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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끝까지 사랑이시다 ( 출 4:10-1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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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끝까지 사랑이시다 ( 출 4:10-17 )

주하인 2008. 4. 1. 09:25

제 4 장 ( Chapter 4, Exodus )

주님 만 계시면

어디라도

천국입니다.

주님 만

바라봅니다.

주님은

부족하지만

사랑하시니까요.

 

 

 

 


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말에 능치 못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기가 말도 못합니다.

어제 같은 경우가 닥치면

더욱 더 그랬습니다.

주님 말씀이 있으셔서 순종은 했지만

지금도 그렇습니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평생을 짊어지고 가는 내 삶의 제한.

 

그것 마져 주님이 다 하셨다.

그리 써 있다.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눈 밝은 것도

소경도...

 

그 속에 들어가 당할 때는

죽고 싶도록 어렵기도 하지만

이제 돌아보면

역시

주님의 뜻 안에 있고

그 고난과 환란은

나에게 유익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

주님의 오늘 말씀,

'나 여호와가 아니냐'

다소

속상할 때도 있을 표현이

그 허락하고 주장하신 고난을 한걸음 넘어서 돌아본 지금

끄덕여진다.

그 분

그 하나님이

이제 가라 하신다.

아직도

얽힌 혀가 풀리지 않았는데

가라하신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힘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다.

 

 

 
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의 혼란이 이해가 된다.

 

 출애굽의 모세가

멋진 믿음의 다른 용사들처럼

예.. 하고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핑계를 대는 모습이

오히려

내 모습을 보는 것 만 같아

공감이 간다.

 

주여..

보낼 자를 보내셔야지요.

 

그래..

이 소리에

내 모든 제한이 숨어 있음을

묵상을 통해서 보인다.

 

'나 같은 자가.. '

이 소리가

내 속에 오래 숨어 있었던 깊은 제한이다.

 모세가 오늘 그런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이것은

'나같은 자가.. .'라는 이야기와 대동 소이하다.

 

그는 40년전 왕자로서

그 동족을 향해 깊은 사랑 -실제로 사랑하는지 사랑의 의무를 행한지는 알 수 없지만 -으로

싸움을 말리다가

배반 당한 후

급전직하 한 후

그 속에 저러한 깊은 상념이 들어 앉은 듯하다.

그것은

믿음에 큰 장애가 된다.

지금껏 내 삶도

그리 큰 힘을 발휘하고 살지는 못했다.

마음 깊이는

나도 남을 위하여.. 라는 의식은 있지만

그 패배의식이 날 눌러 왔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세가

40년의 광야 생활동안

그 안에 침잠 되어 있던 갖은 오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 안에서 하나하나 씻겨 나갔듯

나도 그랬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안에 남아 있던 이러한

패배의식과 배반에 대한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여호와의 노를 발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그 분은

그냥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

왜 이실까?

왜 모세처럼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실까?

아예

여호수아 같이

다윗과 같이

멋진

단 한번의 흔들림도 없이

주님 앞에 순종하는 자들을

출애굽의 지도자로 선택함이 옳지 않겠는가?

 

 몇가지 생각이 가능하다.

 

 모세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자다.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신

다윗 조차

음란에 눈이 멀고

자식교육에 방치 상태였던 자 아니었던가?

여호수아는

인간적인 매력이 별로 없던 자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처럼

세상에 사람을 보면

아무도 선택할 자가 없음이

주님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모세을 선택하게 만든 기준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일단 한번 찍으시면

변개치 않으시는 주님.

사랑을 변치 않으시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특성 상

모세를 끝까지 붙드신 것이시다.

그 분이 그런 것을 모르시는 분이신가?

바로 전에 묵상했듯이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에

그나마 덜 죄악에 찌든 모세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순종을 제일 큰 미덕으로 삼으시는 주님이

왜 순종치 않는 그를

두 세번 째 순위의 인도자가 아니고

가장 큰 출애굽의 지도자로 뽑았는가?

