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지나온 때는 지나온 때로 족하다. ( 벧전4:1-11 ) 본문
제 4 장 ( Chapter 4, 1 Peter )
Columbia Icefield 의 설상차.
멀리 보이는 빙하 위쪽은
미국의 central national park를 25번 수장 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수량이 얼음으로 덮여 있다한다.
이게 전 세계에서 탐을 내는
수자원 대국의 캐나다 의 모습이다.
고드름이 5월의 록키의 겨울을
맛갈스럽게 상징하고 있다.
놀라우신 주님의 손길을
그냥 입만 벌리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오우..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묵상을 하기 전
난
늘
주님의 말씀으로 내 영적 원리를 삼게 해달라는
짧은 기도와 함께 시작한다.
갑옷을 삼는다.
특별히 오랜 비난의 말투에 젖어 커왔던 자들은
자신감이 적고
마음에 혼란이 많다.
그것은
삶을 어렵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들어
삶 자체가 힘이 없어지게 한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올바른 세계관 , 인생관,
삶의 목적 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게 쉬운 얘기인가?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개개인 마다 다른 유전적 성질의 차이로 ,
더더구나 세상은 마귀의 오염으로
온통 어지러져 있는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이
영혼의 지표로 되고
영혼의 운행의 움직임의 좌표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관이자
인생관이자
올바른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썩지 않고 항상 있고 살아 있지만
그 말씀이
이지러진 주모 같은 자들의 영혼에 들어와
올바른 발아를 하기 위해서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 선택을 통해서
말씀이 우리 영혼의 갑옷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 말씀 만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그 말씀 만이 천국의 유일한 길임을 이해하고
그 말씀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의 기쁨을 체험하고
그 말씀이 모든 생각의 흐름을
하나로 물처럼 흐르는 고요임을 잊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해서는
늘 묵상을 해야 한다 .
고난은 필수다.
역경과 고난이 없는 영적 욕심은 위험하다.
고난을 통해 인간은 성숙할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깊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리가 영혼에 각인되어
온유와 겸손이
그 영혼의 향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고난을 고난으로 몸부림쳐 버리면 끝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오늘 아침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원리시기에
그 고난을 통하여
죄가 그치게 됨을 인식하고
고난이 없는 편안함은 오히려 큰 족쇠가 될 여지를 말씀하시고
그 고난을 예수님의 원리로 인식하고
그 원리를 영혼의 갑옷으로 삼는 기회,
즉,
묵상을 통한
주님의 살아계심을 확신케 된다면
- 그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이지만.. - 그것은
죄가 멈추는
주님 십자가의 궁극적 원리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게
이 짧은 묵상 구절의
말씀하시고자 하는 깊은 이유이다.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사람들은
고난 자체에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금욕주의
율법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쉽게 한다.
위의 묵상을 떨어져
이 구절만을 보면
고난 만이 육체의 남은 시간을 구원하여 살게하는
유일한 도구 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금식을 하지만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때에 맞추어
주님을 기뻐하여 하지 않고
그냥
금식을 함으로
자신의 의가 강화되는 경우를 가져오게 되고
그 안에는 기쁨 대신 강팍함이 오게 되고
자칫 영적 교만함 만 가져오는
놀라운
영적 역작용이 나오게 되기도 한다.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지나간 때가 족하다.
참
가슴이 뿌듯하기도 아련하기도 하다.
놀라운 시간을 지내왔다.
지나온 시간은
힘이 들어 견딜수가 없는 시간이기도
정욕과 방탕의 혼탁과
주님의 말씀 과의 사이에서
또한 ,
과거의 망령과
주님이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미래의 천국의 삶의 원리 사이에서
방황과 당황을 겪어야만 하는 혼란의 시절이었다.
저 구절 만 보면
지금의 내 상황이
아직도 전자 쪽에서 흔들릴 때는
질타와 깨닫길 원하시는 권고의 말씀으로 들리기도
오늘 아침 같이
주님의 말씀으로 충일한 시간은
관조의 상태로
'그래 그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의 확인의 말씀으로 들리기도 한다.
지나간 때는
지나 보내야 한다.
그 때는 아픔의 흔적으로 족하다.
아픔은
미리 말씀하셨지만
영적 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다.
어쩌면
그 고난이 없는 자들은
영적으로 주님께 약간은 도외시 받는 자가 아닐까 하는 것처럼
고난은
오히려 감사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고난을 건너 온 후는
더 이상 겪을 이유는 없다.
그 때가 족하다.
지나온 때가 족하다.
이제는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듯
지나온 때는 지나온 때로 족하다.
이제는 새로운 삶의 원리로
내 마음의 갑옷을 삼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으로 날 굳게 해야 한다.
어제 저녁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시차 적응 문제를
별로 겪지 않게 하신 탓으로 - 아마도 늘 아무 때나 일어나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직업 탓이리라 -
진료를 마친 오후에
아내를 데리고 시골로 향하였다.
