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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마른 땅에서[호13:1-16] 본문

구약 QT

광야 마른 땅에서[호13:1-16]

주하인 2015. 10. 28. 15:57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나.'

하나님

 

'너'

 

'알았거늘'

알았는데 왜 그러느냐?

알았다는 깊이 알았음을 암시한다.

피상적으로 얼굴만 보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닌

서로 깊이 친분을 맺었고 모르는게 없는 친분을 맺었다...는 뜻.

그러하심에도

왜 너.. 주하인아

넌 고민하느냐.. 괴로워하느냐 .. 홀로 있는 것 같이 그리 외로워 하느냐... 시는 듯한 뉘앙스다. 

 

'광야.'

창세기의 불신자 , 노예 애굽시절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데리고 나와 연단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 처럼

이 땅에서 불신의 시절을 삼십 몇년 보내게 하심을 허락하신 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적 홍해 통과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격을 얻고

광야... 를 거쳐가며 '연단'을 거치고 있는

이 내 인생의 시간들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광야 마른 땅'

광야는 사막이다.

부는 바람을 피할 곳도

떨어지는 땡볕을 피해 숨을 곳도

먹을 것도 많지 않은

광막한 곳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네 인생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이 곳 , 인생광야에서는

언제나 갈증과 갈등이다.

먹어도 배부리지 않다

가져도 허전하다 .

박수와 갈채는 언제나 더더더 하게 된다.

아니던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내 인생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타인을 누르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고 싶어

저리들 허겁허겁해 대는 것 아니던가?

 그러나, 광야 생활하던 출애굽 이스라엘 선민들이

광야의 과정을 밟아가며 점차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익어가며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

 하지만, 모세마져 결국 가나안 땅을 넘어가지 못했듯

인간들은 누구나 다 헛점이 있다 .

 

이 인생의 광야 시절,

그것을 허락 받음은

영적 가나안 땅,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영적 상태로 되기 위하여

더러운 죄악들이 세상의 자극으로 마모되어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갈아져 정화되어가는

그 연단의 연습을 시키는 장소가 아니던가?

그러함이 완전히 이해가 되고 몸에 배이면

과정은 승리가 되어가고

고난은 기쁨이 되고

고통은 곧 있을 성장의 근거로 느껴진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갈수록 지쳐가는 몸에 집중하면

죽기보다 싫은 '마른 광야' 이지만

그만큼 지내온 시간동안 남아 있는 광야의 삶이 얼마 안됨을 알면

오히려 지치는 몸 만큼

커지는 소망이 되는게 맞는 거 아니던가?

 

그렇다면

'광야' 만으로 부족해서

광야의 '마른 땅'을 이야기 하시는 것은 무슨 뜻일런가?

광야 자체만도 힘든데

거기에 마른 땅을 붙이심은

바로 위에 전제 했지만

'생각의 차이'같다.

 

그 생각의 차이의 주체는 '나'다.

내가 고통스럽고 힘든 것에만 매몰되어

더 이상의 긍정적인 생각을 못하면

그게 광야는 오직 마른 땅일 뿐이다. . 라 생각하고

희망과 소망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른 땅이 있으니 광야고,

 이 인생광야의 힘듦은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다.

 그러니 오히려 약함을 기뻐하고 곤란과 고통을 감사하며

 내 오늘의 이런 어이없는 마름을 느낌은

 귀한 연단의 기회다 .

  영적 성결함을 위한 계기일 뿐이다. ' 라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정답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서만 .. 말이다.

(불신자는 가능치 않은 이야기다.

 당연히도 그들에게는 노력과 인내 후의 달콤함이

 늙어서의 평안함이라면

 그 이후의 죽음은?????

 믿는 우리는 영생의 보장이 있으니 연단 후의 성결,

 성결 후의 영생의 기쁨을 연단을 통해서 완성할 수있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나.. .

돌아보지 않아도

광야를 힘들게 만 바라보다가

마른 땅 만을 쳐다보며 한탄하고 있는 것은 아니던가?

아니..

자주 저 너머를 바라보고

그곳을 알려주는 성령의 여러 싸인으로 기뻐하려 노력하지만

때로 환경으로 인하여

고개를 마른 땅으로 떨어뜨리고

광야의 무더움, 메마름 만을 고민하고 있지 않던가?

 

그러함에도

그런 미련함, 그런 어리석음을

주님께서는 '광야의 마른 땅에서도 내가 너를 알았는데.. '

무엇을 걱정이던가.. 하시는 듯하다.

 

그렇다 .

부족함,

연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나감

환경에 매몰되는 미련함...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이처럼 모두시고  다져주시는

저 세밀하신 사랑을 어찌 감당할까?

난..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우리 사랑하는 하나님의.. .

 

그분이 오늘 저리 말씀하신다.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

 

주여.

귀하신 내 주님이시여.

주님이

저를

광야에 이끄시고

나의 성결함을 위하여

이 인생 나머지 시간을 제련 하시거늘

전 이 연단의 과정을 기뻐함에도

자주 '마른 광야의 땅'만을 바라보게도 됩니다.

 

그럴 때

세상이 다 꺼진 듯 좌절하고

홀로 인듯 속상해하며

목표를 잃은 듯 몸부림 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또 이리 세우십니다.

내가 광야에 마른 땅을 보려하는 것도 알거늘..

주여.

감사합니다.

내주여.

사랑합니다.

 

주님의 그 한없는 관심으로

다시 일어설 이유가 됩니다.

마른 땅에 제가 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 영생의 기쁨을 기대합니다.

조금 있으면 허락하실 '오아시스'의 쉼도 기대합니다.

주여.

그리하고 나면

제게 허락되어질 놀라운 평강의 휴식을 사모합니다.

영생의 그 안식을 기대합니다.

주여.

고맙습니다.

 

주님 예수님의 보혈,

그 십자가의 공로로

또 제가 일어섭니다.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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