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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보라[호6:1-11] 본문

구약 QT

오라 보라[호6:1-11]

주하인 2015. 10. 21. 08:32

그래

돌아가자

빛이신 그 분

온 우주에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

그 분께로 돌아가자

 

내 답답한 마음

내 딱딱한 영혼

그 분이 내리시는

성령의 단비로

가슴 촉촉히 젖으리라

 

어두움은 물러가고

새 아침이 오리라

새로운 부활이

내 앞에 펼쳐지리라

 

오라

보라

주님의 인애를 기대하고

사람을 향한 긍휼을 기대하며

또 다시

주 앞으로 돌아오라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아픔' '상처'........

힘듦 고뇌 되풀이 변화없음....

 

돌아가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 길 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그 길만이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돌아가면 된다.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싸매 주실 것이시다.

힘이 된다.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된다 .

비록 우리의 죄 때문에 그 분께 혼을 나서 생긴 일이라

도저히 안될 것 같더라도

주님께로 돌아가자.

 

 보라.

'오라'라 신다.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2일 후에 살리시고

3일 째 일으키신다신다.

 

예수 부활하듯이

우리도 매일 주님 앞에서 부활할 수 있다 .

그게 이 죄의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 십자가 앞으로 가자.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십자가 앞으로 가자.

그래야만 우리의 영혼이 부활하고 새로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이 땅을 살아 주님 앞에 성결한 마음으로 나가가기 위해

아니.. 성결할 가능성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를 알자'.

예수님을 보내실 만큼

우리의 흉악한 죄의 존재와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의지의 나를 아시고

그러함을 분노하시고 정죄하시기 보다는

긍휼과 사랑으로 가슴아파 하시며

그 반드시 사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절박함을 아시는 사랑으로

가득차신 분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 분의 사랑,

그 분의 모두 다 아심

그 분의 모든 것을 다 아심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실 그 평강을 깨달아야 한다.

 

그 분을 오늘 더 깊이 만나

이 가뭄에 올 늦은비가 얼마나 메마른 땅 깊숙이 젖게 하시는 지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한다.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나가야 한다.

더 나가야 하되

기도의 분량과 땀흘림 , 조름, 헌신, 헌금... 으로 만이 아닌

인애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 .

 

인애.

그게 어떤 의미인가?

사랑,

애처러운 사랑,

이해할 수 없을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 있을 사랑....

 

그게 인애 아닌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찌 내가 그리할 수 있을까?

어찌 모두 주기철 목사님이

어찌 모두 예수님이 될 수 있을까?

어찌 그리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내겐 인애로 나갈 힘이 없다 .

인애로 나오라 시니

인애를 허락하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믿을 결심 밖에 없다 .

그러면 허락하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내 모든 미움이나 절박한 속상함을 다 물리시고

인애로 그득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서 깊이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메마른 가슴 속으로 스며 들게 되는 것이며

그 포악하고 메마르고 허전하던 영혼의 깊은 곳에서

보혈의 향기로 촉촉해진 땅이 되어가고

인애의 싹이 발아 되기 시작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

주하인.

오늘 할 것은

인애의 결심이다.

그리고 그 결심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가야 한다 .

그리하시면 예수 께서 성령으로

내 안의 모든 더러운 異論,

메마른 생각들을 사로잡아 물리치실 것이시다.

태울 것이다.

내 안은 인애의 마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돌아감 ,

주님을 깊이 만나는 옳은 앎이 될 것이다.

 

 주님.

제게 힘을 주소서.

인애보다는 속상함,

긍휼보다는 원망이

소망이나 희망보다는 좌절이 절 사로 잡으려 합니다.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분들에게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은 거짓 희망에 절망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내주여.

그래서 세상은 인애나 긍휼보다

버거움과 싸움 전쟁, 다툼, 자신 만이 옳음이

세상을 횡행하고

인성을 메마르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실 조차 모르고

허걱거리며 이 유한 한 세상에서 걱정과 다툼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

그들과 저의 모습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합니다.

내 주여.

 

 오늘 저를 봅니다.

오라.. 십니다.

주님 앞으로 가길 원합니다.

다시 깊이 더 들어가

진정, 주님이 절 기뻐하시던 때

긍휼함, 인애로 참을 결심하고 선택하던 때로 다시 돌아가길 원합니다.

 

내 주여.

아시오매 아침에도 저녁에도 아뢰었습니다.

힘을 주소서.

저 .. 불가능하오니

단지 인애를 결심할 뿐입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제 마음에 그러라시니

그럴 결심을 하오나

주여.. 전 가능하지 않습니다.

힘을 주소서.

 

오라 돌아보라 십니다.

그래서 그리하오려 하오니

제 마음에

늦은 비 성령의 내리심을 기대 합니다.

제 마음 깊숙이 내리시고

제 영혼 깊이 터치하셔서

무른 마음,

인애로 가득한 마음으로 채우소서.

 

제 속을 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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