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직 주만 바라보고 살기[왕하24:24-41] 본문

구약 QT

오직 주만 바라보고 살기[왕하24:24-41]

주하인 2024. 10. 4. 00:06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이스라엘 망하게 한 앗수르 왕이
지금의 'C국'처럼 자국의 백성들을 합병한 이스라엘 땅에  옮겨
그 땅을 서서히 자신의 나라로 동화되어가게 하는
제국주의 확장정책을 펼친다.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므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몇 사람을 죽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이스라엘, 사마리아 땅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경외 하여야 하신다는 의미로
일벌백계, 몇사람을 죽이셨다.

어떠한 의미인가?
무엇이신가?

이스라엘, 선민백성의 나라가 망함까지도
하나님의 최소한의 간섭 원칙으로 허락되어진 -우리의 잘못된 선택,주님과의 매일매일의 교류의 원칙이 부재로 인한 , 그러나 끝까지 돌이켜 주시려는 주님의 안타까우심에도 불구하고 결국..여기까지 타락해서 ㅠ.ㅠ- 결과이긴 하지만
주께서는 이 마지막일 듯한 결과 -인간의 시선, 망한 나라의 백성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땅, 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으심이고
다시 돌이켜 회복시키실 나라에 대한
주님의 뜻을 보이심 아니신가?

이게 마지막일 것 같고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 같은
그 상황에서 조차
주님은 끝까지 '기대'를 내려 놓고 계시지 않음이며
심지어는 '이방 이주 민족'들을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 보이심 말이다.


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그러자, 앗수르왕이 지혜롭게도
금새 '그 땅 신의 법'을 깨달아
금방 무릎을 꿇는다.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그리고는 사로 잡아왔던 포로 중 '사마리아 제사장' 한사람을 데리고 와
벧엘에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방법에 대하여 가르치게 했다.

그게 '법'만 가르친다고
이방민족에게 기대할 만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까지도 고려하지 못하실 만하시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것이 당연하다.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그리고 그러한 '왜곡'의 당연함은
망국의 이전부터 '산당'등 왜곡된 행태를 하던
'사마리아 제사장'들에게 배웠으니
당연히도 왜곡된 배움에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자신들의 풍습대로 '우상' 섬기던 방법을 적용하여
그대로 혼합된 방법으로
믿는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다.

'목불인견'.. ㅠ.ㅠ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모두 다 아실 것임에도 그리 허락하신 것은
그 누구,
들을 귀 있고 볼 눈이 있는 어떤 이들에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만 경외하'여
'그' 분 하나님께
옳은
'예배하며 제사를 드리는 ' 자 있기를 기대하시며
끝까지 저들 이방인들을 통해서라도
믿는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심이다.

못볼 것 같은 왜곡덩어리들..이다.
눈뜨고는 보지 못할 목불인견의 참상을
하나님,
그 위대하고 대단하시며 그러할 '수모'를 감당하실 이유를
단 하나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실 그 분께서
그리 하심은
오직,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배하고 제사하는 자'
즉 ,하나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면서
그 수없이 많은 절망과 배반을 감내하시면서까지
드디어는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오늘까지'도 너무 익숙한
이 왜곡, 이 혼합, ...
주님을 우상과 다름없는 레벨까지 내려 앉히는
너무도 익숙한 이러한 어려움들을 감내 하시면서 까지
심지어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한번 더......완전한 회복을 기대하며서 까지
허락하신 저 모든 것의 이유가
'예배와 제사'를 포기 하지 못하심이시라심이시다.

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 여호와 그 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예배와 제사로 상징되는
주님과의 교분, 교류를
내려 놓지 못하심이시다.

결국, 허락되어진 모든
지금 우리네 인생,
이 지구적 모든 일들을 통해서
결국 하나의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들'이라는 것이며
그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장함'을 보기 기대하시는
주님의 뜻 가운데 있지 못하는 결과로
여기까지 온 것이란 이야기다.

정말... 필요한 중심.

'되돌이킴'이다.
주님 안으로 돌이킴.
우리네 원죄와 자범죄로 왜곡된
모든 결점들을
주 안에서
매일 제사와 예배로
내려 놓고 또 내려 놓으며
주님 우리를 인도하여 내시는
그 출애굽의 첫 기대를 잊지 않는 자되어
마지막까지 정결화되어
주님과 온전히 교류하여 살아가는 자..
그를 위하여
오늘까지
참고 또 참고 인내하시며
드디어는 '이방 혼합 주의'까지 만연하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까지 오게 되었다하심이시다.

그러기에 더욱더 중용한 것은
'출애굽 시절의 그 뜨거운 임재,
하나님의 절절하신 인도'를 기억해내고
주님 앞으로 다시금 더 돌이킴이다.

그것을 위하여
이 마지막 때
마지막 시간이 눈에 보이는 이 시점까지
참고 또 참아주시고 계실 뿐이시라는 이야기시다.


주여.
정말 두렵고 무섭고 죄송한 일입니다.
어찌 이리.. 교묘하고 어리석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요.
마치 앗수르 왕의 저러함이
계시록에 나온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횡행하며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면서
온 세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영적 대혼란을 유발하는
그러한 시간의 끝을 보는 듯합니다.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혼합주의 '의 만연으로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도 모를
대 혼돈의 시간이 목전에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럴수록
출애굽 그 시간의 하나님,
그 하나님과의 절절한 교통,교류를 회복하여야 겠습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내 안에서 이글거리며 인도하시던
그 시간을 요.

주님.
다행이도 매일 주님 말씀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주여.
듣고 있을 흉내라도 내는 저를
불쌍히도 여기시사
세상의 혼합주의에 왜곡되지 못하도록
강하게 붙드소서.
더 힘내 예배드리는 삶,
더 깊이 제사 드리는 매일이 되어
주님 안에 깊이 안식하며 사는 자 되게 하소서.

폭풍우 밤배의 시간,
유라굴라 속의 시간들이
바야흐로 매일 되풀이 되어도
같이 계신 '예수님'의 등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