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제 이름 불러 주시니( 스 2:1-70 ) 본문
제 2 장 ( Chapter 2, Ezra )
주님
주님의 이르심으로
저 하늘 달이
달이 되고
주님의 명하심으로
저 구름이
구름 되었듯
주님의 기억하심으로
저도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여
제 이름을 부르소서
나의 생존의 의미인
당신을
목숨바쳐 찬양하렵니다
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잡혀 있다가 "놓임을 받은 자들".
3.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 이명이요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명이었더라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요
65.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명이요
66. 말이 칠백 삼십 륙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 오요
67.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이었더라
그들의 명단이 대표자 '이름'과 더불어 쭉 쓰여져 내려간다.
'이름'
이 귀한 성경에 이름을 쓸 이유가 무엇이냐?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다.
이름을 대표자 한사람 쓰고 숫자를 기입했지만
그들의 하나하나의 이름은 또 다 기입안되었을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이름이 3-58절까지 숨도 쉬지 않고 내리 적혀 있다.
무슨 의미인가?
고난을 겪고 드디어 '출 바사'한 자들의 이름은
출애굽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대우를 하시겠다는 뜻이다.
대표자의 이름은 그 중에 조금은 더 성장한 자들.
정확하게 숫자 하나하나까지 기입한 것은
그들 하나하나 그 엄청난 사람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겠다는 뜻처럼 보인다.
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69.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
었더라
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예물을 즐거이 드렸고
곳간에는 예물이 넘쳐서 본 성을 지켜야 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본 성'에 거하게 되는 자들이 몇 있다.
그 중에 한 무리가 '노래하는 자'들이다.
지난 8월 이후
방학 철이 지나면 전통적으로 산부인과 환자는 줄어든다.
그 후 10월이후 신종 플루 건으로
본과 뿐 아니라 병원에 오는 환우들은 신종플루 이외의 다른 환우는
산부인과 뿐 아니라 다른 과도 다 급감했다.
덕분에 책도 읽을 시간도 나고
틈날 때 다른 작업을 할 시간도 생기게 되었지만
비례적으로 입원환자 및 외래 환자가 떨어지니
서서히 신경이 쓰인다.
어쨋든 '히포크라테스 '선서후 환우의 건강이 최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의 신분이고
직원은 직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지 않던가?
오늘 환우 한분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켰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환우 들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오기에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동안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탓으로
나름대로는 노하우도 생기고 실은 수술 자체를 흥미로와 하는
내 성향이 있어서
기쁘게 수술 승락서 및 각종 정보를 요령껏 설명 드리고 입원시켜 드렸다.
기쁘게.. .
얼마 지나지 않아 외래 간호사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남편'인데... 허락맞지 않고 하는 수술... 고소한다'는 내용이다.
어,.
아침에 입원시킬 때는 '이혼'하신 상태로 그래서 동생을 보호자로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급히 수술 준비를 하고 있는 병동에 전화해서
환우 분 내려 오시라 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알콜중독자' 남편과 어제 이혼 소송을 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조심스럽다.
그래서 수술이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하고
수술을 받으려면 '남편의 각서'나 '동반'하여야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올려 보냈다.
아니면 자의 퇴원.
환우의 선택은 '자의 퇴원'이다.
솔직히 마음에서 짜증이 올라온다.
사복으로 갈아 입고 내려 와서 면담을 요청한다.
' 다른 병원가면 수술 해주나요?'
' 수술 언제까지 안할 수 있어요?'
..............
내려오기전 슬슬 짜증이 올라옴을 느끼면서 기도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친절함'유지다.
성질은 부리지 않았다. ㅎ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퉁명이다.
죄스럽다.
그들을 보내고 기도하면서 내 속을 들여다 보았다.
'주님..
왜 저는 이렇게 속이 흔들릴까요?
십자가의 생명으로 날 구원하실 때
나같은 더러운 사람들과 더러운 환경과 .... 모두 다 참으셨어야 했을 텐데
난 왜 조금도 못참는 것인가요?...............'
뭐 이런 내용이다.
가만히 본질을 들여다 보니
줄어든 입원환자 , 또 빠져나가는 .. 당혹스러움 ^^;;;이 크다.
그것은 내 의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나이든 자로서 소리칠 외적인 조건이 '실적'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어찌 이런 부질없는 '조건'에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는 말인가?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준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님에도 왜 그리 속이 흔들리나.
그렇다.
난 오랫동안 그래왔다.
남들은 아닐지 그럴지 잘 모르지만
난 내 존재의 가치를 '실적' 내지 '조건'에 두고
잘하면 기분이 한없이 올라가고
못하면 눈치 보는... 그런 어이없는 훈련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얼른 성경을 묵상하는 노력을 했다.
오늘 묵상을 떠올렸다.
주님 하나님은 제 2의 출애굽 사건인 '출바사'를 단행하도록 하셨다.
그들, 바사 즉 페르시아에 머물던 자들은 '선한 자'들이 아니었다.
'놓임을 받은'
즉 비록 이스라엘 백성
즉, 구원의 백성들이지만
죄를 지었고 그에대한 고난을 타향에서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을 주님은 주권적으로 '놓임을 허락'하신 것이시다.
나, 주하인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서
뚜렷한 1997년 12월 28일의 출애굽을 경험한 자이다.
그 이후로 한참을 첫사랑의 뜨거움 안에 있다가
더 정결해질 '죄'로 인하여
세상에서 '연단'의 고난을 받고 있는 자다.
