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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 이 사람아!(롬 9:19-29) 본문

신약 QT

주하인 이 사람아!(롬 9:19-29)

주하인 2010. 7. 19. 10:20

(롬 9:19-29)

 

무슨 색깔로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게 너에게

무슨 상관이더냐

( 너는 그냥 그 자리에서

네가 누구인지 깨달아

너의 본분을 다하라

그러면 복이 있으리라 )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 이 사람아'

정감있다.

오랜 친구끼리 부를 때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정분 깊은 친족 어르신이 적지 않은 잘 못을 부드럽게 질책하는 듯하기도 하다.

' 이사람 주하인아'

마음에서 죄송하긴 하지만

편안한 안정감의 죄송함 -죄책감이 아니다 - 이 슬그머니 내 가슴을 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오늘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질문 같다.

 

' 네가 누구이기에'

주님은 아신다.

아시면서 다시한번 나에게 돌아볼 기회를 주시려고

약간은 강한 뉘앙스로 다시한번 물어본다.

난, 누구이던가?

 

'감히'

감히 주님께 잘못한 일이 있던가?

무엇일까?

내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죄송한 일을 범한 일이 무엇이던가?

 

'반문하는가'

내가 주님께 반문했던가?

주님께 항명하며 다시 반문하던 일은 있던가?

너무 갈등이 심하여져 주님께 하소연하던 일은 있지만

반문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러시는 것 같다.

 확실한 의문을 표시하며 말로 반문하지는 않지만

말도 하지 않고 불만을 품은 듯 '불순종'한 일을 하는 것..

불만에 차서 자꾸만 똑같은 일을 반복해 되풀이 하는 것...

이런 일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 자신에 대하여 옳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막연히도 불만에 차서 아기뚱한 반항을 하는 것도 그런 것 같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도 모르면서

감히 그 모를 일에 대하여 불만에 차있어

주님의 뜻에 약간씩 불순종하는 일.

그것을 주님은 '의도적인 죄'로 보지 않으시나 그 위험성에 대하여 아시기에

사랑하시는 안타까우신 마음으로  부드럽게 경고하시는 것이

오늘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릇에 대하여 말씀을 계속하신다.

'나는 지어진 그릇'이다.

그릇이기에 그릇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라는 말씀이고

타인의 그릇에 대하여 부러워도 비평도 하지말라는 이야기시다.

 잘못 만들어졌어도 주님의 뜻이고

잘 만들어 졌어도 주님의 뜻이시다.

 스스로의 그릇으로서도 그렇다.

다른 그릇에 대하여도 그렇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그게 '긍휼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긍휼을 받아 들이는 그릇이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고 사랑으로 권면하시는데도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받아 들이지 않고

불평과 불만이 되풀이 되는 것은 '진노의 그릇'이다.

 진노의 그릇이나 긍휼의 그릇이나

그릇이 문제가 아니다.

그릇은 담는 용기일 뿐이다.

그 그릇에 하나님의 긍휼이 담기면 '긍휼의 그릇'이 될것이고

하나님의 진노가 담기면 '진노의 그릇'이 될 뿐이다.

그렇다.

나는 단지 그릇일 뿐이다.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그냥 그릇이다.

못생긴 그릇이든 잘생긴 그릇이든 또, 그냥 그릇일 뿐이다.

선교하는 그릇이든 선교하지 않는 그릇이든 그냥 그릇이다.

나보다 머리 좋고 돈 많은 그릇이든 머리나쁘고 못생긴 그릇이든 그릇일 뿐이다.

나보다 뛰어난 자식 새끼 그릇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나도 내 자식도  그릇일 뿐이다.

...........

주님이 만드신 그냥 그릇일 뿐이다.

단, 내안에 주님이 무엇을 담아 주시느냐에 '긍휼'의 그릇인가, 진노의 그릇인가가 다를 뿐이다.

그것을 모르고

늘 내 부족하고 못생긴 그릇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을 하기 때문에

그 삶이 힘이 없던 것 아니던가?

그것은 주님이 만드신 그릇으로서의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은 '조물주'로서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은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다.

나도 남도 다 주님이 만드신 그릇일 뿐이다.

구분할 것은 주님이 나와 남에게 무슨 내용물을 담으실 것인가이다.

그외의 비교와 좌절은 필요가 없다.

난,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야 한다.

난 그릇이라는 사실이고

주님이 만드신 그릇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이 주님의 권한에 달려 있고

그 권한에 의하여 나에게 어떤 소명과 어떤 빛깔의 내용물로 채워지는 지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와 다른 그릇의 타인에 대하여 비교할 일도 없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님이 어떤 내용물을 달리 담아 주시는 것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크기, 빛깔, 색깔...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다.

그 이상은 주님 만이 아실 일이다.

난 다름을 나쁘거나 비교하여 좌절할 대상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주님의 뜻 안에서.........

 

그게 오늘 주님이 나에게

' 이 사람 주하인'

'참 잘했네....' 하는 소리 듣게 되는 길일 듯 싶다.

 

 

 

적용

 

1. 이 사람아..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리 들으니 기분이 차분해진다.

 감사하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2.  나는 그릇이다.

 주님이 만드신 그릇이다.

 그 사실을 묵상한다.

 내 그릇에 대하여 불평할 일도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다.

 그냥 주님이 만드셨기에 뿌듯할 일이다.

 최고로 잘 만들어 주셨을 것이다.

 그 그릇은 세상에 끼워 넣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이 맞을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담는 그릇이길 빈다.

 

3. 나는 누구인가?

 내 정체는 하나님의 긍휼이 담길 때에야 밝혀진다.

 난, 긍휼의 그릇이다.

 진노의 그릇이 되기 싫다.

 

4. 순종한다.

 모든 것 주님 뜻에 맡긴다.

 흐른다.

 맡긴다.

 막히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5. 아버지 학교 스텝모임 간다.

 전에는 자주 그랬다.

내가 그 모임엔 왜 나가는 가?

지금은 이렇다.

그냥 주님이 허락하시니 간다.

 그 안에 주님의 그릇으로서의 뜻이 있으신 것을 막연히 눈치채고 간다.

 

6. 성경 세장 읽겠다.

 

7. 타인을 비판하지 말자.

 주님의 그릇이다.

그들이 진노의 그릇이 되어도 주님의 진노가 담겨야 될 것이고

그들이 긍휼의 그릇이어도 주님이 긍휼을 담으셔서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

비판도 부러워할 일도 없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냥 주님이 그렇게 한 것이실 뿐이다.

그냥 빌어줄 뿐이다.

 

 

기도

 

 주님.

귀하시고 놀라우신 주님.

하나님이 주신 내 이땅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볼 기회입니다.

그 주님이 날 그리도 다정히 부르시니

힘이 납니다.

'주하인.. 이사람아'

'주하인 .. 이 그릇아.'

아.

살아계신 아버지시여.

그렇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잊었습니다.

제가 주님의 그릇인 것을 요.

무엇을 하던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떻게 나가게 되든

아무 것도 당황할 일도 몸부림 칠 일도

자랑할 일도 잘난체 할 일도 없는 것을

이제야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그릇들에 대하여

아무 것도 흔들릴 일도 없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사람 주하인아.. 지금까지 왜 흔들렸는가 하시는 주님의 웃으시며 하시는

가벼운 꾸지람을 듣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깨닫고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주님이 '이 사람아'하시는 말씀은

 잊지 않고 더욱 영혼에 각인되는

살아 있으신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결심하고 결단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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