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감격하여 찬송하라 (스 3:13 ) 본문

구약 QT

감격하여 찬송하라 (스 3:13 )

주하인 2009. 11. 14. 11:44

제 3 장 ( Chapter 3, Ezra )

 

 

 

 

 

 

 

찬양하는 것 같은
적디 적은
이 들의 몸사위 

모여 있어
흐르는 바람에
흔들린다
 
주위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살포시 보이는
그 들의 자태는
부여된 그 자리에서
마냥
하늘 만
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들이
그리보이는 건
주님께서
그들의 그 마음을
기뻐받으셨기 때문이리라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칠월에 이르러서야..

서두르지 않는다.

'일제히'

일치된 자발적인 동기가 느껴진다.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 드리려 할새  
3.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예배는 고난이 있을 때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편안함이 있을 때에는 절실하지 못하다.

 '힘이 들때 기도하라.

  기쁠때 찬송하라. ..'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

      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일제히 모이고

하나가 되어 찬송하고

서로...찬송으로 화답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스키타고 술마시고 노래방가고 골프치고... 그러한 일보다 재미가 없어 보이지만

다 즐거워 한다.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고 서로 찬송가로 화답하지 않는가?

 두렵고 어려운 상황인데 저런다.

힘들 때 기뻐하는 것은 '기독교'밖에 없을 것이다.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13.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 노인들은 울고 '

' 다른 사람들은 기뻐 찬양하고 '

똑같은 현상을 두고 반응이 다르다.

첫성전을 과거에 보았던 노인들은 울고

보지 못했던 젊은 층들은 기뻐하고 즐거이 외친다.

 그 현상은 ' 여호와의 전 지대놓음'이다.

그것은 골프나 여행이나 술이나 노래방이 아니다.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헌신해야하고 봉사해야 하고 헌물 헌금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다.

그 귀찮은 일을 귀찮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바사'에서 노예생활을 70여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울고 웃는다'

그들은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그 정서의 깊은 곳은 똑같다.

'감동'이다.

옛날을 기억하는 자들은 뼈저리게 감격하여 '울고'

젊어서 그 전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여호와의 전이 놓임,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들은 '즐거이 외친다' 

 그 소리가 얼마나 대단한 지 머리서도 듣는다.

울음과 웃음이 하나로 들린다.

그 안의 감격이 하나라는 이야기다.

 

 오늘 묵상의 주제는

'감격'이다.

'감격하여 찬송'함이다.

그 감격은 세상의 것으로는 줄 수 없는 감격이다.

이 들을 보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그 절제를 싫어하여

세상을 헤매다가 그 벌로 '바사'에서 노예생활하던 자들이 아닌가?

그러던 자들이 이 빈궁하고 곤핍한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고통이 예상되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일을 보면서

저리 감동하고 감격하여 폭팔적인 환호와 찬양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황들.

 현실로 따져보면 세상에서 갖은 재미는 다 추구하다가

몸과 마음에 상처가 돌아온, 혹은 찾아든 교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외치는 감격이 느껴지지 않는가?

 마음 속으로 진정 바라는 것은

그러한 감격이 고통과 고난을 겪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늘 주님 앞에 서 있고

날마다 더 깊어지어져서

주님이 아니고는 숨을 쉴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철저히 성화된  '聖人' 처럼..

그리고, 그 감격이 오늘 보이는 저들의

저 울부짖고 외치는 저 소리의 감격처럼

큰 감격이 늘 날 지배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

찬송에 대하여 다.

 

엊저녁.

금요 찬양예배.

하기오스 찬양팀에 신청은 해놓았지만

연습은 아직 참여 하지 않았다.

 좌석에 앉아 찬양을 따라 부르려 할 때마다

습관적인 큰 소리가 튀쳐 나오려 한다.

남에게 인정 받고 싶던,

이렇게 하여야만 멋진소리가 나올거란 혼자만의 착각으로

실크로드 찬양팀에서 훈련 받은 성악적 발성을 이용하여

나의 멋진 바이브레이션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감동시켜

주님께 영광드리는 시간을 제공코자 하는

어이없는 치졸한 영웅심.. 같은 것이

아직도 날 밀려고 한다.

어제도 고백했지만 '규격' 안에서의 조화와

' 개성' 껏 어우러짐으로 주님의 성령을 임하게 하는 찬양 사이의

조율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하기오스 찬양팀, 다른 분들에게 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소리를 죽이고

남이 들리던 안들리던 속삭이는 소리라도

주님 만 들으시면 되겠다는 깨달음으로

어제는 '최대한 자제'를 하며 소리를 낮추었다.

 소리를 낮추니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주님과 나만의 내밀한 '기도회'가 펼쳐지는 듯하다.

주님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껴볼 기회가 된 것만 같다.

 목요일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중국에서 도착한 아내가

깨워서 비몽사몽 간에 대화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한 몸이

나에게 아무런 영적 장해물이 되지 않았다.

 아는 찬양의 연속.

그 찬양의 인도자가 다른 목사님이시었다.

처음있는 일이다.

소리가 볼륨이 부족하고 인도가 맥이 끊긴다.

듣던 소리가 아니라 좀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소리를 줄이니

내 두 손이 들린다.

소리를 줄일 수록 난 가슴에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아 드는 자세가 되어 갔다.

나의 속삭임 같은 찬양은 자꾸만 기름져져 감이 느껴진다.

내 찬양의 가사가 하나하나 주님 께 전해지는 느낌이 들고

주님이 가사를 통해 위안하시는 감동이 든다.

 이 은혜.

은혜라 표현되는 이 영혼의 감성은 '감격'이다.

그렇다.

주님은 이토록 감격스러운 분이다.

주님은 율법적이고 도덕적이고 답답한 분이 아니다.

그 분은 감격적인 분이다.

규제가 아니고 오히려 자유다.

그것을 오늘 묵상구절의 할아버지 들이 증거한다.

그토록 소리 높여 운다.

멀리서 환호로 들릴 정도의 크기로.

성대의 탄력이 줄고

호흡기의 구경이 줄어서 소리내려면 목이 꽤나 아플 목청인데.ㅎㅎ

 

 감격으로 찬양하자.

주님은 감동이다.

이게 비밀이다.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이유이자

이 버겁고 힘들고

의미없고 우울할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에너지가

주님이시다.

주님이 주시는 이 감격이란 에너지다.

그 감격은 '절제하고 헌신'을 전제로 한다.

맘대로 지르고 싶은 소리를 낮추는 절제가 있은 후

감격은 더 커진다.

감동은 그대로 내 목을 통하여 바이브레이션으로 나오고

그 감동은 날 깊은 주님의 실존의 인식까지 가져갈 듯만 하다.

 

귀한 하나님.

오늘 주말입니다.

특별히 아버지 학교 마지막 주차가 있는 날입니다.

온전히 헌신할 시간도 부족하고

저녁에 있을 성가대 연습으로

도중에 나와야 하지만

제가 가진 이 찬양의 달란트로 그곳에 잠시 헌신할 예정입니다.

주여.

튀지 않게 도우소서.

그냥 그자리에서 주님을 기도하러 가는 마음으로 가겠나이다.

주님을 만나뵐 때

저들도 저의 감격을 같이 공유할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시여.

사람보지 않게 하시고

내 잘난 맛 들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감격만 생각하게 하시고

주님의 실존만 느끼도록 하소서.

 이 주일.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전을 생각하게 하소서.

제 찬양 소리를 통하여서 한분이라도 주님의 전 감격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