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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불일듯 넘치시는 그 분의 긍휼[호11:1-11] 본문

구약 QT

지금도 불일듯 넘치시는 그 분의 긍휼[호11:1-11]

주하인 2015. 10. 26. 09:36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내가 사랑하여'

 

이 구절.. 이상하게도 읽을 때마다

가슴을 치는 무엇인가가 있다 .

건드려지는 ..

싯구의 흐름처럼 노래같이 건드려지는...

 

 하나님께서

내 어렸을 적 , 그게 물리적이든 영적이든 어린 상태일 때

사리 판단 못해서 기억은 못하지만

날 '사랑'하셔서 날 영적 애굽에서 불러냈다 신다.

불러 냈거늘...

어찌 기억 못하는가?

아니.. 기억 .. 역시 못하는 구나.. 하시는

가벼운 탄식이 느껴지며

그 분의 감정이 그대로 내 가슴에 전해지는 듯.. .

 

이 구절,

예수님 영접하자마자

잘 이해도 가지 않던 성경의 말씀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집중하며 듣던,

정말 머리 아프던 시절에

내 가슴을 짓치며 들어오던 그런 구절이다.

 

그러기에 지금 읽어가면서도

그때, 그 첫사랑이 불타던 그 시절이

아련히 느껴지는

추억의 노래 같은 느낌이다.

 더구나, 지금은 내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택으로 '첫사랑'에 빠져 들던

그 시절의 감각이 아련히 날 사로잡는 것 만 같다.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그때, 외우려 노력했던.. 아...

그러나 머리가 복잡하고 문학이나 문과적 구절에 알러지가 있던 ^^;

그 심사를 가지고도 난 이 구절들이 왜이리 좋았던가?

 

 아마도

이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다.. 고치신다... 이런 단어들의

직접 말씀하시는 아버지 같은 톤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런가?

 

 어제 갑자기 돌아보았다 .

아무리 생각해 보려해도

우리 '역기능'의 아버지에게 안겨보았고

다정한 위로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 죄송.. ㅠ,ㅠ;;

누구를 위안하고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려면

그에 합당하는 기억들이 있어야 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난.. 이러한 말씀이

버겁지만 그 시절의 내 가슴에 '희망'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 걸음을 가르치고 .. 내 팔로 안았음'..이란 구절들이

얼마나 물흐르듯한 시.. 같은가?

에브라임은 '정통 , 적자의 신앙 훈련과 사랑의 양육을 받고 큰'

주위의 많은 훌륭한 신앙인들 ( 그당시에 안양 S 병원엔 의료 선교사 지향하여

모여드는 의사들로 넘쳐 났었고 모이는 데 마다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교제 였었다'.. ) 에 비하여

'에브라임' 같은 내 처지를 안아주시고 가르치신 다니 얼마나 그랫던가?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이란다 .

관계의 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신다셨다.

 

 그때는 비록 강한 불신자에서

일거에 '첫사랑' 후의 신앙인으로 바뀐 후

그들 , 나랑은 다른 높은 경지의 행동하는 신앙인,

훌륭한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된 전문의... 들로 비교되며

가슴 한구석에 또다른 '비교의 좌절',

그들처럼 결단하고 세상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내 안의 어두운 내면과 싸우려 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많은 무거움도 있었지만

과정 과정 ... 시간을 둘러 돌아보니

모두 '사랑의 줄'이 맞았다.

사람의 줄을 통해

심지어는 그토록 어려워했던 '역기능'의 관계조차도

하나님은 다 훌륭한 도구로 하여

지금에 서게 만드신 것 만 같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

  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아.

그 시간.

많은 절망은 '자책'을 통하여 더 힘들었고

그럴수록 날 구해주신 그 사랑의 예수님의 십자가가 너무나도 무거워

도저히 난 스스로 '사람 같지도 않은 듯 '

하나님 마져도 날 어찌 하지 못하실 것 만 같았는데

이 호세아... 무겁고 두려운 구절에서

하나님이

'에브라임' 같은 비틀린 아웃사이더 같은 나에게

'내가 어찌 너를 놓겠냐'시고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그 분이 분노하셔도 공의를 표하셔도

그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어 나를 위하여 겉으로 표하시는 그러하심일 지라도

마음이 ,

당신 하나님의 너무도 크신 사랑의 속성이

그 분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고 다시 돌이키시어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긍휼로 불붙듯,

그것도 온전히 불붙듯 하다 신다.

 

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위로가 되든지..

머리가 빙빙 도는 혼란 속에서도

억지로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이  말씀들을 붙들려 노력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예수님 영접하자마자 부터

특별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나 보다.

지금도 돌아보면..

 

어찌나 문학에 멀리 떨어져 있고

이 고시대적인 수사덩어리이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성경이

그렇게 눈에 들어 왔던지..

막연한 감동은,

당연히도 '성령'의 감동이시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졌고

말씀이신 로고스는 하나님이시기에

지금껏 그 말씀들이

내 안에서 운율을 이루고 흐르시면서

내 무지한 머리, 무감각한 문학적 감각을 터치하시면서

입에서는 찬양이 흐르게 하시고

눈으로는 보이는 사물이 아름다움으로 자극되게 하시어 '사진'으로

기도와 어우러지는 시어로

그리그리 나와

나도모르는 사이

이 블로그에 내려 놓은 글 만 해도 천 몇백여개 ..

삶은 새로움으로 차게 하시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날 인도하시고..

 

어쩌면 하나님의 날 그토록 사랑하셔서

긍휼이 불같이 흐르시어

내 안에 성령으로 흘러 흘러

이제 꽤 큰 물줄기를 이루게 하신

그 결과가 아닐런가?

 

아...

추억의 구절.

그토록 감동했던 그 기억들이

또다시 내가슴 한구석을 이토록 채우고

내 아랫배를 따사로히 어루만지시어

오늘 이 늦은 시간의 '묵상터'를

쉴 새 없이 채워 가시는 모양이다.

 

 

주여

괜히 분주했습니다.

특별히 요번 부산학회에 있을 '포스터 '발표를 준비하느라 그랬습니다.

맘 같아서는 '연제 발표'를 하였으면 했지만

그래도 허락된 발표의 장소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기술'을 저들에게 발표하는 기회.. 말입니다.

그래서 뒤로 뒤로 말씀의 묵상을 미루려 했으나

다시 붙든 구절의 말씀을 통하여

또 한번 감동으로 내 안에 흐르시는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숨쉴틈 없이 기도까지 하시게 합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주께서 이토록 불일듯 흘러 흘러

십여년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나이다 .

아...

모두 주님의 사랑,

주님의 살아계시어 이끄시는

그 말씀의 성령,

성령 하나님의 로고스화이신 탓이십니다.

 

주여.

주님의 은혜로

전 이제 덜  자책하고

덜 고민하고

더 기뻐하며

훨씬 자유로와 져

흐르고 있습니다.

한곁에 걱정과 근심이 바윗돌 처럼 절 막으려 하지만

느끼면서도 흘러 흘러 갑니다.

 

 주여.

주님은 흐름입니다.

주님은 불이는 긍휼이십니다.

예..

주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주님.

내 주님.

사랑의 주님.

 

감사하며

다시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내 주여.

 

소리 높여

주님께 영광올리려 합니다.

주.............여.................!!

받으소서.

 

제게 불붙는 긍휼로 다시금 돌이키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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