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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불의 삶을 위해 (마 25:1- 13)

주하인 2010. 3. 20. 09:50

제 25 장 ( Chapter 25, Matthew )

 

밝히소서

제 영혼 온전히

주님의 손에

맡기리이다

 

기름

 부으소서

등불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리이다

 

성령

부으소서

주님 오실

그날까지

깨어 있으리다

 

주여

도우소서

순간순간 

주님의 지혜를

부으소서

 

주님

그리하시면

사는 동안

그림자 없는 

주의 무영등으로

살리이다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졸며 잘새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 오실 그날 위해

우리는 늘 등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천국이라 표현 되어 있다.

'천국'에 가려면 십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게

모두이고  이땅은 그냥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천국과 깨어 있어 견뎌야 하는 고난 사이에

간격은 어찌 이해될 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사실은

천국의 영생의 삶은

그리 편하게만 가는 길은 아니란 얘기다.

'좁은 문'이란 얘길 왜 하시던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왜 말씀 하시던가?

어찌 되었던 간에 이런 신학적 논란을 떠나서

주님이 우리,

그 중에서 이유를 알수 없을 지라도

주님의 말씀이 그러시다면

그냥 좁은 문을 갈 수 밖에 없는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격적 만남을 가진

소수 들에 대하여

혹은 그러함을 사모하는

사모해야 만 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오늘 말씀을 진행하시는 것이시다.

 

 천국을 위해서

신랑되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등불을 들고 기다리듯이

집중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등불이란 무엇인가?

등과 기름이 필요한 것이다.

등은 틀이다.

자격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열처녀'의 자격조건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손에 '등'이 들린 자들이란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주님을 위해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다.

등불을 켜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다.

기름이란 무엇인가?

'성령'을 기름이라 하지 않으시던가?

그렇다.

성령의 임하심이 안계신 자,

아무리 기독교인의 외양을 가지더라도

그는 이미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다.

 등불을 켬은 무엇인가?

등과 기름이 준비되었더라도

불은 우리가 켜야 한다.

기름을 떨어지지 않도록 채워야 하는 것은 우리다.

기름은 늘 준비되어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사모함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은혜가 떨어졌다함은

주님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신 것은 아니시다.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느껴지지 않을 뿐이고

우리의 성장과정 중에

잠시 주님이 필요에 따라 메마른 상태

즉, 십자가 성 요한의 '영적 메마름'의 단계

'영성의 밤'을 허락하실 뿐,

그 분은 선택 받은 우리를 떠나실 분이 아니시다.

로마서 8:38절 이하에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세상의 권세 잡은자나......그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하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당연하지만, 늘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으라 하시는 말씀은

성경 전반에 걸쳐 '누누히도 나온다.

예수께서 마지막 날 사랑하시던 제자들 중

수제자 몇명(소수)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셔서

겟세마네 기도하시면서도 그리 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깨어 있지 못했다.

 주님도 그걸 아신다.

그러시기에 '다 졸새'라는 오늘 말씀의 표현처럼

그 분은 우리의 늘 깨어 있음의

율법적 변질을 경고 하시고

그 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어루 만지시는 표현을 하신다.

 겟세마네에서도 세번이나 깨우려 하시다가

그냥 자라.. 고 하시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게으름을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 '깨어나는 다섯 신부'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비록 현실의 유약함으로 잠시 잠시 넘어지고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관심과 정렬은 '편안함'보다는

' 주님 오심을 기다림의 기쁨'에 더 가 있다는 사실이다.

보라.

주님 오시는 소리 듣자 마자 일어나 달려 가지 않던가?

반면에 게으른 다섯 처녀는

기름이 다 떨어져도 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게을렀다.'

주님 보다는 육신의 편안함이 우선 였다.

부지런한 처녀들은 졸되 깨어 있으려 했고

게으른 처녀들은 졸며 깨어 있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름'을 채운다는 것,

성령님을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에 채움으로

우리 영혼의 등불을 켠다는 것은

어떠한 행위를 통하여 가능한 가?

 기도 , 구제.....모든 주님을 위한 행위를 통하여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 모두

'주님의 뜻'

'주님을 사모함'

'성령을 채움'을 의식하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앞서면 안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매일 말씀 앞에 서는 것.

