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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아침 , 뜨거움으로 난 전율했다 ( 눅24:13-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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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아침 , 뜨거움으로 난 전율했다 ( 눅24:13-35)

주하인 2008. 3. 24. 10:46

제 24 장 ( Chapter 24, Luke )

 

친구가 좋다. ..

 

부활의 예수님은

오래된 친구같은 예수님의

그 반가움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예수님이

정말로 좋다.

그 분이 허락하신

성령의 충만함이

날 눈물나게 한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

자주 나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제자들 중 둘이

부활 사건에 대하여 말하고 간다.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나도 

내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의 부활에 대하여

그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을 것인가?

그 중에

예수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에게 동행하자 하셨을까?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눈이 가리워지고

심령이 둔해서 못 알아 보았을 뿐..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예수님을 내 영혼에 모시고

그 분이

그리도 말씀을 걸어오셔도

난 

기뻐하기 보다는

슬프게 있었을 줄 모른다.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
       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알기는 누구보다 잘안다.

다 아는 듯하다.

예수님에 대하여

부활의 사건에 대하여..

그러나,

알기만 안다.

믿어지질 않고

믿음으로 나타나는 찬란한 천사의 나타남이

그 영혼에 없다.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예수님의 없어진 시체 사건 만으로 보니

미련하고

믿음이 더딘 자가

맏다.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하시니라
 예수님 믿고

정말 좋은 것은

그 분은

정말 성실하신 분이시다.

 내 믿음의 상태

 내 죄악

 내 미련함

 내 무지함

 내 혼란...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으신다.

그냥 끝없이 자애로우시다.

 

또 자세히 설명하신다.

난, 이게 좋다.

 

그 분은 늘

안전한 피난처 맞으시며

그분은 피할 반석이고

따스한 날개 밑이시다.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같이 하시니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복음 서에 체크 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행적의 일부분이

엠마오로 도상의 이 사건이시다.

 

어디를 더 가시려던 것이실 까?

주님은

당신의 찢어진 몸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푸시려고

저리도 가시려는가?

밤이 오는데..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아..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은

그 분의 의도 조차

강권에 의하여 또 돌리시는 구나.

 

날이 저물어 쉬다가라는 강한 권유에

못이기는 척

유하러 들어가신다.

 

주님은 이래서 또 좋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부드러운 아버지 처럼,

다정한 형님처럼

힘들고 어려운 부분을

그냥 포근히 어루 만지신다.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그리고는

축사하신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결국 또, 갈 길을 서두르셨다.

이제야 알아보게 되었구나.

눈이 밝아져..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처음 예수님 영접하고

얼마되지 않아

청년부장으로 설교를 하던 자리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

현실 속에서의 나와

너무도 똑같은 감각을

글로바가

성경 안에서 하던 것을

희한하게 생각하며

성경의 살아 있음을

들뜬 기분으로 가르치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느끼는 실체적 현상으로서의 
뜨거움이 새삼 다가온다.

  어제 묵상을 써내려가며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의 나타난 현실 적 감각에 대하여

쓴 적이 있다.

이게 현실에서는 '뜨거움'으로 느껴진다.

그 뜨거움을

성경 안에서도 또, 뜨겁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만

최소한

나한테에도

분명코

주님은

절묘히

살아서 역사하신다.

 늘 성경은

세밀히 날 만진다.

 

 

 어제

부활에 대하여

그 실체적 현상에 대하여

아내와 잠시 대화하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위하여

일정부분 우리가 바쳐야 할 헌신에 대하여

얘기가 진행되었다.

 

 책을 읽었다.

'진짜 기독교인'

토져라는 분이 쓰신 글에도

100% 온전한 믿음을 위해서,

주님이 99 걸음 다가오면

우리가 다가가야 할 걸음

정도는  되어야  완성이 된다 한다.

우리가 일정부분 들여할 헌신에 대한 표현이다.

