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남은 자(롬 11:1-12 ) 본문
제 11 장 ( Chapter 11, Romans )
나는
남은 자입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내 굳고 올바른 가지에
내 생기넘치는 녹색의 무성함에
주님의 살아계심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주님의 빛을
온 세상에 피워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나는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
주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라시며
주님을 위하여 칠천을 나기었다 하시지 않은가?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남은 자'
남은 자라는 개념이 수년전 부터
나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개념이다.
전인치유.
병원에서 수년간 영육혼의 치료 개념으로 찬양과 기도를 접목한 프로그램에서
찬양리더로 세우신 후
수년간 외로운 노력과 싸움을 하면서
말씀으로 주신 '남은 자'라는 구절에 많은 힘을 얻었던 것이 사실이다.
돌아보면 모두 '은혜'로 가능한 일이었다 .
수년을 혼자 일찍 나가서 ..
이구..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힘든일이 분명하였음에도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스러운 것처럼 느끼게 하셨음은
모두 은혜 때문이 맞다.
그리고 그 후에 나에게 주어진 많은 변화들....
생각의 변화.
현실의 변화.
능력의 개발.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의 열심과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조금은 특별하게 사는 삶은
내가 선택하든 아니하였든
가끔은 외로움과 더불어 초조함을 느끼게 하였던 것은 사실이고
혼란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과정에서 하나로 통일된 훌륭한 모습을 내 주위에 비추어 주지 못하던 때도 있고
지금도 아차아차 잊을 때가 없지 않지만
오늘 처럼 주님이 말씀으로 다시한번 상기시키실 때
많은 힘이 된다.
' 남은 자'
나는 '남은 자'가 맞다.
그 어려운 수년 전의 질곡에서 그 말씀으로 붙드시더니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의 흔들림을
또 한번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어 이전 보다는
조금은 더 발전된 모습의 내 모습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난 남은 자가 맞다.
이제 '남은 자'로서의 나를 깨달음이 조금더 확신이 생긴다면
남은 자는 어떠한 자인가?
위의 '내가 나를 위하여'라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 남은 자, 외로웁지만 무엇인가 의미있는 자로서의 삶의
확고부동한 정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럴듯한 남은 자의 모습을 취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앞세운 내 만족의 삶을 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지만 전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
' 이렇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이 과연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될까?'라는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움직임과
현재 유지하게된 이 모든 삶의 행태와 위치가
주님의 은혜 덕분이었음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함으로 흔들릴 필요도 외로울 일도 없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허락된 남은 자 의식은
나로 더 힘있게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밤.
수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10시 가까이 되었다.
열대야 비슷한 밤이 지속되어
닦은 후 시원한 반팔반바지 잠옷차림으로 책 두권을 들고 침대에 털썩하고 엎드려 자리를 잡았다.
하나는 수학에 나름대로 귀한 재질을 보이며 학창시절을 지내왔지만
유독 약한 '통계' 부분에 대한 간략한 책이 있어
논문 정리하는데 필수적일 통계에 대하여 다시한번 되새기는 의미의 책이고
또 하나는 맥스루케이도 목사님의 책이었다.
통계책은 너무도 딱딱하여
역시 내 수면제로서의 역할을 하는 지
잠시 들여다 보지도 않고서 수면에 깊게 빠져들어갔다.
그러다가 아내가 운동 다녀오고 나서
잠이 깬후 영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러다가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영화' 중 한편을 틀었다.
바로 그 것을 틀기전에 짬을 내어 묵상을 하며
은혜가 넘치는 느낌을 받으면서
난 눈이 거기에 고정되어 벗어나질 못하고 끌려 들어가 버린게
새벽 네시까지였다.
두편의 영화를 마무리 한후
머리가 '멍'한 채로 잠이 들었다.
자는 내내 천둥과 번개가 쉼없이 울려대는 것을 들었다.
깨어나니 늦은 시간.
비는 정말 많이 오는 데 내 마음은 더 비가 오고 더 번개가 치는 듯하다.
' 아...실패.'
' 이 먹먹한 죄송스러움'
' 또 말씀을 묵상할 시간조차 충분치 않다.'
아들이 먼저 일어났기에 '병원까지 운전해달라' 부탁했다.
묵상은 차에서 ..
주차장에 세우고 내려올 시간도 없기에..
심한 빗줄기를 뚫고 가면서 뒷좌석에 앉아 들여다 보니
'남은 자' 가 눈에 들어온다.
' 내가 나를 위하여'..
주님은 나의 그 어리석은 지난 밤의 '시각적 정욕'을 제어 못함을
안타까워 하시고는 계실 지 모르지만
그 안타까움으로 나를 질책하시지는 않으심이 맞으시다.
감사하다.
이전엔 그랬다.
'회개를 넘어서는 죄책감'
그게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마땅히 그래야 내 죄에 대한 보속이 되는 지 알았고
추후에 더 죄를 안지기 위해서는 죄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님에 대한 부담감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함을 놓치지 않으면 주님께서 인도하신다.
그리고 나서는 그 인도하시는 회개의 마음을 통하여
비온 후의 깨끗한 하늘 같은 마음을 허락하시는 것이시다.
주님
은혜를 주소서.
주님의 은혜로 만이 제가 남은 자임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주님.
주님의은혜로야만 제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있습니다.
틈만 나면 흔들려 버려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 서 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야 마는 자에게
남은 자라니요...
주님 .
주님의 은혜로 저를 가득채우사
주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어려움과 힘듦과 외로움과 막막함을 이기게 하소서.
그 이김이 남은 자이었음을 인식하고 살아감으로 그리되게하소서.
모든 엉터리같은 상념들에
말씀으로 이기게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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