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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대신 싸우소서(시 35:1~18)

주하인 2007. 3. 10. 11:29

2007-03-10 시편 (Psalms) 35:1~35:18

 

( 폭풍이 지난 후 ...)

 

 참으로 복잡한 사나이.

주모

 

 엊그제의 그 대단한 성령인도의 체험을 하고

그 담대함의 평강을 맛보고

어제는 병원에서 의료원장과 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나름대로 정결화되고 안정화된 위치가 공고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마치고 집에와서는

이해하지 못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내가 잘못하거나 예전과 같은 그런 흔들림이 없음에도 괜히 마음이 답답하고 심장이 멍하다.

칭찬받고 난 후인데...

 

 떠오르는 생각은 있다.

그게 문제긴 한데...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나의 오래된 습관

내 속을 저며 파는 오래된 잘못된 생각들.

그게 날 불안하게 하고 답답하게 하는 것이다.

오랜 주님의 말씀을 통한 조명으로 들어나고

옅어졌지만

날 매고 있는 이런 악한 감각들은 날 가끔은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다.

' 너는 이게 뭐니

  나이도 있는데 원장할 때도 되지는 않았는가?

  그렇지만 네 주제에...

  사람들이...

 ........'

나는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 .

재물에 대한 것도 그렇고..

그럼에도 진정으로 내 본심과는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자주 힘들었었다.

어제도 옅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 들에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려 놓아야 할  

 

 이제는 그러나 대처 방법이 생겼고

상당 부분 빨라졌다.

 

 그것은 말씀을 가져다가 대입하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게

주님은 꼬옥 내 속을 아는 것 처럼

아침마다 눈에 확들어오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것이

나로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늘 느끼게 하신다.

그리고

말씀을 선택한다는 내 선언 만 있으면

그 말씀이 내 영혼 속에 들어와

악한 감정을 초토화 시키고

그 평정된

전쟁 후의 잔재 위에

주님의 성령이 승리의 기쁨으로 날 채우시는 체험이다.

그 체험은...

 

오늘 말씀을 가져다 아침까지의 부담에 대입시키는 선택을 하고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며 십자가에 내려놓는 듯이 내 마음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니

주님이 알아서

내 속의 어둠의 생각과 다투어 주시고

내 심장을 마구 뛰게 하려는 가슴앓이의 세력을 싸워서 없애 주신다.

지금

마음이 편안하다.

 그 분이 나 대신 싸워서 이겨 주셨다.

 

 

 

5.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  마음은 새처럼 자유롭고.. )

 

 

 항상 내 인생을 어둡게 보게 만들던 생각들이

이러한 체험 속에서

바람을 맞은 겨 같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고

그들의 존재는 없어진 겨와 같다.

 

질투와 속상함의 후유증은 얼마나 큰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세상이 번거러워지고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좋은 생각으로 자신을 채울 여유를 주지 않으니

자신 속에 어떠한 악한 소리들이

말을 통하여 외부에서 들어온 소리들이 존재하는 지 조차 모르고

설령 알아도 대처할 여유조차 없이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저녁에 자고

일어나고 또 자고 ...

하는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생활 속에서

그 악한 세력에 속절없이 넘어져

영혼이 휑하니 파이는 일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비단 불신자의 일 뿐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도구를 주셨다.

 

성령이시다.

인식만 하고 그 분에 맡기려는 노력과 약간의 믿음

거기에다 주님의 말씀으로 내 속을 채우려는 시도 - 큐티 - 만 매일 같이 되풀이 되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이 해결될 문제들이다.

 

다시말하면 이것은 내적인 승리요, 성화의 다름 아니다.

중생의 심화요

성자의 지름길이고

이긴 자의 경지고

영적인 아비의 단계이다.

 

이것이 단지 말과 표현상의 문제라면 그게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겠는가?

단지 말 장난에 불과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단지 신앙의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분의 피조물이다.

그러기에 이 삶은 주님 나라가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살다가 죽어버리면 끝나는 허무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위엣 것이 전제가 된다면

그 위의 평강의 어마어마함,

행복의 끝없음,

기쁨의 환희 ,

감사함의 눈물은 익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주님 나라에

주님 그 분이 좋아하시는 상태로 가야함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이 땅에서 내 영혼 속의 반갑지 않은 존재들이

주님으로 인하여 가벼워 지고

결과론 적으로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가고

그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원리이라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있는가?

 

힘이 나는 일이다.

 

 

 

 

 

 

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화 하나님을 즐거워할 이유가 충분하다.

구원을 받음이 어찌나 감사한지.

성경의 구절구절이

매일 같이 살아서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이야 말로

그리고 그 체험이 내 일상의 변화를 이루어 지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기쁘다.

물론 넘어질 때도 있다.

넘어지는 것 조차 그러나 감사하다.

넘어질 때는 아프고 힘이 들지만

그 넘어짐을 통해서 주님을 더 붙들고

주님께 한결 같이 고착될 수 있으니 얼마나 가능한가?

 

 인격적으로 교만이 천성인 나는

만일 매일 같이 승리하고 전혀 실수가 없다면

이단 교주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게 스스로 느껴지는 자이다.  ^^;;;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나는

내 끝간데 없는 교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 특히, 내 식구들과 동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고를 강요 당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주님을 모르던 옛날의 포악 교만한 내가 식구들에게 얼마나 힘든 가장이었던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멍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난 늘 주님을 의지하길 원합니다.

주여

내 대신 싸우소서.

난 주님 등 뒤에 숨어서 그냥 있으렵니다.

주님이 다투소서.

주님을 믿고 가만히 있으렵니다.

주여

당신이 예비하신 선물을 주소서.

마치 아들이 아버지가 주는 단 사탕 먹듯

난 구원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단 꿀을 깊이 마시려나이다.

아침에

아직은 포화의 쓴 냄새는 가시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고요의 평화를 맛보고 있습니다.

대신 싸워서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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