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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편에 내 집이 있다-배려-( 요 6: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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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편에 내 집이 있다-배려-( 요 6:1-15 )

주하인 2009. 1. 17. 11:28

제 6 장 ( Chapter 6, John )

 

 

 
세상을 살되

세상을 주유한다
어두움 뿐인 세상의 저너머
주님의 십자가가 붉으시기에

거기를 향해갈 뿐이다

지나는 자동차가 흩뿌리는
차가운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다리 동동 구르기도 하지만
잠시 서 있기도 힘들지만
그래
그들이 그러면 그러라 하자



가는 길
저 너머 저기에
저리도 보이기에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힘을 내어 간다 

저기 저 편에 내 집이 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큰 무리.

바다 건너 까지 찾아 오는 그들 무리를 보시면서

주님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나 보다.

음식을 준비하려 하신다.

지칠 만도 하신데..

그들이 속에 무슨 생각으로 오시는 지 다 아시면서

그들의 믿음없이 사리사욕으로 찾아 오심을 알텐데도

역겨워 하시기 보다는 불쌍히 여기신다.

그들의 배고픔을 불쌍히 여기신다.

 

큰무리를 내려다 보시는 주님의 눈이 느껴진다.

그 큰 무리 안에 내가 섞여 있음도 보이실까?

만일 내가 섞여 있다면..

그 큰 무리의 무리만   주님에게 보이실까?

 한분이신 하나님이 온 우주를 만들고 운행하신다.

그 분이

비록 큰 무리 속에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나라고 할지라도

모르실리 없으시다.

그 분은 무리를 보시되

무리로 보시지 않으시고

무리 속의  나와 그를 보신다.

그러기에 그 분은 그 무리 속의 '사정'과 '안타까움'을 보실 것이다.

긍휼함이 증폭되셔서 그 분은

무리를 귀찮아 하시고 역겨워 하실 일이 없으실 것이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보라,

그 분은 몰려오는 무리의 배고픔을 배려 하신다.  

 

 준비하는 과정에 빌립에게 개인 지도까지 하신다.

 

적은 육신을 가지시고

참으로 많은 배려를 하신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

주님의 많은 자비로........ 성경의 구절이 참이다.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이렇게 기적을 보이시는 주님.

오병이어의 기적.

 거두고 남은 빵이 저리 많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 빵은 참 맛이 없는 빵이다.

기왕에 저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

크로와상, 케익, 도너스........좀 좋은 것 만드시면 안되셨을까?

중동의 빵, 정말 맛없다. 

고기도 쏘스를 바르거나 고추장을 발라서 잘 구어 주시거나

튀김은 또 안 좋았을까?ㅎㅎ

 

 주님이 몰라서 그러셨을까?

정말?

시대를 넘어서는 기적을 보이시면 편할 것을...

 

그것도 배려시다.

 큰 무리가 겪을 문화적 충격...

성경에서 나오는 SF 적 현상을 통하여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을 주님이 다 하시어서

현실의 것을 포기하고 말 현대의 기독교인.. .등을 배려해서 하신 것은 아니실까?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혼자 다시 떠나신다.

외롭지만 가신다.

주님 하나님과 만의 만남을 위해..

멋진...

 

 

 

 오늘 묵상의 제목은 '배려'다.

남을 위함.

 

 엊 저녁 아들과 금요 예배를 다녀왔다.

일번가 안의 'JI'교회.

찬양이 뜨거운 성령 집회.

서울에서도 오신다.

뜨겁게 찬양을 하다가 워십을 따라 하다가 아이와 손을 잡고 하던 중

장란이 심한 아이가 팔을 휙 하고 던져

충격이 왔다.

 갑자기 뜨거움이 가라앉는다.

영적인 것이라이선지..

부족한 내 성향 탓인지 몰라도

가라앉은 뜨거움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어렵게 예배를 겨우 마치며 내 속은 멍하다.

버스타러 오는 내내 가만히 있었다.

아이가 왜그러느냐 묻지만, 대답하기가 싫었다.

팔이 욱신 거릴 때 마다 속이 상하려 한다.

주님의 시간이 망쳐졌다는 생각이 짜증으로 올라오려 한다.

 

그리고 아침.

주님은 틀림없으시다.

 

 배려.

 

조금 더 성숙한 아빠가 되었으면......

주하인.

조금 더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아이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기 보다는

조금은 참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같이 즐거워 했으면

성령집회에 다녀온 보람이 더 있었을 것을...

 

 주님은 철저히 배려하신다.

그렇듯 사람의 속이 다 보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위해 십자가를 질 운명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얼굴이라도 한번 굳혔을 것을

우리 주님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으시다.

 그 대상이

큰 무리이든

자신을 따라다니는 제자의 일원이든

수천년 뒤에 성경을 통하여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든

큰 무리에 가려  보이지 않을 듯 적은 존재인

정말 변하지 못하는 심성의 '주모 ' 개인을 위한 것이든

주님은 철저히 배려하신다.

피곤하실 만도 하신데

속이 상할 만한도 하신데

그 분은 배려를 하신다.

 

 이것 만으로도 보아 그 분 예수님은 철저히 '원죄'에서 자유로운

어린 양

주님 하나님을 위한 십자가 제사를 위한 속죄제물로서

흠이 하나도 없으신 분임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나.

주하인.

 

참으로 부끄러운 면이 많다.

지금껏

나 만을 위해

내 중심으로 살아 왔었다.

지금껏 

주님을 만남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제

더욱 성화되어 갈 것이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그게

늘 나를 위해 보이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시면

그러하겠다.

배려

남을 위한 조금의 마음 씀.

오늘 하루라도 그리하기로 힘쓰겠다.

짜증나고 어이없는 사람일 지라도 가만히 쳐다 보아 주겠다.

야단 보다는 이해하려 하겠다.

판단보다는 긍휼함을 가지려 애쓰겠다.

주님께서 도우실 줄 알기에 이런 말 쓴다.

 

성령님

도우소서.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마음 허락하소서.

내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주님의 뜻에 따르려는 아주 약간의 노력 만을 가지고

허락하시는

당신 성령님의 충만함이 제 안에 채워질 줄 믿습니다.

그 기쁨으로 전 족합니다.

세상의 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만큼 누리려 합니다.

그것도 주님이 알아서 하소서.

모두 놔버리려 합니다.

가끔은 허탈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그러려 합니다.

이제껏 그러셨던 것 처럼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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