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지금은 아니나[딛3:1-7] 본문
이젠
그래도
봐 줄만 한 것 같다
그게
지금의 나를 향한
내 생각이다
이제 조금 후
주님 예수 보혈과
성령님의 매일 도우심과
하나님의 긍휼하시었음이
나를 향하셨음을
완전히
받아 들일 수 있게 되면
저 문은 활짝 열리고
난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가게 될 것을 기대한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있으면
난 곧
그리 될 것임을
기대한다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나는
'전에는'
어리석었다.
잘 순종하지 않고 권위를 혐오하던 자였다 . ^^;;
속은 자
과거의 소리, 사단의 소리에 속은 자 .. 맞다.
정욕적인 삶을 추구해서 재미만 추구하고 허탈하게 살았었다.
악독과 투기를 일삼았었다.
악독, 투기 란 표현이 잘 정서에 맞지는 않아도 난 조금 사나운 자가 맞았고
교만에 상대적으로 질투가 많은 자였었다.
피차 미워하는 자.
증오심이 많고 분노를 잘 터뜨리는 자고
남을 낮게 (낫게.. 가 아니다 ㅜ.ㅜ;;) 보고 스스로도 결핍감을 많이 가지고
나와 타인을 미워하는 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내가 싫었었다 .
그러니 삶이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었기에 재미를 추구했지만 흥미를 끌만한 게 없었기에
목표가 없었고 그래서 힘이 없었다.
체격은 좋고 타고난 유전적 성향으로 힘이 넘쳤으나
힘이 없었음은
그 삶이 얼마나 갈등 덩어리 였었는지 반증하는 것이다.
삶은 사뭇 '지옥' 같은 곳이었었다.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런 내가
지금은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소망을 이야기 하고
기쁨을 느끼며
샬롬을 입에 달고 다닌다.
늘 그렇지는 못하지만...
그거... 아직도 내가 원치 않는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때
그 마음 속의 어려움, 현실의 크게 다가옴과 비교될 때에 잊어 버리기도 하지만
다시 내가 하나님의 평강 안에 들어올 때는
상대적으로 '감사'가 증폭된다.
아니.... 그 비율이 점차로 늘어난다.
내 하루를 보면 이제는 그런 감사의 시간 들이 점차로 늘어나게 되고 있음이
또한 더욱 감사하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상황이
이 한 인생을 살아오며
완전히 극명하게 대비되며
나에게 경험되어짐은 왜이던가?
당연히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즉, '오직 그의 긍휼함을 따라'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육화 肉化' 시키셔서
그 모진 '십자가 고통'을 겪게 하심으로
나에게 '중생의 씻음'을 허락하신 탓이 아니시던가?
오직 예수,
오직 그 예수님의 십자가 ,
그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씻기게 만드신
이전의 그 엉터리 같았던 '죄'덩어리 '죄하인'이
완전히 '주하인'으로 탈바꿈하게 만드신
그 기적 탓이 아니시던가?
그 죄 씻김으로 인하여
난 '중생重生' , 거듭난 결과가
지금 '기뻐하고 샬롬을 기대하는 나' 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부활한 '나' ., 중생한 '나'를 붙드시고 이끄시는
매일매일 '성령의 새롭게 씻기심'으로 인하여
자꾸만 과거로 나를 잡아 끌려는
'옛사람'들의 기억들을 배제시키시고
그 '삼위일체 '
온전하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난 힘을 기르고 영적 싸움을 싸워 이겨내어
점차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늘 기뻐하는 소망의 새생명을 누리는 자가 되어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홀연히 모든 세상의 끈을 풀어 내려 놓고
부르시는
그 나라로 가는게
나, 주하인..
아니 세상의 모든 부르심을 받은 자,
부르심을 받을 자
모든 세상의 피조된 인간들이 누려야할 당연한 축복이라 생각한다.
아...
그러함에도 누리지 못함은
듣지 못함이고 적극적 선택을 하지 못함이고
무엇보다 믿지 못함이다.
그렇다.
'믿음'이 무엇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긍휼의 기적 중에서
내가 견지해야할 가장 기본이다.
나.
계속 고백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나마' 붙들고 있는 가운데
점차로 난 변해가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고백했듯,
난 이전의 나의 그 어지럽고 복잡한 속,
내가 나 조차 혐오하고 세상에 별로 흥미가 없는 터질듯한 속상함의 나에서
이제 점차로
조용하고 감사할 줄 알고 소망의 기쁨, 평강의 소망을 기대하는 '나'를
누리는 시간이 점차로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나를 붙들고 있는
나와 타인과 세상에 대한 '눈'이 완전히 변하지 못하고 있음이다.
그것.
주님이 나를 다시한번 말씀으로 확인 시켜주신다.
'주하인
"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 그 긍휼이 여기심의 지극함을 받는 자다.
그렇게 사랑하기에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 예수님을 달리게 하셨고
그렇게 기뻐하기에 매일 성령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구나.'..
그렇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직
내 옛적 눈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
아니다.
난.. 지극한 사랑 속에서 거듭난 중생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나를 보는 눈이 그러함은
내가 그런 중생의 거듭남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함이다.
아..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십자가 예수, 피, 성령, 천국.. 하면
조금은 '먼... ' 이야기 속의 내용같이만 느껴진다.
그렇다.
그것이 문제다.
내 인생관,
아니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자들의 세상관은 ' 유물론'이다.
과학적 세상관이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증거가 없으면 믿지 못함이다.
그러나, 개미가 사람을 이해할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해할까?
개가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갈등.. .철학..등을 이해할까?
그러함에도 신의 그러한 사랑하심을
보고 만지고 이해되어야 믿으려하는 것이야 말로 '어불성설'의
개가 하품할 논리가 아니던가?
인간이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함은 '인간을 너무 높이 보는' 인간 만의 착각이고
내 자아가, 내 생각이 중심이라 하는 생각은
그거야 말로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니던가?
영원 속의 80여년이 끽인..
육체 속에 갇힌 '제한적 존재'들...이..
'인간적인
합리적인
대 통합.........'은 개나 주어 버리자.ㅎ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다시.. 돌아와?
난..
예수님의 피값과
매일 성령의 보호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덩어리 '주하인'이다.
내가 잘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도
난 그 분의 '사랑 때문에 '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 .
이전의 '내가 그랬던 ' 잘못된 '자아상'을
지금도 간직하지 말자.
그것... 사단의 논리'다.
지금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다.
예수 께서 피로 다 씻으셨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죄된 행동은
곧 다 씻겨 나갈 잘못된 행동일 뿐이다.
그래도 '난' 귀한 자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
하나님.
며칠 남지 않은 추석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눈을 뜨며
다가오는 오래된 괜한 생각들은
또 저를 사로잡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만..들어가는 구나..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그게 모두 잘못 산 탓아니더냐....
예.
맞는 생각인 것도 같지만
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모든 환경 가운데
전 주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자임을 바라봅니다.
성령으로 은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다시금 새기길 원합니다.
지금은
이전이 아닌 줄 믿으려 합니다.
믿습니다 .
이전의 그 싸나운 내가
하나님안에서 양같은 자격을 부여 받았음을 믿습니다.
주여.
그리되게 하소서.
확실히 믿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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