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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입고 시간 속을 살아가는 자의 초연함에 대하여[왕상1: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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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입고 시간 속을 살아가는 자의 초연함에 대하여[왕상1:1-10]

주하인 2023. 9. 1. 07:44

(펌)

왕같아 보이지는 않으시는 분이지만

왕이어도 그 나이에 무엇다르랴

 

다 늙고 쪼그라지고

손발차겁고

육신과 분리되어 그 안에 갇혀버리는

그래서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유리되어 살아가는 듯하다

그리그리 쪼그라들어가는게

누구나에게

다 똑같은 운명인 것을..

 

그러나

저 왕같지 않은 분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왕보다 더

담담하고 초연해보인다

 

그렇다.

하나님으로 연결되어

 그 육신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고요하고 평안함이

매 시 매초 매 일상에서

유지될 수 만 있다면....

 

 

보여지면 어떻고

안보여지면 또 어떠한 가

차가우면 어떻고

소름이 끼치면 또 어떠하며

고독하면 어떻고

주변인으로 인하여 북적거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온기로 녹여지며는

무엇 또 달라질까?

 

그냥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곧 뵙고 만날 그 시간

온전한 부활체의 영원한 시간

그날, 그 내 결국의 운명이

믿어지고 기뻐지면 될 것을...^^*

 

아..

어떻게 어디에 존재해도

주님 만 잊혀지지 않고

그 분의 평온이 누려만 진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인 것을...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다윗.

그 놀라운 하나님의 용사도 

나이가 들고 많아지니

심지어는 몸이 차가워지는 

늙어가는 현상을 피할길이 없을 뿐더러

그 수족냉증을 넘어서는 차가운 육신의 '쇠퇴함'의 극을 달리게 된다 

 

 '육신'을 입고 사는

그리함으로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심지어의 '하나님 사람'의 그도

육신의 굴레는 

벗어 날 수 없다 .

사는 동안...

그런데...........그 육신의 괴로움...

그 심한 육신의 좌절..........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영적이고 올바른 삶'을 추구해왔는데

이게 무엇인가...라는

허탈, 몸부림, 

젊은 시절의 영광,

하나님의 함께 하셨던 삶의 허상 같은 

괴로움이 

그에게 있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보라.

분명코 그의 괴로움이 얼마나 힘들고 컸거나

최소한 그의 육신의 쇠퇴함이 보기가 싫어서거나

어쨋든

'영적'인 영광을 받고 한 시대를 풍미한 자들 조차

반드시 겪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끝..

육신을 입고 

이땅을 사는 자들이 반드시 겪을 수 밖에 없는 

저 절망,

육신의 쇠퇴가 보기 힘들어서 인지

부하들이 '나서서' 

젊은 여인의 온기를 나눠서라도

꺼져가는 육신을 되돌리게 할 방편으로 

수넴여인, 아비삭을 '후첩'.. 

시동(侍童, 모시는 아이)으로 들이게 된것이다. 

 

 무엇인가?
육신의 약함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우리네 믿는 자들의 과정이고

그 육신의 떨어져 나감을 통하여

영적으로 더욱 정결하고

지속적으로 요즈음 말씀으로 허락하시는

'초연함'이 준비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약함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좌절내지 시험으로 다가올 개연성에 대하여

오늘 보여주심이 아닌가?

 

그런데

다윗은 '잠자리'를 같이 안했다 한다. 

노인네라서 힘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거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로서 

이 땅의 것들을 '벗어내는 과정'이 분명코 힘들어

'차가운 육신의 고통을 동반하기도

'초연'을 위한 과정을 유혹하는 아름답고 젊은 육신, 

아직도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여가며

온마음을 다하여 떠 받드는 주변인... 들이 있음에도 

그를 '차분히' 미루어 두는...

심지어는 '수넴여인 아비삭'을 뒤로 물리우라.......는 엄포를 하고 

자신의 그러한 심사를 세상에 알리며

"더 이상 이러한 일을 벌이면 용서.........&^%$#.........."..하며 

그래도 자신의 '의'의 굳건함,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의 어떠함을 세상에 보이고픈

교묘한 의를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그냥 드러내지도 

거부 하지도 않고 

자연스레이 '받아 들였다'..

그게........내게 다가오는 '레마'일 듯 싶다. 

 

 자연스러운 받아 들임.

누구나 시간이 되면 다가오고 말

'준비의 시간'.. 

그 시간의 당연한 '차가운 현실'.....

몸부림 치지 않고 받아 들이는 것.. 

그 현상이 '초연함'의 증거들 아닐까 싶은것.

 

그리고 ..

여전히 확실한 증거는

'고난은 유익'이고

이 시대, 이 시간대의 

다윗 같은 과정을 밟는 자들,

선택 받은 소수의 좁은 길의 과정에서

그마져..

앞에 놓여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몸부림 치지 않고 자연스레이 받아 들임.. 

 

 그런데 또 하나 드는 의문.

그 여인.

수넴, 아비삭.

왜 굳이 이름을 드러내셨을까?

 

뭐, 별로, 한거도 없고 굳이 알 필요도 없이 스쳐 지나가 버리면 될 

그 여인이 왜 드러났을까?
 성경에 이름을 드러냈다는 사실.

굉장히 중요하고

무엇인가 말씀하시고픈 뜻 아니시던가?

 

 정확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시고자 하실때는

이 땅의 그 어떠함,

우리의 가치 기준...과는 아무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선택에 따르는게 

당연하신 거 아니던가?

 

 세상이 

내 기준..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들이 

서로 거미줄 처럼 얽히고 엵여 지금 이시간도

그 수없이 많은 수십업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세상에서 

그들을 중심으로 

그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돌아가고 있을 것이며

그들 세상에서는

'다윗'이나

주하인이나

믿는 우리들

그 중에서 더 하나님의 뜻을 찾아 몸부림치는 '선택받은 소수'나...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아.. 

특별히 '불신자'들의 우주.. 세상.. 에서는 말이다.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보라.

아도니아는

아도니아 세상에서 

그가 중심이 되어

그와 한번씩 스침이라도 있던 자들을 선택하여

그들의 세상을 세우고자

'그들 뜻대로'

'아도니아 뜻대로'

아도니아 만의 '우주'와 '세상'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착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오직 육신에 갇혀 

육신의 가치대로 만 사는 자들'의 우주는

아~무 의미가 없는 세상이다. 

 

그냥... 

곧 죽어 스러져 갈 세상.

곧 먼지처럼 소멸될 우주다.

그게... '불신자'들..

'하나님을 알면서도 자신이 중심이 된 우주'를 개척하는

'실족할 자'들............이 세우는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세상을 가진 자들이다. 

아무.. 육신적 이룸이 없는

이방 땅에 거하는

한낯 여자라도 

'아비삭'과 

그로 인하여 드러난 

'수넴'이란 고장까지

하나님 앞에서 불리운 이름 만이 의미있다는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깨닫는 바큽니다. 

 

알람이 울려서 갑니다 

하루 종일 주님 말씀 붙들고 살게 하소서

의미있는 이름되게 하소서.

차거운 육신.. 

그 마져 하나님 나라를 위한 

육신의 약함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고

내 우주의 중심에는

당연히도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늘 제 이름 불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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