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지난 밤의 비밀한 일(요 6:16-29 ) 본문
제 6 장 ( Chapter 6, John )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셨고
시간은 흐른다.
약속은 되어 있었을 듯,
제자들은 바다를 건넌다.
왜 일까?
그들은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바다 건너에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니..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주님을 영접하고 믿지만
주님이 늘 계신 듯한 충만함 만 있지는 않는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 안계신 밤 바다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다.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나는 시련과 고난도 있다.
왜 그러느냐 묻지마라.
제자니 그렇다.
주님의 뜻이시다.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럴 때도 가만히 있지는 말라.
노를 저어라.
열심히..
주님이 안계신 듯 허전하여도.
메마른 공허감이 있어도..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두려워 하지 마라.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곧 오실 주님을 기뻐할 준비하라.
그렇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 닮아가자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무거움도 답답함도
다
주님의 뜻이시다.
곧 다시 임하실 더 큰 주님의 풍성함을 기대하자.
기뻐하자.
주님의 뜻이다.
곧
가려던 땅에 도착할 수 있다.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제자들이 아닌 주님을 좇는 무리들은
그 밤에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짐작할 수도 없다.
그들은 그냥 평이하고 평탄하다.
주님을 쫓아 다니며 은사나 기적 만을 바라면 그 뿐이다.
주님의 제자로 다니면서 겪을 풍랑과 고난은 의미없다.
그 밤 사이에 일어났을 제자들의 심령에
아주 약간이지만 - 어디고 성장했다는 흔적이 없다. 주님을 부인하는 것을 보라. - 그들이 한발자국
주님의 뜻에 가까이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길이 이 무리 들에게는 없다.
알아도 못느꼈을 것이다.
고난은 성장에 필수다.
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보라.
그들은 열심히 주님을 좇지 않는가?
난,
기독교인이지만 어디에 속해 있는가?
아직은 덜~이지만 고난을 겪어가며 성장하는 제자 군인가..
주님을 좇기는 하지만 군중의 무리에 섞여 표적만을 바라는 자인가?
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바라기는
이제 나도
주님의 일을 하고 는 싶다.
걸리적 거리는 것 많고
어찌 할 바를 몰라서지. ..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의외로 간단하다.
그 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님의 일 하는 것이란다.
난, 잘 안믿는가?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확실히 믿었는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의 실루엣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던가?
잠시만 안계시면 전혀 믿지 않는 자들과 차이가 없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들의 실제인가 보다.
정말..
본다고 다 믿는가?
아무리 보아도 영혼에 각인 되기까지는
주님의 성령의 온전한 도움이 필요하다.
지난 밤의 고난을 거쳐 깨닫는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
그들 제자들이 예수님이 배에 올라오시자 얼마나 안도 했는가?
거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을 믿고 고뇌하고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의 성령으로 인한 극적인 간섭이 필요하다.
오늘은 일요일.
당직이라서 교회에는 가지 못했다.
아침 응급수술이 있어 방금 하고 나왔다.
예배가 그립다.
요새와서 게을러지고 정말 내가 예수님을 믿고는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수술을 마치고 마스크를 떼고 모자를 벗어 폐기물 수거함에 집어 넣으며
손을 닦고 나오면서 또 다시 슬그머니 죄책감이 들려한다.
그래.
죄책감은 옳지 않지만
그 죄책감을 통해 주님 예수님을 향한 마음으로 돌리면
건전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드는 답답함이 있어왔다.
주님은 아침 묵상에서
그 날 밤에
바람부는 디베랴 바다위의 뱃속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이시며
메마름과 안도 사이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성장해가야할 소수, 즉 참 제자가 될 자들의 필연적 모습에 대하여 보여 주신다.
예수님이
내
육신이라는 작은 배에 승선하시어야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 분이 계시지만 나태해져 있을 때는 처음은 홀가분 한 듯하지만
결국 더 큰 공허감과 답답함으로 당황한다.
주님이 오시면 더욱 큰 은혜의 기쁨으로 전율한다.
가끔 가끔 예배가 통쾌할 때가 있다.
긴 방황에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누워 있는 것보다 더욱 홀가분 할 때가 있다.
주님은 내 인생에서 이리 간섭하신다.
감사하다.
난 ,주님을 다시 내 배에 모셔드릴 기회를 묵상을 통해 가지고 있다.
좀 자주..
적용
1. 찬양 드리고 혼자라도 예배 드리겠다.
2. 성경 일곱장 읽겠다.
3. 주님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다.
늘 주님을 생각하자.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으로 보려 노력한다.
인내하고 정중하겠다
4. 지난 밤은 어려웠다.
지금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당황할 일은 아니다.
주님은 잠시 모습이 느껴지지 않을 뿐, 저기 밤바다 건너를 오시고 계신다.
5. 주님은 늘 날 기대하시고 기억하시고 계심을 잊지 말자.
6. 난 세상의 기독교 인과는 다르다.
조금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그길은 조금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크고 놀라운 비밀이 있다.
주님을 자주 내 밤배에 모시는 기적을 체험한다.
기도
주님
오늘은 주일입니다.
그럼에도 당직이라서 예배를 참가하지 못햇습니다.
지난 밤은 분만 때문에 잠도 온전히 자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피곤치 않은 것은 주님을 내 늙어가는 육신에 모셔 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는 것.
고난이지만 기쁨인 것.
주님을 아는 제자들 만의 비밀한 기쁨을
다른 분들보다는 더 크게 느끼게 해 주심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주일.
주의 날입니다.
더욱 경건히 하루를 보내길 원합니다.
그리 도우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믿자(요 6:41-59 ) (0) | 2009.01.20 |
---|---|
그도 또한 유혹이다 (요 6:30-40 ) (0) | 2009.01.19 |
저기 저편에 내 집이 있다-배려-( 요 6:1-15 ) (0) | 2009.01.17 |
이렇게 되고 싶다(요 5:30-47 ) (0) | 2009.01.16 |
진실로 보자 (요 5:19-29) (0) | 2009.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