 

부활주일 저녁에

부활 다음날 아침을 위해

일찍 일어나길 선택했다.

'한 걸음'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주님께 바치는 아주 약간의 헌신으로 ..

그리고

아내와의 약속처럼

일찍일어난 몇십분을 온전히 '남'을 위해

특별히 '직장'을 위해 중보로 때우기로 약속하고

'샘누리 홀'에 들어 앉았다.

 몇분이 앉아 기도하신다.

 

앉았다.

깊은 몰입이 금새 이루어진다.

찬양을 인도하시는 배 대리의 연습이

내 귀를 터치한다.

중보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부터

놀라운 은혜가 날 감싼다.

 

'전율했다. '

'뜨겁다'

 

 가슴이 터질 듯 뜨거워지고

아주 오래전에 익숙했던 감각이 몰려온다.

생각이 폭이 확~넓어지며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진다.

 

" 주님의 부활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개인에 따라 실수도 , 아직은 덜 성숙함도 있을 지 모르지만

이전에 비교하여

주님의 동행하심으로 인하여

훨씬 더 풍성하고 놀라운 변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감동이 풍성해지는 체험을 초래한다. "

 

 "부활 신앙을 가지게 됨은

비록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성취는 없을지라도

그 성취가 없어도 괜찮을 듯한 평강이

그를 사로잡는

즉,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느끼는 경험으로 인하여

훨씬 자유로와지는 영적인 상태를 증상으로 가지게 되는 경험을

하는 상황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

 

" 부활 신앙은

주님이 동행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

 

"부활은 자유로움이다. "

 

" 부활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회복하는 것이고

그것은 일반적 요구의,

기도를 넘어서는

글로바의 대화하는 하나님을 회복하는 것이고

우리의 기도 수준과 인격적 도야를 전제로 하거나

감정적 승리를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고

역동감 있는 신앙을 회복하는 것으로

항상 깨어 있는 믿음이다.'

..

생각이 나도 모르게 밀려온다.

 

순간,

난,

내가 라파 팀의 찬양을 보고 있는

患友의 입장으로 느껴졌다.

사방으로 막힌 입장에

유일한 탈출구가 주님 밖에 없을 그들에게

지금 현재

벅차듯 터져오르고 있는

이 하나님의 평강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찬양의 리더로서 할

마음의 자세이고

이 벅차오름의 실제 ,

부활의 예수님의 감동,

찬란한 천사의 나타난 듯한 부활의 감동을

이들에게 공유시키면

그들에게 치유는 문제가 아닐 듯한

확신이 마구 올라온다.

 

 누가 뒤에 들어와 앉는다.

HS형.

직원이 아님에도

병원에 공사 수주하고 작업하던 중에

아침 예배를 드린다.

노는 것 좋아하기가

나보다 몇배는 더해서

예수 영접 자체가 또하나의 기적일 듯한 분.

그 분의 기도하는 옆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에서 울컥 하고 밀려오는

감동이 있다.

 

 

 아침이

이랬다.

감동이었다.

 

글로바의 뜨거움이 실체화되어 나타난다.

부활하신 주님을 느끼고 싶다는

어제의 묵상과

아침에 약간 일찍일어나는

아주 적은 헌신으로

주님은 당신의 부활의 증거를 또 이리 보이신다.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그 다음날 아침에

엠마오로 도상의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

 

 

 

적용

 

 

1. 감사하는 하루가 되겠다.

 누구나

무슨일에나 감사하겠다

오늘 하루는...

 

2. 주님은 기쁨임을 이해한다.

 

3. 언제나 주님은 계셨지만

 이제야 주님을 다시 느낀다.

 부활하신 하나님

 제 영혼에 놀랍게 응답하소서.

 

4. 부활의 하나님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느끼는 것임을 인식한다.

 

 

5. 성경 여섯 장 읽겠다.

 

6. 아버지 학교 참여한다.

 

 

 

 

기도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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