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하인의 집[삼하9:1-13] 본문
바쁜 오전 시간을 지내고
바쁨을 빌미로 잘 와닿지 않는 묵상을 미루며
그렇듯 흘려보낸 안타까운 시간들 사이
잠시 빈 점심 식후의 시간
하나님은 10년 넘게
그렇게 그렇게
이곳 블로그 글을 쓰게 하심 뿐 아니라
당신 안에서 나 주하인의 집을 이끌어 오셨음을
다시 한번 확연히 깨닫게 하셨다.
진료실 불을 끄고
적은 서브 노트 북과 연결된
저렴하고 오래된 B사 스피커 통해서 흘러나오는 찬양의 소리와
진찰실 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더운 낮의 시원한 에어컨 밑이란 조화를 통하여
내 영혼에 묘한 행복감을 불러 일으키시더니
사울의 집에 대하여 집중케 하신다.
그리고는 늘 그러하시듯
내 영혼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맑은 감성이
내 머리와 가슴을 헤집고 다니는
갈피 잡기 힘든 생각들을 뚫고
무언가 깨닫게 하신다.
이런때 내가 할 일이 있다.
그냥 얼른 '아멘'하고
다시 글을 쓰려 자판을 끌어 당기면 된다.
그리하면
또 하나님이 글을 쓰시고
난
내 가슴을 훓고
머리에 선한 생각으로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레마의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살아계신 내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존재를
이렇듯 부족한 나를 통하여
또 그렇듯 드러내신다.
할렐루야.
1.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님이
때가되니 (난 이 때가된다는 표현이 살갑다...하나님이 때가 되시면 하게 하실 일... 자유로와진다.^^*)
전쟁을 크게 크게 마무리 하고 나서는
사울의 자손들을 살필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게 만일
자신의 생각이나
오랜 성격적 바탕에 의하여 이루어진 '비전'이라는 이름의
다소 '자아적 , 영웅적 발상'이라면
조금은 어색하고 유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어떻게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냥 다윗님이 성경에서 저렇게 외치는 시점을 근거로 추정하고 느껴질 뿐이지... ^^*
어0든 그는 그를 그토록 핍박하고 죽이려했던 '사울'의 자손을 찾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게 자신의 뜻대로라면 그 생각 속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면 아마도 세상이 나를 그릇 큰 인간으로 보지 않을까'라는
계산이 스며 들지 말라는 법이 없단 이야기고 ,
그렇다면 그건 영웅주의적 소아 병이 될 수 있는 위험이고
그렇게 그렇게 세상에서 성공한 자들의 말로의 왜곡됨을 누차 보아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사진 밑의 글처럼
저 분위기에서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시작하는 순간..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는 생각이 이거다.
" 왜 요나단의 집이 아니고 사울의 집일까?"다.
아무리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염두에 둔다 해도
'염(念' 은 생각이고 '두(頭)''는 머리다.
인간적 발상이기에 언젠가는 왜곡되어지고 흐려진다는 이야기다.
요나단의 집이라면
그의 절절한 애정의 대상이니
비록 의도적은 아니어도 다윗의 입에서
사울의 집보다는 요나단의 집이 툭~하고 터져 나옴이 인간적이고 당연한 생각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요나단의 집'이라 안했다.
'사울의 집'이라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의 사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
그것도 요나단을 넘어서는 일방적 애정이 식지않고 저리도 유지됨은
온통 '하나님의 품성'이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통하여 흐르게 하시는 절절한 애정이고
그 인간적임을 넘어서는
따라잡기 힘든 감성,
그러나 그 감성이 회복되어야 하는 게
우리 믿는 자들이 획득해야 할 ' 좁은 길'을 통한 성화의 결과,
성령의 폭포수처럼 허락되어지는 감성이란 이야기다.
아울러,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주장하는 글 중에서
요나단과 다윗의 애정은
남녀의 애정보다 짙은 바 '동성애적 '감정이다...라고 주장하는 아주 더러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
'에이 퉤 ~~!!' 하면서 욕을 한번 해주고는 덮었지만
요나단과 다윗의 묵상을 할 때마다
의혹이 슬금거리며 올라와
마음이 더러웢디는 느낌을 버릴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
오늘 '사울의 집'을 통하여 확신하며 마음이 깨끗해져간다.