이제 주님은 한 단계의 성숙한 '출바사'를 원하신다.
놓임을 받길 원하는 것이다.
그 놓임은 비단 위에 말하는 저런 것 뿐은 아닐 것이고
영혼의 전 방위적 회복을 원하시는 것이겠지만
이제 그 중 하나인
' 조건에 의해 흔들리는 ' 이 어이 없는 영혼의 가벼움에서 놓여 나길 원하시는 것이 맞다.
주님은 오늘 '이름'을 죽~~ 나열하신다.
이 귀한 성경의 지면을 한참이나 할애하면서 심지어는 소 같은 가축까지 세어 두신다.
그것은 그러시는 것 같다.
' 세상의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 하나님은
주하인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주하인 네 본명을 적어 두었다.
'생명책에 기명된 네 이름이다
내가 널 잘했다고 기록하고 못했다고 지울 것 같느냐?'
그렇다.
주님의 사랑은 조건이 아니다.
무조건 이시다.
무조건으로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예수님으로 성육신 하셔서 당신의 몸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지 않으셨던가?
그 사랑.
그 사랑은 잠시의 조건을 넘어선다.
아예 조건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난 그 분의 생명책에 적혀 있다.
그 분은 내 재산, 내 소유, 내 축복까지 다 아시고 계신다.
관리하신다.
흔들릴 일이 없다.
내가 할 일이 있다.
즐거이 헌신하는 가다.
나의 최선을 주님께 드리는 가다.
그리고 결과는 그냥 두는 것이다.
그래도 내 이름이 적혀 있음은 하나도 변화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너무도 많이 있지만 주님은 하나하나 다 기억하신다.
온 우주를 아시는 분이 이 지구 이 안양 이 곳의 내 이름하나 빠드리실까?
의도적이 아니고는 내 이름만 잊으실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즐거이 헌신한 후 내 위치를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
'노래하는 자'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구절의 내용을 보아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노래하는 자.
그냥 민족에 상관없이 주님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을 아는 자들.
주님으로 인하여 놓임을 받고 노래가 '영감'으로 그득한 자들.
그들은 '本 珹'에 위치시키셨다.
오늘 금요일이다.
'하기오스 찬양팀'에 신청한 후
올 연말까지는 기도같이 하고 연습만 같이 하게 되어 있다.
어제 기도원에 갔다.
가니.. 올라가자 마자 많은 생각을 허락하신다.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은 남에게 들리고자 하려는 내 자아의 발로였다.
예배가 시작되면서 찬양이 30분 정도 진행되는 데
주님과 나의 찬양 만으로 소리를 죽였다.
은혜가 나를 강하게 사로 잡는다.
그렇다.
어제 묵상에서 고민하는 생각을 적나라하게 올렸지만
찬양에서 튀고자 하는 내 헛된 욕구는 정리가 된다.
그러시면서 오늘 묵상에서
이름적힌 자,
반드시 천국에 갈 수 밖에 없는 자로서
찬양을 드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본 성에 위치할 자라는 말씀으로 위로 하신다.
그 본성에 위치하기 위해서는
남보다는 '하나님'께 만..드리는 찬양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러겠다.
마음이 무겁던 것이 가벼워진다.
오늘 환우 분도
저녁있을 '튀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과 더불어 하는 찬양 연습도 ..
주님 안에서 다 융화된다.
참으로 감사하다.
주님
제 둘째 아들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소서.
한번 더 기억하소서.
KJH
아시지요?
이제 갓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너무 힘들지 않게 하시고
너무 어렵지 않게 하시고
너무 곤란겪지 않게 하시되
힘들어도 주님 위해 들게 하시고
어려워도 주님 위해 어렵게 하시고
곤란해도 주님의 영광위해 겪게 하시되
모두 우리 아들 알게 하소서.
주님
아이의 앞을 막아서던
모든 어려움이
이 번 훈련으로 놓임받는 기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주여.
아이 이름 기억하시길 다시한번 기도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은 살아계셔서
원치 않게 훈련되어온
내 속의 어리석은 생각의 흐름들이
또 한번 가벼이 정리됨을 느낍니다.
주여.
전 그렇지만 늘 말씀 앞에 서길 원합니다.
말씀으로 제 영혼의 흐르는 원리로 삼길 원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주님의 살아계셔서 주시는 감동으로
날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이 주님의 감동이 절절히 흐르는 에너지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바람처럼
물처럼
주님이 부시고 흐르시면
기뻐 따르다가
그게 주님이 만지셨던 흔적임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보이는 내 감동을 사진에 옮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제 감사 함을 다시 한번 올립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
그 중에서도 그러한 사실의 얼마나 기쁨인지 아는 기회를 잡은 자로서
그 든든함에 감사를 드립니다.
간절히 바랄 것은
이 후의 현실적 어려움도 없이 하여 주옵소서.
주여.
더욱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칭찬에 둔감하게 하여 주시고
사람들의 질타에 더욱 더 둔감하게 하여 주시고
내 기쁨과 내 존재의 유일한 이유가
주님에 있음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 아들.
군대 가있는 둘째.
집에 있는 큰애...
모두 주님께서 그 이름들을 기억하옵소서.
절대로 놓치 마소서.
KJM과 KJH입니다.
아시지요?
LMY도 기억하소서.
제가 아는 모든 자들의 이름도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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