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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 모든 것을(시37:21~40) 본문

구약 QT

내 일생 모든 것을(시37:21~40)

주하인 2007. 3. 14. 08:43

2007-03-14 시편 (Psalms) 37:21~37:40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혹시 오늘 빌려줄 일이 생기거든 그냥 줄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실 줄도 모른다.ㅎ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해 놓아야 할줄도 모르겠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내 걸음을 정하셨다.

내 걸음 내 인생 내 비젼... 내가 고민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분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때에 보이실 거다.

문제는 정하신 그 길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히 알 수있는가다.

결정은 늘 끊임없는 그분과의 대화가 필요할 뿐이다.

 부모가 어린 아이의 발걸음 인도하시듯

한걸음 한걸음 발 떼는 걸 지켜보시고

그 걸음을 기뻐하신다.

너무 웅대하고

한번에 응답으로 모든 걸 결정하려는 것은 과도한 우리 기대의 다를 바 아니다.

주님은 발걸음을 기뻐하시지

빨리 달려서 목표에 도달하고 쉬는 아이는 그리 이뻐보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기대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지만...

 

난 주님이 보고 계시는 자다.

아이와 같이 한걸음 씩 발걸음 만 떼면 된다.

그리고 앞만 보고 내 걸음에 충실하기만 하면된다.

잘못들어선 걸음일 때는 그 분이 내 걸음을 돌려서 정해주실 것이다.

  

 

 

 

 

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아이는 넘어질 수 있다.

우리도 넘어질 수 있다.

넘어지는 것은 허락된 숙명이다.

아플 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도 있을 수도 있고 세상의 망신도 있을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넘어지는 현상이 주님의 허락하에 있을 수 있다.

 그 넘어짐이 경우에 따라서는 심하여 깨질 수도 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플 수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암담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주께서는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 묵상에서도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힘이 들다.

자꾸 힘이 조금씩 더 들어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주님의 허락하신 한에서 힘이 들고 넘어지는 사실이란 것을 깨닫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려움처럼 아주 일어나지 못할 어려움은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럴 때 주께서 손으로 붙드셔서 예전에 종종 느끼어 왔던 예기치 못한 때에 주시는 강렬하고 통렬한 은혜의 체험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힘이난다.

믿어진다.

그 분이 손으로 붙드시는 것은

그 연단의 아픔을 통해서 강해지고

붙드시는 그 때 주님의 엄청난 은혜의 체험을 약속하는 것이며

다시 일어서게 될 때는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다리의 힘이 생길 것임을 의미하는 것을 알기에

힘이 난다.

 

그 분이 나를 붙드신다.

 

영화 속에서 쓰러지는 여인을 뒤에서 나타난 듬직한 흑기사가 떠 안아 밭드는 그런 붙드심이 연상된다.

그 여인은 비록 대상이 사람이지만

얼마나 뿌듯하고 힘이 날 것이던가?

이마에 한 손을 잡고 머리를 돌려 지그시 올려보는 여인의 강렬한 눈빛 속에서

안도와

듬직함과

사랑하는 마음과

이제는 고생 끝이고 새로운 기쁨이 시작일 것이라는 기대가

짧은 순간이지만 그 눈빛에 스치고 지나지 않던가?

 

하나님의 붙드심을 실제적으로 느낄 때 그 얼마나 감동스러울 것인가?

 

그분은 날 붙드시고

나의 넘어질 것을 아시고

넘어지는 것은 주님의 선택 받은 자면 누구나 겪어야할 필연이고

그 필연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임을 알게 해주시는 오늘 묵상이 참으로 감사하다.

힘이난다.

난 그 분의 보호 받는 자고

더구나 넘어질 수록 힘이 돋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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