나.
우리... 모두 안다.
더러운 욕심은 더 강렬하다.
음란하고 엽기적인 동영상들이 중독적이다.
독있는 버섯은 더 아름답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과 교만과 추악은 뿌리가 더 깊어진다.
그게 원리다.
그러나... 다윗님은 오늘 '사울의 집'을 외쳤다.
그것...
철저히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다.
나..
그러함을 이해한다.
내 안의 온갖 .. 더럽고 강력한 유혹들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얼마나 육신의 힘이 강한지는 내 주변 사람들이 안다.
처음에 예수님의 첫사랑으로 그렇듯 쉽게 그러한 강골 강퍅을 부러뜨리시며 수개월의 부드러움을 주시더니
이제는 말씀으로 아주아주 조금씩
내 감정과 내 생각의 절대 그러지 못할 한계선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가시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내 감성이 흐름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 내게 허락하시는 보상은
' 놀라운 평화' , ' 이해할 수 없는 감동', '평강', '샬롬'이다.
오늘도 그렇다 .
도저히 말씀이 들어올것 같지 않고
생각지도 못하던 말씀이
눈을 감고 '현재'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려는 시도를 하는 순간,
인사이트로 레마를 주신다.
내 지금껏 ,여기까지 옴이 그랬다.
그래서 자유롭다.
별로 걱정을 하지않는다.
어려움이 올 때는 조금 덜 당황한다.
더 특별한 방법으로 , 선하게 인도하시겠지... 가
요사이 내 가슴을 흐르는 기저 생각들이다.
그렇다.
나.. 주하인의 집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나, 주하인의 집을 인도하시려 매일 성령으로 인도하신다.
나 주하인의 집을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득채우신다.
부디 바라기는
나 주하인의 집에 연관이 있는
내 자식들의 집, 내 아내의 집.. 내 가족의 집.. .내 지인들의 집...
알지 못하지만 나와 같이 이땅에 거하는
내 , 소수의 영적동지들의 집에
하나님의 영이 그득하길 원한다.
다윗이 눈에 보이게 축복하듯
이 땅에서도 나와 모두의 집에 넘치는 그것이 임하길 원한다.
특별히 '야 사모님.. 목사님의 집'에 더욱 그러하기를 잠시 더 바란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내 마음의 부담이 있었습니다.
살짝 , 깨어있지 못하는 내 머리에
블로그 글을 쓰는게 의무처럼 무거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빠질까... 생각도 했지만
가슴을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또 저를 이끄십니다.
그래서 깨닫습니다.
요나단의 집이 아니고 사울의 집이구나.. .
배은 망덕이 아니고
그안에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감성이 그를 감동케 하는 구나
그러기에 나도 또 시간을 넘나드신 하나님이
내 주하인의 집을 축복하시고 이끄실 것이고
내 자식들, 내 아내..내 지인들....모두 의 내 집을 그리하실 것임을
깨달아 지니 마음이 녹아날듯 기쁩니다.
뜨거운 것이 가슴을 흘러 다님을 느낍니다.
아
살아계신 하나님.
이 주하인을 놓치 않으시고
내 집을 축복하실 것을 알게 하시는 주님.
아니... 그것을 앎이 자유이고
그것을 아는 것... 그 놀라웁고 세미한 비밀을 깨달아 아는 자가 얼마 안됨을 알고
그것이 더욱 큰 축복임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흐르심이 정말 기쁩니다.
아는 게 제 영혼의 큰 변화로 바뀌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받아 들여야 만 할 것들[삼하12:15-31] (0) | 2016.08.01 |
---|---|
내가 임신하였나이다[삼하11:1-13] (0) | 2016.07.29 |
어디든 누구든 이기게 하소서[삼하8:1-18] (0) | 2016.07.26 |
주님 앞에 들어가 앉아[삼하7:1-17] (0) | 2016.07.24 |
여쭈어 이르되 [삼하5:11-25] (0) | 201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