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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저 인가요(마26:17-25)

주하인 2010. 3. 24. 09:48

제 26 장 ( Chapter 26, Matthew )

 

 

주여

저 인가요

 

저 맞군요

 

이처럼 

사랑받고

이해받고

보호받는게

바로

저 였군요

 

주여

감사합니다

 

제 감동 받으소서

제 정성 받으소서

그리고

주님 향한

제 사랑도 받으소서

 

 

 


 
 
18.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아무에게나 가서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시겠다고 하실 때

그게 '나' 라면

쉽게 받아 들여 졌을까?

 아마 , 머리 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돌아 다니지 않았을까?

일단 예수님의 위명을 들었던 상태로 가정을 하여

그 분을 모심이 영광이라 생각되어도

아내가 어찌 생각할까?

내 집은 좁은데 이 많은 사람들이 어찌..

돈은?

음식은 누굴 오라해서 준비하나?

장모님 오시라 할까.. .등등

수없는 생각들이 떠돌다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주님.

예수님.

그 분은 당신이 인간의 몸을 쓰시고 오셨지만

이까짓 육신이 당신의 '신성'을 감추실 수 없음은

기적을 베푸셨던 사건들 빼놓고도

불현듯 불현듯 세미하게 정신을 차려야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성경에서 나타내 보이신다.

그게 우리 일생의 삶속에서 살아갈 때

그 분의 살아계심을 세미하게 눈치 챌때

감동으로 전율하듯이

여기에서도 그러하시다.

 길가에 가던 자를 잡아 아무에게나

'유월절 지낼 곳을 제공하라.

 그리고 음식도..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란다.'

그러시면 그 누구든지 주님 말씀대로 될 것이고

그것을 믿는 제자들이 그냥 가서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 하고

그 붙잡힌 자는 또 그대로 시행하고.....

 이거야 말로 기적 같은 일 들이 아닌가?

 

  그 붙잡힌 자.

나의 예를 들었지만

어떤 생각으로 순종했을까?

내 예는 들었지만

아마도 난 그러면서도 '스르르~'하고 생각의 끈을 풀어 내리며

순종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 만큼 예수님 믿기 어려울 자로 찍어도 찍을 수 없을 만큼

강퍅하기가 그지 없는 자였다.

자아가 충만하기가 하늘을 찔렀고

생각이 많아 비판과 판단과 정리가 확실했다.

 그러기에 위의 '불확실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더구나 길거리에 맞닥드린 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견딜수가 없던 자였다.

하지만, 그런 내가

정말 불합리 하게도

가장 적은 개척교회의

그리 깨끗지 않고

그리 편하지 않은 '長 의자'에 앉아 눈물을 떨구며

주님을 영접하고 말았다는 것 아니던가?

 난

그게 기적이다.

그것 만한 기적이 또 어디있는가?

얼마나 더 기적이 있어야 난 만족을 하겠던가?

 

 이제 이후

예수님의 저런 부르심을 받는 다면

난 위의 예의 생각들을 안하였으면 한다.

물론 덜하겠지만

얼른 빨리 순종하고 받아 들이는 자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저물 때' 다.

아마도 그 사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러 갔고'

다시 돌아와 서성이다가

이끌리어진 방으로 들어가 '만찬'을 맞이 했을 것이다.

 저녁까지

주인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고

음식 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을 것이고

아마도 집안의 어린 자녀들을 시켜서

방의 청소를 시행하고

의자를 배치 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준비하는 과정은

부산 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저물매'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꼭 나에 대한 것 같다.

'나이 저물매'

'인생의 중후반 부'

' 뉘역한 나이의 나'

..........

 이 나이가 되니 오히려 '자유롭다'

이 나이가 되어도 만일 세상의 것 들에만 신경을 썼더라면

대부분의 지금 중년 남자들이 그렇듯

대부분의 그 당시 중동의 나이든 남자들이 그렇듯

그리 평강이 없지 않지는 않았을까 하는

감사한 여유로움이 날 사로잡는다.