5월 8일 어버이날 내려가지 못할 이유라
다행이도 적당한 선물거리를
그 곳에서 준비해와 얼른 내려 갔다.
가면서 가면서 기도했다.
'아무렇지 않게 해달라'고. ..
늘 고향에 가면서 부닥칠
감정적 혼란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랑의 감정으로 감쌀 수 있기를 ..
집에 들어서
아내와 난
일부러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엉..
강골 강팍 불신자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같이 무릎을 꿇고 계신게 아닌가?
물론
그분의 기분이 웬일인지 하늘을 날아다니고 계신 것도 이유지만
하여튼 처음보는 광경이다.
ㅎㅎ
예전 같으면
그 분의 속을 들여다 보며
분석을 하고 있을 나는
이제는 그분의 그러한 잦은 분위기 반전..ㅎㅎ..이
지나온 때의 이해할 만한 것으로 인정이 되었다.
마음이 편하다.
주님은 이러셨다.
늘
조금씩 내 마음이 지평이 넓어지게 하시고
그 것을 보여주시고
말씀으로 나타내 주신다.
난 ,
지나온 때는 지나온 것으로 족하게 할 수 있다.
비단
그리 좋아 하지 않던 부친의 문제를 떠나서
생각이 많던 많은 부분에서
주님의 원리로
난 슬슬 갑옷을 입기 시작한다.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ㅎㅎ
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러한 원리는
어찌보면 아이와 같고
어찌보면 너무 이상주의자 같이 보일 지도 모른다.
그들,
세상에 아직도 뿌리를 깊게 박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불신자들이던, 예수님을 믿는다고 표방하는 자이든
이상하다 질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들의 질타는
부끄러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기회이다.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남들은 세상에 열심히 쫓아도
그래서 비록 내 속은 손해 보는 듯 타들어가도
오히려
그들의 원리를 쫓기 보다는
기도원에 가서
교회에 가서
한번이라도 더 기도하여야 옳다.
그게 미련한 듯
세상이 손가락 질 해도
근신할 마음을 가질 참이다.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사랑하고
봉사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
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매사에 주님을 의식함으로 하여야 한다.
그러함으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듯
말을 하려 노력하고
주님이 주신 힘으로
열심을 다하는 것을 보이려
최선을 다하는
봉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적용
1. 말씀 앞에 겸허하자.
캐나다의 놀라운 풍광은
안목의 정욕을 최대한 자극을 하고
그것은 취미에 불과할 수 있는 사진 촬영의 기쁨을 충족시켜
자칫 주님의 말씀이 자꾸만
옆으로 옆으로 밀려날 위험성 앞에 있게 했다.
그래도
의지를 들여 아내와 기도하고 예배한 보람은 있지만...
그게 오늘 말씀의 단 맛으로 나타났다.
감사하다.
2. 말씀 여섯 장 읽겠다.
3. 고난을 기뻐하겠다.
지나온 일은 내 자원이다.
그 자원을 통해
난 내 영혼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넓혔다.
말씀의 단 맛을 알게 하고
기쁨의 폭을 넓혔다.
그 기쁨은 다양한 방향으로 창조의 가능성을 넓혔다.
고난은
과거는
기쁨의 자산이자 든든함이지
결코 두려움이나 자기 비하의 어두움이 아니었음은
오늘 말씀으로 뚜렸해졌다.
4. 남을 위해 오늘 하루 눈을 돌리겠다.
5. 근신하는 삶을 산다.
말을 줄이겠다.
6. 기도한다.
수요 전인치유 예배에 참여한다.
리딩은 아니지만
가만히 가만히 있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겠다.
주님의 뜻이다.
7. 주님의 말씀으로 말씀하듯 한다.
주님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보내겠다.
오늘 오후의 수술이 오래 걸릴 수술이다.
주님이 허락하신 힘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서려는
저의 실낯 같은 마음이
주님 앞에 상달 된것 만 같습니다.
지난 일주일
말씀을 정리하지 못하고
막연히
주님 말씀만 읽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놀라운 풍광에 정신을 빼앗기는 가운데
가지고 있던
죄송한 마음이
주님께서 받아 들여주신 것 같아
참으로 기쁩니다.
주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을 내 영혼의 원리로 삼고
주님이 허락하셨던 고난은
제 영혼의 갑옷을 삼을 수 있는
긍정적 도구로 삼게 하소서.
지나간 때는 지나간 때로 삼아
더 이상 과거의 것은 자산이 될 뿐
날 흔드는 어리석은 도구가 되지 않게 하소서.
마치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고난의 무덤을 통하여
새로 부활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시되
지난 고난은 묻어 버릴 하찮은 것으로 되지 않게 하사
주님의 십자가의 그 감사함을
감사함으로 늘 가지게 하소서.
고난은
주님의 십자가의 원리인 줄 압니다.
잊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성령의 충일한 축복의 힘을
제 영혼에서
잘 조화케 하소서.
우리 주께서 주시는 지혜와 놀라운 인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하나님의 임재함으로서만
가능하신 원리인 줄 아오니
주여 절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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