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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 연합함과 주와 함께하는 일상의 형통함[왕하18:1-16] 본문

구약 QT

주 안에 연합함과 주와 함께하는 일상의 형통함[왕하18:1-16]

주하인 2024. 10. 4. 00:26

부제)내가 주 안에 & 주께서 내 안에

 

주 안의 연합 , 주 안의 하나된 초연함 by DALE3. #1
주 안의 연합, 주 안의 하나된 초연 함 by DALE3. #2
주 안의 연합 , 감동, 기쁨, 환희 ,전율 by DALE3

 
 참으로

일상에서

죄송하게도

내가 과연 저런 적이 있었던가

저런 환희의 순간,

매사 잘 형통하여

물흐르듯 모든 것이 잘 이해되고 펼쳐지던

저 내 외적으로 잘 조화된 듯한 상태로

초연함이 내게 있었던가 할정도로

어쩌면 난..

주님 앞으로

주님 안으로

주님 내 안에 거하시도록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고 응시하고 사모하는 자되어야 할 듯하다

 

 주 안에서의 연합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상황

그것을 어찌다 표현해 낼까

하지만 그 감사함이 느껴질 때

난...

그처럼 수없이 많이

그처럼 오랫동안 날 쫓아다니던

괜한 고민 괜한 갈등 괜한 불안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냥 감사

그냥 기쁨

그냥 평안

마치 마음이 한없이 넓어진 공간 같은

그러함으로 체험되어지고

매사 차분해지고 넉넉해지며

마침내 내게 허락되어졌던

눌렸던 감성과 능력들이

폭죽 터지듯이 터져나올 것 같으며

세찬 물줄기처럼 그것들이 흐를때

난... 더 이상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에 구애 받지 않고

흐를 수 도 있을 거 같은 느낌에 사로 잡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때 

내 주변의 일들도

그냥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해결되어질 것 같은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면서 해결되는

그런 흐름들이 유지되고 이어지며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던가

 

그것을 주께서는

주와 연합한 자에게 누려지게 되는

형통함으로 말씀하시고

그러한 나의 상태를 초연함으로 이해하게 되며

그러하다가 마침내 더 커진 감동의 물줄기들이

내주 합일 되어 흐르는 상태가 되면

마침내

'천국 백성의 기초 감성'이 될 것 같음으로 깨달아진다.

 

아..

그러함을 위하여

주께서 자주 자주도

'은혜'라는 이름의 영적체험을 허락하시며

성령의 임재를 사모할 근거로 

이 부족한 주하인들의 매일에 깨닫게 하심이시고.. 

 

아... 또 다행이도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옳은 영적인 습관,

이 성무일과의 큐티 습관이 

내게 허락되어짐이 

진정한 축복 중 축복의 시초임이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유다의 가장 악한 '왕'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된다.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그는 '산당'들을 제거하는 등 모든 개혁을 단행하며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왕으로

'유다'왕 중 '다윗'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 대단하였다한다.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그리고 그러한 비밀은

'여호와께 연합'이라 한다. 

 

 연합.

hold fast to... 라 NIV에 나온다. 

떠나지 않음.

단단히 들러 붙어 있음의 의미.. .

 

 그런데 과연 '믿음'이 

의지로만 될까?

아버지 아하스와 완전히 180도 다른 '아들' 히스기야의 선택.

성장과정에서 

오직 그 아버지의 잘못을 '반대로'만 해야겟다는 깨달음으로 

의지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가정,

그러할 때 '히스기야의 변치 않는 저러함'이 

'연합'으로 표현 될만큼 

그렇게 유지된다는 것은

'영적' 전쟁의 원리에 대하여 전혀.. 깨달음이 없음이고 

'원죄적' 인간의 한계 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음이 맞다 .

 

 그러하기에 

'연합'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개역개정'의 해석이

영어 성경보다는 훨씬 뛰어난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해석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연합'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됨 아닌가?

 

 그러한 하나님과의 '연합'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의 보혜로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심으로 

그 기쁨, 그 전율, 그 평강을 

느끼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심으로 

그 연합, 주 안의 하나됨의 감동을 놓치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됨의 은혜... 

그 놀라운 평강의 확장으로 

'천국'을 살아가는 자들의 어떠함을 

미리

약간이라도 맛을 보게 하심으로 

주님과 동행하여 가는 삶을 멈추지 못하게 하심이고.. .

할렐루야.

 

 보라.

