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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도 그러셨는데( 롬10:14-2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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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도 그러셨는데( 롬10:14-21 )

주하인 2010. 7. 22. 12:48

제 10 장 ( Chapter 10, Romans )

 

세상이 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고

 

세상이 다 아니어도

맞는 것은 맞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

내가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그 절대의 사랑 안에서

내 영혼에 생기가 그득하니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두손 높이 들어

주님 향해 타는 붉음으로

찬양하고 노래합니다

 

그 사랑 닮게 하소서

주님이 그러셨으니

나도 그러하게 하소서

 

 

  
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주님께 가장 배우고 싶은 게 이것이다.

주님을 보며 경탄하는 것이 이것이다.

'인내'하시는 것.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으려 하고 관심을 표명하지도 않고

늘 배반만 하는 자들을 위해

이땅에 썩을 육신을 입고 오실 생각을 하시며

어찌하여 그들 엉터리 같은 피조물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생각을 하셨을까?

 수천년 , 구약시대의 그 율법주의자 배반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하시고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이 신약시대의

2010년간의 이땅의 인간 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주님은 당신의 인간들에 대한

'짝사랑'을 놓치 못하고 계시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도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다.'

 

 나.

늘 조건적 사랑으로만 점철되어 왔음을 깨달은 지 오래지 않다.

내 받은 사랑이 그랬다.

잘해야 칭찬받는다.

칭찬 받기 위해 잘한다.

잘못하면 혼난다.

혼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비단, 나 뿐일까?

저러한 조건은 세상의 기본 원리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그리도 애쓰지 않던가?

그 애씀이 얼마나 심하든지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나라도 더 얻고 - 그 얻음이 무엇인지 생각지도 않는다. - 가려고

몸부림친다.

그 얻음이 비록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썩은 것임을 알아도 상관없다.

그것이 '칭찬'인 줄 알면 그것이 가식이든 진실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성형미인의 유행.

유명인들이 인기가 떨어지면 자살하는 것.

그것도 어쩌면 그런 것의 일종 아니던가?

이런 '조건적 사랑'은 부작용이 너무크다.

 나.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이 조건적 사랑에 대한 후유증이 크다.

가능하면 세상을 향해, 내 주위를 향하여 '큰 사랑'을 베풀려,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변함없이 주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차려 보면

내 마음에 드는 자들에게만 웃음을 띠고

내 마음에 드는 상황에만 기분이 좋고

내 판단 기준에 어긋나면 어느새 싸늘하게 정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아는 것과는 달리 빨리 돌이키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던가?

아니 깨닫는 것 조차도 모를 때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럴 경우, 그 정죄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 오십대 키크고 목소리크고 얼굴크고

덩치도 앞뒤로도 굵직한 사내 앞에 서 있는  

아들이나 아내나

친구들이나

이웃이나

사람들이나...

얼마나 기분이 묘할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니 늦었다.

자주 늦는다.

왜 이리들 다 늦는가?

이때 아내가 좀 먼저 일어나 나 챙겨주고

아들도 부지런하게 제 할일 다 챙겨놓고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아침이 생기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나이에 열심히 나가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돈을벌어다 주고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속상하려 한다.

퉁명스러워 지려 한다.

오래된 내 속의 사단은 벌써 내 뇌리의 한 구석을 집요하게 사로잡으려 한다.

다행이도 말씀이 생각나며 정리되어 다행이지

피곤한 아침의 늦은 기상 시간에

게으른 집안의 가장은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쉽상의 조건이다. ㅜ.ㅜ;;

 이러고 나면 말씀으로 한참 잘 나가던 자로서

그 은혜의 시간 동안 얼마나 멋진 가장이었던지를 생각나고

그 생각남은 날 좌절 속에 빠드리려

또다른 사단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 봐라.. 너 안되잖아.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에 그리 고착되려 노력을 했는데

 아직도 그게 무엇이냐?

 아직도 조건적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늦으니 아침 큐티책도 못보잖아.

 주님이 좋아도 하시겠다 ~~~~~'

 힘이 없어지려 한다.

'내가 확증하건데 높음이나 깊음이나 천사나.........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이 없으면

나...또 흔들렸을 것이다.

 바보같이, 갈대 같이............

다행이도 잡아탄 택시 안에서 억지로 들여다 본

구절에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들 마져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다.

그것도 모자라 '종일 ' '손'을 벌렸다 하시지 않는가?

종일 벌리신 손도 사랑이고

내 손을 벌렸다 하심은 '개인적인 ' 나의 하나님께서

직접 '내 손'을 벌렸다 하시면 다감하게 말씀하시지 않는가?

어찌 이리도 변함이 없으실 까?

어찌 이분은 당신의 마음에 드시지 않아도 사랑하실 수 있을까?

더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분은 잘 못할 때마다 계속 경고하시면서도

징벌은 가능하면 최후로 최후로 돌리고 계시지 않던가?

 

나.

그렇다.

절대 사랑이 필요하다.

내 자식, 내 식구, 내 동료 , 주님의 형제로 주어진 모든 분들에게

어찌 변화 무쌍한 조건을 걸고 있어야 만 하는가?

