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라.

교만하지 말아라.

조금 더 겸손하라

예수님 만을 쳐다보아라.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을 네 지도자로 삼아라'

 

 지도자.

지금 세상은 '지도자'가 없는 세상이다.

아버지도 권위가 없고

어머니도

대통령도

스승도

그 아무도.. 권위가 없다.

자신들의 감각 만이 최고의 지도자처럼 산다.

그러니 오죽 했으면

'네 생각대로 해... ' 가 광고 카피일까?

그게 정상인 것처럼 산다.

힌두교의 '다원주의 '가

현대 세상을 지배하는

이 포스트 모더니즘적 생각의 근원이다.

수억개의 '신'이 존재하는 ..

그러다 보니 '편하다'

어느 것하나 죄일 것이 있던가?

지금의 사회현상.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으로 가는 예가

'김길태'  '조두순'.........같은 자들이 아닌가?

이들은 가르칠 누가 있는가?

 개인을 넘어서 조금 크게 보면

'집단 구타'  ' 중학생 졸업식'..

더크게 보면 '집단이기 주의 '에 의한 정쟁들

세종 시 ..

책임질 자들이 '자살'로 손 쉽게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들...

 이것이 모두

자신의 감정이 최우선이고

자신이 '神'인

지도자 없는 세상 탓 아니던가?

 지도자,

잔소리할 사람 없는 세상은

편하고 맘대로 하니 '천국'처럼 보이던가?

지금 세상이 천국이 맞는가?

자신은 천국 처럼 자유롭지만

주위를 보니 '지옥'이 아니던가?
 늘 개탄하지만 천국 같은 지옥의 증거는

산부인과를 찾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쉽게 본다.

그 연령이 낮음과

姓的 질병의 심함에서 본다.

 

 지도자.

존경 받는 지도자,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는 지도자가 있음은 얼마나 행복이던가?

 사람들은 그토록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성철 스님'이나

' 김추기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왜들 그리 국가적으로 슬퍼했던가?

그들은 존경 받을 행태를 보였던 '큰 자'들이었기에 그렇지 않던가?

이 들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맘대로 행동을 해도

마음 한 구석에는 '지도자'들을 그토록 그리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중적 사고',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이 어떤 깊은 인격적 감화를 받아서 그러함이 아니다.

단지, 매스미디어에서 그들의 행적을 포장하고 방송하면

그들은 단지 자신의 '감정'에 치받쳐서

집단적 흥분형태의 모임을 가지다가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사라진다.

 이런 예는 '고 노대통령' 

그 분, 그리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국가적 광풍처럼 ......

심리적 분석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이것은 '지도자 '부재를 반기는 세상이면서도

'지도자'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는

영혼의 갈급함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그들 어리석은 군중들의

빈 영혼, 갈급한 영혼, 왜곡된 영혼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지도자.

그렇다면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행동과 생각이 존경받을 만해야 한다.

당연하다.

겸손해야 하고

생각이 깊어야 한다.

낮아짐을 기뻐해야 함이 영혼에 배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예의 K추기경, ...등은 우상이다.

주님 예수님 이외의 그 어떤 자도

진리가 될 수가 없다.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기대함은

어느 순간까지다.

마치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너머 전문의 되기 전까지

열심히 스승 아래서 배우고 난 후

스스로 진료를 행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하나님',

예수님의 행적에 투영된 하나님 만이

바라보고 나갈 진리이실 뿐이다.

 

 나.

난 지도자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매일 매일 그러려 노력하고 있다.

몸부림 치고 있다.

어제 하루 말씀 올림은 여러 이유로 해서

불가피하게 빠드리었지만

말씀 묵상은 최소한 빠드리지는 않했다.

주님은 내 지도자다.

나 그 분을 바라보고 나간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려 애를 쓰고

그 분이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느끼려 애를 쓰고

그 분이 행하신 느낌을 이해할 애를 쓰고 있다.

말씀을 내 흔들리지 않는 기준으로 삼아 가려 애를 쓴다.

 아직 기도의 분량 적고

어리석은 내 심령으로 인하여

더욱 열정적으로

주님 기뻐하실 만큼

그 분을 내 지도자로 철저하게 기뻐 받아들여

가르치시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난

그 분이 내 지도자이심을 기뻐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도자로서의 나.

아주 아주 조금씩이지만

난 말씀 안에서 균형잡힌 사회인으로서

이웃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임을 기뻐하곤 있다.