 

 난 왜 이리 여기에 매달리는가?ㅎ

모세의 보이는 그 심성이

유난히도 내 속에 도는

생각의 움직임과 비슷함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 순종치 않음이 순종치 않는

주권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어제 묵상에서

뱀꼬리를 잡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그는 서슴없이 뱀꼬리를 잡는

순종의 용사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오늘 보이는 모습은

뺀질이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그 뺀질거림이

그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누구나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성장을 하였고

일취월장 몇대 믿음의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충분한 교육을 받고 컸던

그래서 양의 똥 냄새가 구수한 줄 알고 있는 

그런 귀족의 믿음의 모세였더라면

주님에게 그의 뺀질 거림은

결코 지도자로 선택 받을 가치 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뺀질 거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그의 그 모습은

주 앞에서는 뺀질거림이 아니고

가련한 몸부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상처 입은 영혼이었을 뿐임을

가련히 여기시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그러기에 그 분은

해결되지 못한 상처에 대하여

경고성으로 노를 발하셨지만

질책은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론을 붙혀서

차선을 마련해주신다.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그의 손에 너무도 익숙한

지팡이를

그의 장래를 이끌어갈 도구로 삼아 주신다.

 

주님의 놀라우신 세밀하심.

그분의 끝없는 사랑.

그 분의 철두철미하심.

놀랍다.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도 하다.

 

그게 지팡이다.

모세랑 나랑은 전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주님은

묵상 할 때마다

묵상의 내용을

내 일상에 맞추어 주신다.

 

어제

원우회장 되었다.

전혀 내가 할 달란트가 되지 못하여

수도 없이 고사했지만

나이도

병원 근무연수도

나이상 되는 자가 없다는 말에 구한 표적이

어제 아침 모세의 변이다.

지팡이 말씀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락은 했지만

지금도 나는 안되어요 하고 싶다.

'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하고 싶다.

그것마져 주님은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신다.

 아론을 붙혀 주리라 믿고 싶다.

 

늘 나를 말씀으로 붙드시는

주님을 기뻐한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을 읽겠다.

 

2. 맡기신 일에 대하여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라신 말씀을 믿는 다.

 속에서 아니라 하지만..

 백번 읽으리라.

 

3. 점심 시간 간호사들과 성경 공부 한다.

 잊었었다.

 잠시 기도하고 주님께서 할 말을 가르치시리란 것을 믿고 기대한다.

 얼굴도 마음도  입술도 주님이 인도하시기를 바란다.

 오직 저들에게 내가 아는 주님의 기쁨을 알리기 위한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4. 모세를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 이심을 믿는다.

 이제는 안다.

 내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끝까지 사랑이신 것을 ...

 

5. 난 사랑 받는 자다.

 

6.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사고 없도록 기도한다.

 

 

 

 

기도

 

 주님

희한하게도

자꾸만 미시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원하지도 않는데

여행도 가게 하시고

자격도 되지도 않는데

원우회장에 추대도 되었습니다.

부족한 절 믿고

환우분들이 많이 옵니다.

찬양을 할 때

아버지들이 좋아하고

환우들이 좋아합니다.

그 기쁨이 저에게 느껴집니다.

참 놀랍습니다.

얼마 전 부터

그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기도와

주님을 부끄럽지 않도록 실력을 늘려 달라는

스쳐지나가는 듯한 기도도

주님이 그대로 이루심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는

모세의 고백이

제 속의 그것처럼 너무나도 유사하게

느껴져 놀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제 삶을 그리도 제한하던

깊은 패배의식을 들추십니다.

그것도 모세를 통해서요.

비교할 만한 위치의 분이 아니 신 그 분이

주님 앞에서

주님께 그리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 위안이 됩니다.

주여

좋은 걸 배워야 하지만

그 좋은 것만

주님의 사랑하심이 아니고

주님의 사랑하심에는

우리의 부족함도 포함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참 기쁩니다.

전 부족하지만

주님은 놀라우십니다.

전 사랑결핍 자이지만

주님은 사랑의 화신이십니다.

주여

난 안되지만

주님은 되시는 군요.

그것도 놀랍게요.

 

제가

그 주님의 사랑 안에 들어와 있음이

놀랍도록 감사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조금 여유로와 길게 묵상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이제 곧 있을 말씀의 나눔 시간에

주님이시여.

함께하소서.

내가 아는 이 기쁨을

저들도 나누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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