어찌 그들의 태도에 내 사랑을 흔들어야 하는가?

순종치 않더라도 그들은 모두 주님의 십자가 대속물의 결과이다.

거스려 말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주님이 사랑하시는 분들이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내 백성'이시다.

그게 비단 그들 뿐이던가?

나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잘해야 자랑스럽고

못하면 실망스러운가?

아니다.

주님은 확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을 통해 날 사랑하신다.

십자가가 날위해 베풀어지신 것을 믿지 않던가?

그러면서도 왜 나는 나에게 가끔은 이리 조건적으로

잘해야만 사랑받을 것처럼

못하면 쭈구러져 구석쟁이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흔들리는 마음이 허락되어져야 하는가?

난 주님의 사랑의 대속물이다.

지금도 그 분은 이 거역하는 나를 , 이 순종하지 못하는 나를

'내 손 내밀어' 라는 표현으로

정감있고 확신있게 벌리고 계신다

 

병실에 회진을 다녀오다가

소아과 진찰실 앞 의자에 앉아있는 어머니 무릎 곁에

칭얼대는 세살짜리 여자아이가 고개는 의자와 엄마 무릎곁에 대고 비스듬히 서 있다.

얼른 그 아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쳐다 보며

'이름이 뭐야?' 하고 콧소리 내듯 이야기 하니까

아이는 재미있는 마음 반, 의사 가운이 두려운 마음 반 섞여서

'우헤헤' 하는 발음으로 중얼거린다.

그래서 '이름이 우헤헤.. 구나 ,    그러면 나이는 몇살이야?' 하니까

'우히..' 한다.

'아 우히 살이구나' 하니 아이는 너무 재밌어 한다.

마음이 얼마나 아이에 대하여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차오르는지.....

아마도 주님의 '내 손벌려 종일토록 기다린다'는 표현이 저런 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를 쳐다보는 주하인의 눈을

수천배 수만배 확대하여 추정하면 그것이 주님의

사랑하시는 절대 사랑의 눈일 것임이 가끔 확신처럼 다가온다.

 

나.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볼 노력을 해야 한다.

내 흔들리는 마음으로 착각하여 흐릿한 세상을 바라보면 안된다.

세상의 조건적 사랑덩어리 훈련장소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완벽한 내 자신'만 사랑 받을 것같은 오래된 훈련 습관에

나 스스로를 맡겨 버리면 안된다.

 

또 하나 묵상에서 배울 것이 있다.

주님은 온전한 사랑으로 손벌려 기다리셨지만

그게 그냥 만은 아니셨다.

끝까지 권면하셨다

 맥스루카도 목사님의 글 중에

"PEACEFUL" 원리 중에

A에 해당하는 영적 원리를 제시하며

'Act' 즉 , 행동하라 는 원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신 바 있다.

P( Prayer 기도' 하면서' ) 얻어진 영적 이득은 금방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다.

지체하면 사단에 흔들린다 한다

'회개'가 되면 얼른 사과하고

' 고칠 점' 이 있으면 고쳐야 하고

권면할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주님은 그러신다.

그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기를

구약의 수천년과

신약 시대의 2010년 동안 되풀이 해오는

이 끔찍하게도 심한 망각의 인류를 위해

오늘도 지치지 않으시고 저러신다.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이렇게 권면을 하신다.

 

나도 그래야 한다.

내 자식, 내 식구들.. 내 주위..

잘못은 기도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주면서

고치게 될것은 '흔들리지 않는 ', 그러면서 ' 순종하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 '끊임없는 '

권면을 해야 한다.

기도하면서.........

 

 

 

적용

1. 무조건 사랑한다.

  내 자식, 내 식구는 무조건 이해한다.

  내 주위 , 내 영적 형제들도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다 .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게 이유다.

 잊지 말자.

 

2.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은 살아 있다.

 오늘도 그러시지 않는가?

 

3. 권면은 한다.

  결과는 책임을 주님께 맡긴다.

  내가 이루려는 것, 내가 이뤄야 한다는 것은 불신의 대장이다.

 

4.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외운다..

  묵상한다

 

5. 나 자신에게 대하여도 '절대적 사랑'을 베푼다.

  부족한 면도 받아들이고 손 벌린다.

  손벌리자.

 

 

 

기도

 

주님.

너무도 부족한게 저 올시다.

어쩌면 그렇게도 조건이 많이 붙어 있는지요.

어쩌면 이렇게도 부족한 점이 많은지요.

그 부족한 나를 심히 좌절한 것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그 절대 사랑을 힘입어

저 다시 일어납니다.

제가 저 자신에 대하여 사랑을 가지고 쳐다본후

그 가벼운 든든한 마음으로 세상을 봅니다.

주위를 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러셨듯, 나를 거역하고 내 분위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팔 벌릴 결심을 해 봅니다.

주님이 그러셨기에 그러려 합니다.

주님 저는 결심하오니

주님의 성령으로 도우소서.

변함없이 지혜로 깨닫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점점 더 확실하게 하소서.

그리고 저로 하여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손벌리심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는 도구로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힘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모든 것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은 주님의 그 큰팔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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