자식으로서도

형제로서도

그리 인정할 만큼은 아니어도 아주 아주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가족 안에서도

아내의 남편으로

둘째 아들의 아버지로서는

이전 보다는 조금 더 인정받아 가는 모습으로 있고

첫아이에게도 나 나름대로는

정제된 모습으로 인내의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은 건널 길이 멀은 것만 같다.

기도제목이다.

 아이는 '상처가 많다.

더구나 새로운 것에 대하여 받아들이는 취향이 강해서 인지

권위에 대하여 그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추세가 많았고

그것은 권위주의로 자란 나와의 갈등의 소지가 많았다.

그 가운데의 갈등.

한동안 주님은

나로 하여금 '가만히 있으면서 기도만 하는 ' 자로서의 시간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늘 내 마음 속의 갈등은

가만히 있음과 가르침 사이의 갈등이었다.

위에 썼지만

'지도자'의 부재는 스스로의 영혼의 굉장한 괴리를 유발하여

사회적 병리 현상까지 가져오는 게 눈에 보이지 않던가?

 기도하면서 지도함.

정답이긴 하지만 그간은 갈등의 깊은 골과

아이의 굳어진 생각

내 급하고 정리되지 않은 직선적 어법으로 인한 갈등으로

가능하면 가만히 있었다.

 어제 그제는 TV에서 인터넷 중독에 대하여 나온다.

조심스레이 권고했다.

아이는 반발하려하고 부정하려 한다.

부정할 아버지 보다는

사회의 큰 어른이 이야기 함을 전제로

'권고'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아이는 가만히 듣는다.

대화가 끝나고 들여보낸 후 난 많은 시간 잠을 들지 못했다.

생각이 많다.

 비교적 덜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이 주모의 가정에서 조차 이런 아픔들이 있고

신 구세대의 갈등이 깊을 정도로

'다원주의'의 파고듦이 큰데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

예수님의 이름 만 아는 기독교인들

알지만 아직 피가 뜨거운 청춘들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어찌 살것인가 걱정이 된다.

 기도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늘 주님은 나의 희망이시고 탈출구이시다.

그 분은 그 분 앞에 내려 놓을 때

날 확실히 인도하실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지도자 없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지옥이다.

지옥을 살아가며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잘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 .

날 위해 돌아가시고

날 위해 다시 부활하신 그 분.

그 분의 말씀을 날마다 순종하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적용

1.  지도하고 권고하는 어른으로 살도록 하소서.

 주님.

 절 혼내고 야단하는 괴팍한 자가 아니고

 가르치고 권고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필요합니다.

 도우소서.

 

2. 지도자이신 예수님을 기뻐한다.

 난 행운아다.

 기뻐하는 하루가 되리라.

 

3.  가르칠 자는 가르친다.

 예수님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온유와 절제로 권고한다.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병으로 수술한

 기독교리더의 딸을 권고했다.

 그는 내 앞에서 밝은 얼굴로 회개한다고 했다.

 내 의사로서의 자리 잡음은

 주님의 원리에서 벗어나서는

 하나도 생각할 길없다.

 

4. 내 달란트를 감사하고

 주님을 지도자로서 내세울 기회를 기도하자.

 주님.

 이 입을 학자의 혀로 채우시고

 이 귀를 학자처럼 알아듣게 만드소서.

 

5. 성경 여덟장 읽겠다.

 말씀 묵상 만이 살길이다.

 지도자이신 주님의 의중을 아는 유일한 길이다.

 

6. 겸손하겠다.

 나의 정체는 낮은 자다.

 주님 앞에 낮은자.

 주님을 위하여 남 앞에서 낮은 자.

 

7. 비교하지 않겠다

 낮아지려는 노력도 비교하지 않겠다.

 주님의 뜻 위해 낮아질 뿐이다.

 

 

 기도

  주님.

오늘은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하여 묵상하고

그 귀한 분을 예수님으로 맞게 해주신

나의 행운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주님이 모든 자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길 원합니다.

주님.

제 거칠었던 영혼의 흐름은 아직도

주님의 말씀보다는 이전의 내 흐름을 좇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주여.

이제는 확실히 주님의 말씀이 내 영혼의 흐름의 원리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겸손하기를 선택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매시간 낮추고 낮아지고

그걸 기뻐하고 살 수 있길 소원하나이다.

아직도 내 속에 부디쳐 오는

악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부디 선생님이신 예수님.

절 성령으로 다독여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그럴 때 지혜의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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