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의 광명과 죄얼 (시36:1~12) 본문
2007-03-12 시편 (Psalms) 36:1~36:12
1. 악인의 죄얼sinfulness of wicked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2.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만화 영화에서 사탄이 속삭이는 장면이 잘묘사 되며
그리고는 그것을 받아 -선택-
악한 행동을 하는 장면을 보게된다.
그러한 표현은 비단 한 문화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만화 어디서라도 그런 표현이 나온다.
사랑과 영혼의 마지막 장면에
검은 저승사자가 영혼을 잡아 채가는 모습이라던가
깊은 밀림 속의 원시 부족들의 종교적 행위나
세계 어디에도 사후세계, 지옥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나 불문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묘사가 비슷하게 진행된다.
어제 저녁 늦게 집을 방문하신 J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지속적으로 되풀이 하고 있는 그 분의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해 주었다.
그러자
그 얼굴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심한 얼굴 표정의 변화가 일어나며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을 주며 - 실제로 심한 소리가 아니었다 .- 씰룩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예상하고 상당부분 영적 부분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며
그 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 당황되지는 않았지만
의외의 결과에 난 다시 한번 속으로 '죄얼' - 오늘 아침 시편에 나온 이 죄얼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처음 보는 표현이면서도 절묘한 시점에 절묘하게 표현되었구나 생각하면서 또 한번 주님께
내 생각을 확인 받았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의 현실화에 대하여 놀라고 있었다.
사람은 영혼, 마음, 육신으로 이루어진 전인적 존재이다.
언제나 영적 상태에 의해 선과 악의 영향을 안테나 처럼 받을 수 밖에 없고
그 영향을 주체적으로 선택함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고 그 행동의 결과가 쌓여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기에 주님을 구주 - 내 영혼을 구원하신 주인 -으로 선택함 만이 최종이 '천국'이고 악한 생각 - 죄얼 즉, 사단의 것-을 선택함으로 악하게 인격이 익어가는 것이다.
오늘 죄얼의 유혹에 대하여 주님은 명확히 써 놓고 계신다.
'우리 속에서 죄얼이 속일 것이다.
스스로 교만하게도,
아무도 모를 것이니 괜찮을 것이라고.. '
그 분의 그 격렬한 변화 후에
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원리와 영육혼에 대한 전인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토록 그 분이 과도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음을 조잔 조잔 얘기하여 드렸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굉장한 다변가인 그 분은 눈을 번쩍이며 내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6.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성경을 보면서 이처럼 한번씩 비유적이지 않고 직접 얘기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지고 다가오는 구절이 있다.
꾸미지 않은 투박한 표현.
주님은 사람과 짐승 - 여기서 짐승이란 표현이 왜나오나? 시를 읊다가 분위기 깨지는 표현을 시인 스스로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이란 단어를 선택하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제 그 분
새벽 세시까지 날 붙들고 내 이야기를 파고 들어 왔다.
그리고는
완전히 평온을 되찾으시면서 이리 얘기하셨다.
" 주하인님 덕분에 원리를 꿰뚫게 되었어요.
50넘어서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이유를 모르고 왔던 것도 이해하게 되었고
성경이 깊이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는 이리 고백하신다.
' 전 주님을 놓치면 죽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뒤죽 박죽이라서요.
이제 이해가 됩니다...'
한번씩 거친 내 입을 통하여서도 주님은 역사하신다.
당신의 이름으로 발해지는 어떠한 얘기도 쓰이게 하신다.
단,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아침에 '주의 날개'라는 통속적인 듯,
너무도 자주 나오는 표현에 눈이 멈추었다.
그러면서 '주의 날개라는 표현을 왜 다윗은 쓰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잠시 묵상을 했다.
그러자 날개 속에 있을 병아리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
그 분은 그 분의 존재를 인정하기만 하고 시인만 하면
주의 날개로 날 감싸신다.
J 님, 그 분의 심사를 난 안다.
누구보다 어지러운 생각을 되풀이 하면서 살아오다가
주님을 가까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면서 난 광명을 보고 있기에 그렇다.
어두워도 밝아오는 여명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어두움이 못오게 하는 강한 빛 안에서도 사는 기회가 점차로 많아지고
밝음의 그 기쁨을 맛보고 있고
주님의 기쁨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워 유혹에 좀더 멀리하는 주님 중독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본다.
내가 기쁘려고 노력하고
내가 안그러려고 노력하며
감정 자체를 불쾌하지 않고, 슬프지 않고, 어둡지 않고, 우울치 않기 위하여 하는 일련의 노력들...
그러기 위해 막연히 이리저리 사람을 찾아다니는 노력들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근원적 처방이 아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단해지면서
우울증 환자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유명한 탤런트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있고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나이들고 대단한 직위의 분들이 한강으로 뛰어 내리고 있다.
병원에도 정신과는 늘 혼잡하다.
우울증까지는 아녀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잊기 위해
산으로 산으로 나가는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끼리 네트워킹을 이루어 불안을 잊으려 하고
성공학이라는 책이란 책은 베스트 셀러 대열에 끼이고
가장 높은 대통령과 모 장관 국회위원... 존경 받을 분들의 이기적 횡포는 모두 그 일련의 불안감을 잊기 위한 자기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
인터넷을 보면 길잃은 영혼들이 밤을 지새우며 그 안에서 자기의 정체를 발견하려 몸부림 치고
술집에서는 마취 당함으로 영혼의 찢어지는 고통을 잊기 위한 사람들이 들끓음을 볼 수 있다.
어떤 수를 써도 안된다.
생명의 원천은 주님께 있다.
그 분 만이 근원적으로 힘을 주실 수 있다.
마음에 광명이 찾아옴도
그 분의 광명을 나누어 받을 때만이 가능하다.
내 노력이 아니다.
주님의 광명을 그냥 나누어서 받으면 된다.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
세시가 넘어서 J님은 너무도 기뻐하고 있었다.
기도
주님
오늘은 광명이신 하나님 곁에 꼭 붙어있음으로
광명의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날 유혹하는 죄얼의 것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논리를 가지고 유혹해도
주님의 광명의 것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냥 주님의 주시는 광명으로
내가 광명 중에 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주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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