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남자의 조건(다윗은 남자로 살아왔다)[왕상2:1-12] 본문
보기는 좋지만
꼭 이게
남자의 상징은 아닐듯.
ㅎㅎㅎ
그 보다는
남자라면
남자다움이라면
초지일관
끊임없이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음이
그 첫째 조건이 아닐까?
그리고 진정한 남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성실과 진실을 사모하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려
죽을 때까지
매사 매시 매초
끊임없이
충성하려 몸부림치는 것..
그래서 마침내
이 지구를 떠나는
그 누구나의 갈 길
그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래 너..
남자답게 살다왔구나 인정하시는 자
그가 남자가 아닐까?
진정? ^^*
그 예표로서의 다윗.
따라가야할 남아 솔로몬이
오늘 내게 의미하는 것은
지치지 말고
힘내서
더 끈기있게
주님 말씀대로 살다오거라..다.
할렐루야
힘이 난다.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과 '에녹'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피한 자가 누가 있으랴?
예수님과 '에녹'을 제외한 그 누구도.........없다.
'다윗'
그 놀라운 분도,
모세, 살아서 하나님과 동행한 분도..
죽음은 피할 길 없었다.
그리고
모세는 그 쇠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세상적 일에 손을 놓치 않게 하신 예를 제외하고는
'다윗'의 이불을 덮어도 육신이 차가움,
야곱이 '고센'지방으로 요셉을 만나서 도피한 후의 골방생활,
이삭 역시 야곱을 멀리 떠나 보내고
큰 아들 에서와의 불합리한 관계로 노년을 ...ㅠ.ㅠ;;
몸부림쳐도 그누구도 '노년'의 시간,
그 도태된 듯한,
그러나 어제 묵상에서 보듯,
그나마 모세의 예에서는 조금 예외인 듯
비록 노년이 준비하는 ' 초연의 연습과정'임을 배제하고서라도
'그 이후의 시간'..
소천의 시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그 때까지 노년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토사구팽' 같이 보이는 시간이란 것이다. ㅜ.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라고
누가 얘기 했던가?
비록 그가 예수님을 모르는 자여서
죽음 이후의 시간이 '잊혀지고 망각되어질 ' 절망의 뉘앙스이지만...ㅠㅠ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NIV; "I am about to go the way of all the earth,(바야흐로 나는 이 땅 ,지구위의 모든 존재들이 가야할 길을 가려하는 바...)" he said. "So be strong, act like a man (강하거라. 남자가 되거라)}
이제 우리는 다르다.
예수님 영접한 우리에게는
'그냥 가볍다'..
초연하고 담담할 수 있다.
다윗.
그 죽어가는 분의 입에서 이리 조용하고 명석한 말이 나온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 ( the way of all the earth, 지구위의 모든 것들이 가야만 하는 길)로
'가려하는 바'..라 선언하지 않는가?
여기에 하등
그들, 멸망하고 잊혀지고 영멸할 것인
'죽음'에 속절없이 당하는 불신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담담함, 초연함이 있다.
그것.. 무엇인가?
무엇이 그러함의 이유일까?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한 자,
죽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의 소리다.
진실을 알고 진리 앞에 서 있는 자의 경험적 소리.
임계 상황인 죽음 앞에
임계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기대가 있는 자..
그래서 명석하게 될 수 밖에 없는 ..
그 이유가 '부활체'의 새로운 삶, 천국을 앞에 둔 자의
정리....이기 때문이다.
그
더 큰 새로움으로 나가는 자의
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마주하는
'솔로몬'에게 가르치신다.
" 힘써
'대장부'로 살아라.^^*"
영어로 NIV에서 "강하라 . 남자로 살거라" 다.ㅎ
너무 웃기다.
성경에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마치 출원하려는 아침, 유치원 아이에게 콧물 닦아주고 옷 여며주며
당부하고 회사로 향하려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ㅎ
그렇다면
허세에 가득찬 '젠더' 지상주의의 마초 아버지가 맞는가?
너무 그런 뉘앙스인데..
이 새로운 세상을 바야흐로
이 땅(영원에 비춰볼 때, 이 땅의 겨우 왕노릇은 유치원에서 대장노릇하는 거랑 무엇 다를까..비교해서..ㅎ)에서
펼쳐보려고 하고 있는 아들 솔로몬에게
그러한 자리를 마련한 ' 아버지 ' 다윗의 심사가 그렇다.
그렇다면
남자답게..........가 어떤 의미일까?
그러기 위하여
다윗은 마치 마지막 촛불이 불꽃을 사르듯
저리도 맑게 얘기할까?
그것,
하나님의 진정한 부탁과 무엇 다를까?
중요하지 않던가?
정말?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남자 답게
이 땅에서
통쾌하게 사는 것.
