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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시간 & 준비하는 시간[왕상1:11-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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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시간 & 준비하는 시간[왕상1:11-27]

주하인 2023. 9. 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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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사람들에게는 도외시 되었으나( 이들은 한시대를 풍미하였던 자들이었지만 또 결국...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ㅜ.ㅜ;

이 들의 그럴 수 밖에 없는 동기(기득권 놓치지 않으려함, 목숨을 위해..어차피 세상의 관계는 어떠한 이유든 이러한 동기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랑, 이타... 이야기를 해도 그 근본은 자신의 안전이 최후의 동기다.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은 관계... 하지만 그 마져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거다.   다윗과 그 ...수 천년 후 예수님과.. 지금의 우리를 위한 관계의 기본 동기.)를 통하여

어찌되었든 '다윗'에게 '진실'을 알리고 

자신들의 위치를 돌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이 된다. 

 


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중들었더라

 그리고 그 관계의 여러 변수에 의하여 허락되어진 

'수넴 여자 아비삭'에 의하여 

이 마지막 시간을 이 땅에서 거주하는

'심히 늙은 다윗'이 

시중을 받게 되고 있다. 

 

 보라.

차가워지는 체온을 빼앗을 목적(이 얼마나 이기적인게 인간이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여인의 생기를 취하고자 동녀童女를 후첩으로 들이거나 지금도 어린 여인들을 탐하는 늙고 추악한 시선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악한 탐욕들...)으로 들이게 했던 여인이

그 본래적 목적 ^^; 을 치워버리고 

힘없어져가는 다윗의 일상적 수발을 드는 위치로 바꾸어 준게 

'다윗'이다. 

 

 그리고 그러함은 정말 '너무 늙어' 힘이 없어 범접하지 못할

정말의 절망(남자라면 이 성욕에 더불어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그 절대의 괴로움을 알리라..^^;) 때문에 그랬더라면 

여자를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거나

이름을 성경에 드러내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에 이어 두번이나 '이름'을 드러내 주었다. 

 놀라운 일.

분명코 하나님께서 '알기를 원하시'어 허락하신 일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윗이 중심이 되어 이 돌아가는 상황을 분석해봄이 맞다. 

 

 

 그는 정말 '여인'을 탐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아도니아 들이 저런 일을 벌여 자신의 왕국을 흔들어도 

아무도 주변에서 정보를 보고하지도

스스로 '아차..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며 돌이키고 정신을 차릴 '에너지'가 남지 않은

또, 직설적으로 성경에서 

'심히 늙어'라 표현될 만큼

그는 '늙었다'

 

 그런데 그 늙음이 과연 '어제의 표현'대로 

'버려져 육신에 유리된' ..

정말 아무 가치없는 시간이 맞을까?

 

 분명코 그 시간, 

늙어가는 시간은 '슬픈 시간'이 맞다. 

그 대단한 다윗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은 처량하다.

그리고 마치 '토사구팽' 당한 뉘앙스의 시간들이다 .

하나님께서  열렬히 사랑하시고 처절히 이끄시었음에도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못하니

버려버린 듯한..........

그런 뉘앙스다.

 

 정말..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그 뜨거웠던 '지금에 비하여 아직 젊었던 (40대 중후 반에 ^^; , 안ㅇ 샘ㅂㅇ 시절에 .. 뜨겁게 인도하시기 시작하셨다 .  37살에 첫 영접하고 나서 ..^^*) ' 그 시절에 비하여

훨씬 덜 ..

뜨겁다. 

그리고는 나이가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사회적으로 관심이 떨어져 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 혼자, 홀로 있어도 

누구도 별.. 이란 생각이 

자주 ,서운케 들려 한다. 

그거..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늙어가는거.

서운한거.

서운하지 않고 존재감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그리들 몸부림치는 거.

 

 정치.. 

과욕.. 

탐욕.. 

그 근본에는 자기 존재의 확인.. 

사회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무엇보다 영혼이 육신으로 부터 조금씩 유리되어

육신 안에 갇혀가고 

세상으로 부터 그나마 정보를 받아 들이는 통로인

육신의 감각들 마져 둔해져

결국 '세상'에서 마져 버려지고

'자신의 육신'안에 갇힌 '영혼'인 것을 

누구나 '몸서리 치게 싫어서

그 자신도 모르는 그 인간 본연의 '죽음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점차로 더 많은 유혹과 주변의 칭송과 소란스러움을 원한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이 '권력' 아니던가?

그 길이 '정치'고... 

아니면 극소수에 허락되어진 '연예인'... 

공부 잘해 이름을 남기고.. 

남을 누르고라도 '칭송'을 받아내기 위한 몸부림들... 

그게........