묵상을 하되 습관적이지 아니한 것.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의 뜻대로 매일을 살기위한 몸부림.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주님을 내 일상에 초청해드리는 것이고

주님의 성령을 내 영혼의 주님 예수님 탱크에

기름으로 채워 들이는 것이고

그런 결심과 노력이야 말로 '불'을 켠 상태가 될 것이다.

 누구도 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졸음이 오래가면 기름은 떨어진다.

게으른 처녀들도

예수님으로 부터 등불을 받을 때는

성령으로 충만했었다.

너무 오래 졸아서 그랬지.. .

 

 나.

죄악덩어리다.

가만히 내 하루 하는 것을 돌아다 보면

이것..이래서 천국에 갈만한 사람이 맞나 할정도로

스스로 생각해도 추악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직도 함부로 말하고

거친 소리 잘하고

아직도 잘 분노하고

함부로 한다.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신 것 맞는가 싶다.

그러시다면 그 분께서 얼마나 힘들어 하실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난 틈만 되면 죄성이 튀어나온다.

'죄인의 괴수'

'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는 내 안에 사망의 법이 함께 있어... '

' 아 이 사망의 몸에 누가 .. '라 탄식하는

로마서의 사도바울 사도의 고백이

늘 내 고백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령이 임하시면 다르다.

가슴이 뻥 뚫어지는 것 같다.

' 아 생명의 성령의 법이.. '가 이해가 된다.

 이전에는 달랐다.

지금은 좀 더 가슴에 이해가 된다.

내 죄에도 불구하고

날 떠나지 않으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느껴지는 게 기쁘다.

 좌절하여

블로그 문 닫아 버리고 며칠 잠적해 버리려 했다.

블로그.

이것,

문명의 이기.

누구나 할 수 있는것.

어떤 소명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그러면서 진실하지도 않은 자가

세상을 향해 모든 것 다 깨달은 자인양 떠들어 대고

내 자아만 충만해져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그래서 닫으려 했다가

주님의 성령의 임하심은

나에게 있어서는 말씀 묵상이 유일한

내 드릴 수 있는 주님 앞에 선이고

그러기 위해 난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내 스스로의 다짐임을 깨달아 다시 열기는 했다.

그러고 돌아보면

난, 아직 졸고 있는 '열처녀'가 맞다.

하지만, 주님의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졸다깨다 하고 있는

그럭저럭 아직까지 깨어 있는 처녀 같은 자가 맞은 것 같다.

 죄.

오래된 구습의 죄.

날 끝까지 붙들려 애쓰지만

주님은 하루 하루 말씀으로 날 인도하시고

자주 넘어지려 할 때 주님의 불꽃으로 날 위안해주심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깬다.

다시 깨서

이 어려운 길.

자칫하면 넘어질 듯

자칫하면 떨어질 듯한

이 좁은 길을

또 다시 간다.

그 누구도 같지않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외롭고 졸리고 힘든 이 길

난 간다.

오늘 난

다시 깨어 나

내 등불을 밝힌다.

 

 

 

적용

1.  다 졸새

 나도 존다.

 인정한다.

 그것을 이해해주시는 주님이 감사하다.

 하지만 일어날 것이다.

 깨어날 것이다.

 

2.  회개한다.

 늘 회개하는 삶을 산다.

 회개하지 않음은 기름이 마름을 의미한다.

 함부로 함을 회개한다.

 사랑없었음을 회개한다.

 

3. 기도한다.

 기도는 불꽃을 지피는 방법이다.

 날 돌아보게 하시고

 내 안에성령을 가득채우시고

 나로 졸지 않게 하소서.  

  주여.

 기도원 가겠다.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말씀 만이 살길이다.

 말씀대로 적용한다

 적용하려는 의지가 주님의 기름을 채우는 지름길이다

 

 

기도

 

 주님.

열처녀에 들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귀한 행운을

졺으로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성령의 기름을 사모하니

저에게 채우소서.

인도하소서.

저로 깨어 있게 인도하시고

졸어도 자책하여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주님. 어둠을 주님의 성령으로 밝히게 하시고

성령이 떨어지지 않도록

저로 기도하는 삶을 인도하시고 허락하소서.

주님.

다 졸어도 저는 깨게 하소서

이세상을 비치는

주님의 밝은 등불을 들고 있는

깨어 있는 처녀 되게 하소서.

주님 오실 때 기뻐 맞이하게 하소서.

당황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아시지요?

저의 어리석음을요?

가끔 졺을 요?

주여.

저로 게으름에 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늘 회개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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