이 땅에사는 자들이
이 3차원 세상의 한계에서
최선을다해 사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그것이 '남자 다운 것'의 정수이고
그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너무도 잊기 쉬운것.
멋지게 살다 가자.. 라는 모토로
카톡에 '좌우명'세우고
그리 멋져 보이지 않은 추구가 눈에 보이는
어떤 분처럼...
그리 사는 것이 남자 다움은 아닌 것.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남자다움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하루하루 이루어 내며살다가
마지막...
부르실 그날까지..
그 젊은 날의 영화마져 잊혀진듯한
육신에 유리된 '토사구팽' 같은 시간마져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품을위한,
초연한...영혼이 되기 위한 기간임으로 인식하고
인내하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부르실 그날에
고요히.......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그 잊혀진 듯한 시간마져
하나님이 원하시고 함께하시는 시간임을
누구도 알수 있게 하는 삶...
그게 진정한 '남자다운'삶..
여성은 '여성'다움 .......의 삶 아닐까?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그리고 그러한 남자다울 수 있는 삶의 전제조건은
당연히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하루고...
난...
곧 있으면
이 지구 (earth)에 사는 자 누구나 가야할 그 길에
곧 맞닥드릴 나이다.
돌아본다.
남자 답게 살아왔던가?
남은 시간도 남자 다움에 벗어난 행위는 하지 않던가?
오늘 하루 돌이켜 보라하신다.
그리고......
그 남자 답지 못함,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 하나님 뜻대로
주변을 용서하고
최소한 '악함과 노함과 분함과....'를 온전히 잊지는 못해도
최소한 '옷벗듯'..
그리고 긍휼과 사랑으로 '옷입듯' 그렇게라도 살아왔던가?
그 진실.
인간의 한계..를
마지막을 앞둔 '다윗'에게서 본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미움' 마져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죽기 직전까지
용서로 옷입고 참아 왔으며
의식 한켠에서 치워버렸지만
죽음의 시간이 되자
슬그머니 꺼내놓고 '공의'를 대신 행해주기를 부탁한다.
그게...'시므이'다.
시므이의 미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들들 끓고 있던
젊은 시절의 다윗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악한 죄를 지은 자다.
그마져........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할수 있는
젊은 시절의 왕 다윗이
참아내고 잊혀진듯 한구석에 벗어내놓고 있던 옷임은
그가........
'남자'답게 사는 방법을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행한 것이다.
그 예다.
하지만.. 죄는 죄다.
그리고 그 징죄마져 자신이 갚지 않음이
'남자'다운 또 다른 예시다.
'솔로몬'에게 대신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징죄하라 한것이다.
두 예.. 를 대비하여
죽어가며 '새로운 생명'.. 온전한 부활체의 생명을 마주하는 다윗과
젊음의 생기로 득실대는 생기의 '3차원 '왕, 솔로몬이 대비된다.
그리고
진정한 '남자'(그 시대의가치관을 존중하신 표현.. 진실은 옳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든 여성도 해당한다. ^^*)의 옳은 끝과 시작을 보인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이제 곧
이 지구의 누구나 가야할 길..
저보다 어린 분들보다는
죽음을
조금은 더 가까이 앞둔 자로서
다시 마음을 여밉니다.
어제의 묵상에서 깨달은 바
나이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토사구팽이 아닌
'초연함을 익히는 과정,
천국의 영생을 위한 연습과정으로서
늙음을 통하여
또, 오늘
마지막 입술을 여는 다윗님의 말을 통하여
끝까지 남자답게 살다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남자 다윗과
남자 답게 살 남아 '솔로몬'을 대비시킵니다.
정말 남자다움,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실 용사의 모습이 어떠한 삶인지
육신의 나이에 따라 다른 도전이겠지만
하나님 좋아하신 것이
지금 내 나이에 어떤 것인지
매일 확인하고 돌이키고 회개하며 맞추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되지 않는
깊은 '속상함' 마져
모두 하나님 앞에 원수를 맡기는 삶...
그리고 진정 용서 되지 않는 .. 공의의 문제 ...
그 해결 또한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자의
초연함에 대하여 보게 하십니다.
제 앞을 봅니다.
제 현재를 봅니다.
어두우려 했습니다.
외로우려 했고
속상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멀리 던져 버리어도 될..
당위성으로 절 채우십니다.
남자다울 이유..
남자답게 생각할 길...
아주 명료하고 힘있습니다.
주여.
오늘도 또 말씀 붙들고 힘있게 살겠습니다.
아무도 안알아줘도
제 영혼의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 안에 서 있겠습니다.
오늘..
주여.
이사장님 만나뵈려하오니..
결과 여부를 주장하시고
실망하거나 욕심 내지 않도록
남자답게 붙드소서.
거룩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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