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도 또한 유혹이다 (요 6:30-40 ) 본문
제 6 장 ( Chapter 6, John )
을씨년 스러운 달.
을씨년 스러운 은행.
차가운 겨울 바람에도
길거리의 은행은
누군가의 손이 닿지 않아서 인지
세월 모르게 붙어 있다.
그 위를 비치는 차가운 겨울의 반 달.
을씨년 스럽다.
하지만,
내 눈은 정겹다.
상황에 맞지 않는 평강은
주님의 트레이드 마크다.
현 삶은
가끔은 나로 하여금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올 정도로
나에겐 불 만족 투성이 였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내 삶에 간섭하기 시작한 이후로
그보다 더 자주
평강이 허락되고 있다.
영생.
이
평강이
끝없이 커진다 생각하니
그도 또한 유혹이다.
^^*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이게 은혜인가?
어제 당직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가 펴놓은 거실의 온수 전기 장판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워
아침에 일어나려니 못일어나겠다.
근육이 나른하게 이완되서인지 깊은 잠이 들어서
아침이 어렵다.
일어나면 개운하지만 그 나른함의 유혹은
주님의 시간을 누리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그래도 주님은 나에게 묘한 기쁨으로 채우신다.
죄송, 죄책......을 넘어서 자꾸만 '찬양'이 흥얼거리듯
내 콧 속을 흐르다 입으로 조그맣게
내 귀에만 들리고 그 귓속을 자극하는 음파는
생물학적 전기로 바뀌어 다시금 내 뇌안의 청신경을 자극하고
그로 인한 영적 각성은
다시금 내 육신을 진동하는 파동을 감지하여
대뇌 신경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하다.
그 가라앉음은 영적 고요함을 깨닫도록 날 자극하고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평강'의 존재함,
즉,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의 실체를 깨닫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ㅎㅎ
아주 적은사실을 민감하게 깨닫고 그것을 확대 포장하는 게
내 특기다. * ^^ *
그런데, 말씀과 절묘하게 일치하도록 깨닫는 시간이
묵상의 그것과 들어 맞는데
또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코 감동하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적은 시간,
죄송스럽게 버스안에서
반은 머리가 라디오 속으로 들어가 있는
그 불경한 시간 중에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영생'과 '생명의 떡'이란 곳에 머물게 하신다.
내용이 그것 밖에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럴 때 말씀에 대한 부담감이 커진다.
가만히 묵상을 한다.
주님을 연상한다.
'영생'
전에도 묵상을 했지만,
이 고단한 삶 - 난 그랬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매일 눈 뜨기 싫은 때가 많아 밤 시간이 좋았다 . .. - 을 영원토록 유지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지옥이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주님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 생각으로 묵상이 무거워 진적이 있다.
그래서, 불경하게도 '영생'의 단어 앞에 오면 가슴이 답답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짧은 묵상임에도 다르다.
어떠한 묘한 확신이 스친다.
당연하지만, 내 가진 고민이 해결되고 누리는 게 '영생'의 진짜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지.
영생에 대하여 묵상을 하면서 머리 속이 아닌
어떤 실체적 확신을 원하여 왔다.
아주 뚜렷하진 않지만, 난 기쁘다.
그것은 아마도 세미하고 잔잔한 느낌으로 날 느끼게 하여 주시는
어떠한 분이 손길이 있으신 듯하다.
내 잘못과 잘함과 상관없이 ..
오늘...
콧노래의 찬양이 날 휘어감싸며
나의 영혼이 맑아지며 살아가는
영원한 삶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기쁘게 받아 들이게 되고 있다.
그래서,
아침이 기쁘다.
변화없는 또 다른 다람쥐의 쳇바퀴에
주님은 그와 다른 공간에서 돌아갈 영생을 느끼게 하신다.
적용
1. 영생.. 다시금 묵상한다.
내 회한과 연민과 부정감이 없는 세상의 영생.
주님과 함께하는 그 고요한 열정의 영생..........묵상한다.
2. 성경을 일곱장 읽겠다.
말씀이 살길이다.
3. 이웃에게 말씀을 전하겠다.
한분 이상
4. 영생에서 없어질 고질적 고통을 상상한다.
. 허리가 안아프다.
. 마음이 즐겁다.
. 편하다.
. 기쁘다.
. 즐겁다.
. 개운하다.
. 시원하다.................................................................
5. 영생에 들어가기 전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
기도
영생.
영원한 생명의 삶
그 삶이 우리가 가졌던 모든 결점들이 제거 된 후 산다 생각하니
생각 만 해도 기쁘려합니다.
주님
저 허리 자주 아픕니다.
아시지요?
그게 안아프고 편안하다니요.
얼굴이 자주 상기되어 불편합니다.
그도 그렇지 않을 거라니요.
마음 속도 가끔은 흔들립니다.
그게 그렇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함으로
늘 채워주실 수 있다니요.
그러한 삶이 나를 영원하게 채울 수 있다니요.
제 생각과 상상보다 훨씬 큰 축복으로
내 영육이 부활되어 살 수 있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기쁘려 합니다.
실은 콧노래가 아침부터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 예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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