그것.

절대로 주님이 축복하셔서 노후가 준비되고

물질적 풍요로 날 채우는 등...

현실의 방벽이야기는 아니다.

영적 평안함.

잔잔한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 예수님'을

'내' 구주 예수님께서

내 영혼의 중심에  '앉으셨기'에 그런 것이다.

감사하다.

정말 부러운 것은

어릴 적부터 주님을 영접하였더라면.. .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시간

내 달란트하고는 상관없는

가장 선인 것임을 추측할 수 있기에

그것 마져 주님의 뜻 안에서 바라본다.

 

이 뉘역한 시간에

주님은 내 영혼의 중심에

앉으셨다.

 

 
  
  
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이제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

믿음은 일회성이 아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날 돌이키지 않으면

순간에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증거한다.

매일 말씀 앞에 날 세우려

몸부림 쳐야 한다.

성령으로 날 사로잡힐 결심을 않으면

언제고 실족의 위험이 다분하다.

이 땅은 '영적 전쟁터'임을 안다.

광명의 천사처럼 다가오는 사단은 

늘 의혹으로 우릴 흔든다.

 수년간을 직접 예수님의 제자로 행하던 자들도

'주여 나입니까?'하고 묻는다.

그게 정답이다.

자신조차 자신을 알 수 없다.

어찌 오늘의 나를 다 된 자 처럼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겸허하지 못한 일이다.

주님 앞에 늘 나를 낮추고

'주님  저는 아니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를 멈추고

말씀을 하루라도 멀리하는 순간

그 순간이 사단의 밥이다.

 

 중심에 앉으신 주님.

그 주님의 선택하신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끊을 자 누구이겠느냐 마는

끊음을 선택하게 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철저히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는 동안은

주님은 절대로 우릴 떠나지 않으신다.

 

이 석양의 나.

내 영혼의 집에 앉으신 주님을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낮추고 겸허하고 기쁘게 지내야 겠다.

 

 

 

적용

1.  감사하는 하루가 된다.

 어떤 것이든 감사하자.

 무엇 하나도 주님의 뜻이 아니신 것은 없다.

 주님은 보시지 않으시고도 제자들이 나를 만날 줄 아시었다.

 나는 철저한 주님의 보호 아래 있다.

 

2. 주님을 모시고 다니는 '나'

  신중한 행동을 하자.

 나를 낮추자.

 겸손한 것을 기뻐하자.

 낮아짐을 감사하자.

 

3. 말씀 여덟장 읽겠다.

 

4. 남의 어려움을 돌아본다.

 석양에 날 구원하신 하나님.

 누구도 제한할 일이 없다.

  누구도 주님을 영접할 자격이 있다.

 전도의 말씀을 무시로 전하자 .

 

5.  기도하자.

  어이없는 일에도 주님의 뜻이 계심을 잊지 않을 수 있기를..

 

6. 저물매 내 영혼에 앉으신 주님을 묵상하자.

 

 

기도

 

 주님

놀라운 주님.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다 주님의 뜻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

 어찌 전 이리도 쉽게 주님의 뜻을

매사에 잊고야 마는지요.

특별히 돌아보면

절 뉘역한 시간에 구원하시고

내 영혼에 들어와 앉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살아있음이 주님의 은혜 탓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조금 더 부산히

주님을 위해

맛있는 양식으로 바쳐 드려야 겠습니다.

주님을 위해 조금 더

충성된 모습으로 영광드려야 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더욱 더 날 낮출 수 있길 소원합니다.

예수시여.

사랑하시는

사랑하는 예수님이시여

절 잡으소서.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잡으소서.

절 놓치마소서.

이제 나이 들어 더 어두워

주님 놓치면

전 돌이킬 시간도 없을까 두렵나이다.

감사합니다.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이해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고

지혜를 더욱 부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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