내가 세상을 경멸해왔던 '불신' 시절의 이유고 

세상에 살아도 결국 다 똑같이 가는 

누구나의 '늙음, 그 도태'

사망의 존재가 

바로 우리 , 이땅, 3차원 세계...물질계에 살 수 밖에 없는 자들의 

숙명이고 운명이니

어찌 내가 이땅에 열심을 내볼 의지가 있겠던가?

 

 그런데 그러한 내게 주님이 다가오셔서

구원하여 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많은 간증거리로 날 부인할 수 없게 하시더니

이제 지금

여기에 서 있게 하신다.

 

이제...

늙어가며 도태하는

버려진 듯한 시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아직 ...세상에 쓸모 있으니 나름 의지를 발휘할 자극은 있지만

더 늙어 

다윗처럼 '심히 늙어 유리된 육신 안의 영혼'같은 시간이 되면

어쩌지... 

하나님 믿으며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마주하게 하신다. 

 

믿고,

처절한 삶의 투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온 자들 마져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똑같다. 

 

그런데 다른게 있다. 

그 다름을 

다윗은 '수넴 아비삭'의 이름을 들어내고 

조용히 순리대로 그 삶을 살게 도웁고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가도

그 끝이 '폭죽'을 터뜨리듯 불합리한 방향으로 돌아가도 (아....y대 ㅌ 령께서  국론 단합으로 한방향으로 나가도 모자란 이 시점,철지난 색깔론 들고나와 마구 국론 분열시키시고, 마치 일본 대표라도 된양 ㅇ 염수 방류에 적극 찬동하며 나라의 백년 대계인 '연구비' 18% 감액하는 등.. 우리나라 사람 아닌듯, 마치 아도니야처럼 행동해도..........ㅠ.ㅠ.. 어쩌랴..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더 중요한 이 마지막 시대에 끝모르는 선택을 한 우리 백성의 잘못들이고 허락되어진 시대말적 현상인 것을...ㅠ.ㅠ;;;; ) 그냥 지켜 볼 수밖에....ㅠ.ㅠ;

 

23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그러나, 그 시간에도 

하나님이 하실거다 .

남겨진 사람들에 의하여 

가만히 있는 '다윗'에게 다가와 재촉을 하고 

그를 , 아직 남아 있는 세상의 그의 권위를 들어

또 다시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하시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향대로 쓰게 하실 것이다. 

 

그렇다. 

버려진게 아니다. 

유리되어가는 것도 그 시간에 필요한 나머지 품성,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마지막 정제하고 기름칠 하여 숙성시켜가는 단계일게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두고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이며 

주님의 뜻을 

끝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늙어가는 내가.. 

 

 

주님.

오늘은 '처량한' 다윗을 보고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게 도태만은 아니고

반드시 나가야 할 과정,

어차피 이 육신의 껍질, 

인생광야를 살아가며 주님의 연단을 이루어가기 위한

육신의 장막임이 맞을 때

시기에 맞는 '연단'이

'심히 늙어가는 시기'에도 분명코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 시간은 

도태의 시간

토사구팽 당한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온전한 완성을 위한 시간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십니다. 

가장 '자극'이 적은 

아니 모든 자극이 육신을 통해 '영혼'으로 전해지기 어려운 시간 이기에

고요히 '하나님 뜻'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맞는 듯합니다. 

 

그 품성의 결과가

'수넴 여인 아비삭'을 제대로 도우미로 쓰심이며

그니에게 이름을 허락하게 위치시킴입니다. 

주여..

그리고 버려진 줄 알았지만

다윗은 끝까지 왕이었고

그 마지막까지 '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주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존재 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 주여.

저는 어떤 지 돌아봅니다 .

제 인생.. 

결국 갈 곳을 향해 가는 과정을 밟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나를 알아주지 않았던 , 않아가는

세상에 대하여

주변에 대하여

괜한 분노를 느끼고 

그들에게 나를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며

안그런척 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제 내면에서 분노로 표출되어 나오진 않았던지 돌아보나이다.

 

아..

이제.. 그 마져 주님의 뜻이시고

이게 누구나에게 허락되어진 

마지막 다지는 과정으로서의 노년이라면

괜한 몸부림,

괜한 자존감

괜한 두려움을 내려놓아도 될 듯싶습니다. 

 

주변인들에게 더 잘해야 겠습니다. 

존중해야 하겠습니다. 

긍휼로 그들을 바라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앞에 기억되는 이름을 가진 자로 세우도록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겠습니다. 

주여.

 

마지막 부르실 그날

이 버거운 육신

이 땅 연단 광야를 버티게 해준 이 껍질을 

홀연히 벗고 

주님 앞에서 성장된 영혼으로 

더 아름다운 부활체로 거듭나게 될 줄 믿고

오늘도 힘을 내야 겠습니다. 

내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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