'연합'함으로 

그 ,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삶을 이어갔다 한다.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 '코람데오'의 삶.

주님과 연합되는 자의 심령의 삶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다 셨다. 

 

 형통.

복.

잘풀림.

일상이 술술 풀림.. 아니던가?

 

그런데 정말..

하나님 안에 살면

이땅의 모든 것이 '자유로와'지던가?

 

 

8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보라.

그에게도 '고난'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주님과 연합한 그 히스기야에게도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왔다. 

 

 이 땅의 고난.

특별히 좁은길을 사모하고

주님과의 연합 함의 어떠함을 깨달은 자들,

성령의 충만함을 깊이 사모하며 

주님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도 

이땅의 고난은 남아 있음이다. 

 

 골3:3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라 분명히 나오지 않는가?

 욥기는 또 어떤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부족한 부분을 대하여 

주께서 허락하신 '연단'으로 인하여

이 삶에서의 주님 안에서 '연합'함이 온전하지 못함으로 

허락되어진 고난 아니던가?

 

보라.. 

오직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 '우리의 생명이 감추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자아를 '죽게 '만드시는 과정이 

이 인생광야, 

이땅 삶의 '고난'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무엇인가?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 

'연합'에 대하여 말씀하시는가?

 나.

정말 깨달아 안다 

'주님 안에서 연합'하는 기쁨에 대하여도 알고

주님 안에서 연합하는 자의 기본 감성,

'초연함'이 어떠한 상태인지도 눈치 채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 나에게 

'일상, 일생이 형통'한다는 개념.. 말이다. 

 

그냥... 흐르는 일상의 펴짐.

영육혼간에 자유로운 흐름.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그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깨달아 알게 됨으로

내 내면에서 '자유로 갈무리 '되고

더 이상의 흔들림이 별로 없어지고

그 어떤 것도 

주님 이외에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 

그러면서 금방 건드리면 감동으로 눈물이라도 툭하고 터져나올듯한

나름 고요하고 기대로 두근 거리는 듯한 묘한 느낌... 

사랑스러워 간질거리는 느낌으로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대상들에 대한 묘한 시선으로 바뀌어감.. 

그러함이 '때로 말씀'으로 말씀하시던

긍휼의 시선임,

그 그러함이 내 이 버거웠던 마음의 뒤죽박죽에서는

한번도 생각해볼 수 없었던 마음가짐여서

그 어떤 내 어려웠던 이전의 마음 상태로는 

상상해보지 못했던 마음의 풀림, 

자연스러운 흘려보냄.............으로 펼쳐지는 것... 

그것이 '형통'함으로 이해되어간다. 

 아.

표현력의 부족함으로 

오늘 말씀에서 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게 정말 죄송해서

떠오르는 주제를 가지고 

우선 'AI' Copilot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달랬다. 

 그랬더니 저 그림을 그려 놓았다 .

어딘지 조금 이국적인 느낌이 삽입이 된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법.. 그래서 올려 놓아 보았다. 

 

 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초연함'.. 

'형통함'.

주님 안에서 연합함.. .

정말 그대로 잘 누리고 잘 나가고 있는가?
혹시 '히스기야'왕의 고난 처럼

'욥'의 그것처럼

'고난'이 다가올 때 

너.. 어떠할 건가?

그때도 '형통'.. 그때도 '연합'함에 대하여 

네 이해를 견지할 수 있는가?

그 '은혜'의 흐름... 

그 '초연함'에 대하여 잘 유지할 수 있는가?

 

오늘 다시 돌아보거라.. 하시는 듯 하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우선.. '히스기야'님의 그 뜬금없는 '연합'.. 

주님 안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떠나지 아니하면서 얻어지는 

저 '초연함'들이

제게도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게 하시며

그러한 제 모든 것들이

제 의지나 제 어떠함보다는

그래도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이 작은 몸부림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위로 이심으로 깨달아져 그렇습니다. 

 

주여.

더욱 바랄 것은

고난은 필연이고 

주님 나라 갈 때까지 아직도 남아 있는

이 땅의 미련한 '거짓연합'들..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하는 '영적 반대세력'^^;;들의 붙듦을 

완전히 다 털어내고 

온전히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부르실 그날 온전히 주님 나라로 소천될 수 있도록

더욱 더 저를 붙들어 주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버려진 자로서

오늘 자아가 죽더라도

그 아픔이 너무 힘들지라도

오늘 만큼은 주님 안의 연합,

그래서 허락되어지는 '형통'함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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