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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곁에 서서( 렘 25:15-29 )

주하인 2009. 10. 26. 13:14

제 25 장 ( Chapter 25, Jeremiah )

 

 

 주님 곁에

서 있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어둔 세상에

그냥

수줍게라도

주님의

그 놀라우심을

비출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 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17.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진노의 잔

하나님의 손에서 받아가지라.

보내는 바 모든 나라에 가라.

그리고 마시게 하라.

가까운 나라 부터 거의 모든 나라의 왕을 거쳐 마지막으로

바벨론의 세삭왕까지.. . 모든 나라로 재앙을 내리는 잔을 마시게 하라.

 

 진노의 잔이 '재앙'을 시작하시는 것임을 알겠지만

분명히 주님의 손에서 받으라 하시고

나라마다 찾아가서 왕들에게 마시게 하라 하신다.

 상징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거기에 예레미야 님이 각 왕을 찾아가게 하시고

그 순서도 정확히 짚어 주시는 게

그 진노의 잔에 대하여 시작 부터 묵상이 막힌다.

 분노의 잔을 내미시는 게

주님의 전이었을까?

그렇다면 예레미야님은 천국의 체험을 했단 말인가?

그곳에 무릎꿇고 잔을 받았을까?

잔을 내미시는 주님의 손은 어떠한 형태이었을까?
빛이 나셨을까?

혹시 그 팔에 털은 나셨을까?

내 손등은 털이 수북한데...ㅎㅎ

손톱은 길었을까 ?

주님의 손은 여성스러웠을까?

농부 같았을까?

잔에 든 게 액체이었을까?

영체로서 눈에는 보이지만 실물감이 없었을까?

무슨 색깔이었을까?

분노의 잔이니 와인색으로 보글보글 끓지는 않았을까?

그것을 하나만 받아 오셨을까?

하나가지고 돌아다니며 마시게 할 때마다 또 채워지게 ......?

각 왕은 어찌 만날까?

예레미야 님이 천국 문을 나설 때 문지기가 산더미 같은 서류 봉투를 넘겨 주면서

각왕을 만날 때 행동강령을 주셨을까?
..............

 그것이 오늘 묵상하는데 제한점으로 작용한다.

거기에 일말의 설명 없이 당신 하나님의 하실 말씀 만 하신다.

무섭게............

 

 그렇다면 난 어떤 포지션에 서서 그 말을 전파하는 자리에 서 있었을까?

유다 백성 같은 영적 유다인이긴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 같이 혼나는 유다왕 휘하의 유다백성일까?

아니면 군소 각 왕 중 한명으로 서 진노의 잔을 거침없이 받아 마셔야할 죄 덩어리 인가?

가장 마지막으로 받아들 '세삭왕' 같은 가장 악한 자일까?

 

 묵상이 어렵지만

오늘 묵상의 관점이 예레미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신다.

비록 답은 얻지 못했지만

위에 다양한 의문들을 늘어 놓고 궁금해 하는 것이

오늘 내 묵상의 관점이다.

 즉, 예레미야님의 뒤편을 쫓아다니면서

비교적 '덜 죄덩어리' 죄인의 입장으로

주님의 분노의 잔을 피해갈 ..... 그러한 입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내 느낌일 뿐.

부담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될 뿐이지 증거는 없다. ^^;

 많이 발전했다.

 주하인.

이전 같으면 죄책감과 두려움이 늘 그득해서 오늘 묵상은 피해버렸을 것을...

 

 

 

  아침에 출근했다.

엊저녁 당직 후 아내와 저녁을 먹으러 '예술 공원'에 갔다.

바로 근처에 기도원이 있어 기도하고 내려왔다.

당직 후 피곤한데다 배가 불러 기도가 될까 생각하고 오르니 역시다.

아내가 오랫동안 기도굴에서 기도하게 그냥두고

난 단풍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기도원 마당에서

가로등이 꾸미는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상큼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감각을 만끽했다.

주님이 주신 내 신경의 정상작동과

그 신경을 통해 반응하도록 보내주시는 바람과 시각을 통한 시신경의 자극이

정상으로 반응함을 느끼며 감사 기도를 간간히 올렸다.

 그리고  어제 큐티로 주신 말씀을 어렵게 어렵게 묵상을 했다.

배부르니 역시 집중이 잘 안된다.

'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절대 사랑의 하나님.

  추악한 자들을 끝까지 참아내시는 비위 좋으신 예수님'

 ' 그 사랑 받고 있는 나.'

결론은 내가 '아들'이란 이야기였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나'와 그 사실을 인식 못하는 '나' 사이의 괴리가

그리힘이 없는 믿음을 유발한 것이다.  

그동안... 내 삶동안...

그리고 그리도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온전한 사랑 받아 봄'을 경험하지 못한 역기능 아들이 그것이었다.

늘 잘 해야 칭찬 받던 조건적인 게 문제였다.

참 어이가 없다.

주님의 온전한 사랑이 영혼 깊숙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는 게

이처럼 어렵고 힘이 들다니..................

 어떻게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의 타락이 이해가 가는 바가 없지 않다.

문제는 '자기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주님의 그 사랑을 받아 들이려고 '선택'하느냐

비웃어 버리고 받아들이지 않느냐를 선택하느냐 였던 것이다.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는 것은 값없이 이루어지지만

그 후의 성화를 위한 그 선택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놓아주지 않는다.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붙든다.

그러기에 그 '선택'에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아침이다.

진료실 책상에 앉고 퇴원환자 챠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성질이 약간 급한.ㅎㅎ.. 간호사가 얼른 입원할 환자 들여다 앉혀놓고 나간다.

그러지 말라고 수차례 부탁했건만...

잠시 기다리라고 나름으로는 오버의 말과 더불어 친절하게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는 지 남편으로 들어온 보호자께서

'왜 수술해야 하느냐'고 다구치듯 말한다.

내 인식의 장해인가?

조금만 기다리면 설명하겠다는 데 계속이다.

짜증이 올라오려한다.

겨우 겨우 마음 달래며 설명은 하고 입원 시켰는데

속이 부글거린다.

 다음 환우 분께서 들어오셔서 가능치 않은 요구를 하신다.

마구 자기 말만 하신다.

이것도 내 인식의 오류인가?

또 속이 부글 거린다.

' 아휴...... 예수님의 다른 모습으로 보려는 데

왜이리 사람들이 밉냐?'

내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이다.

짜증이 나려기도 하고 '죄책감'으로 속이 상하기도 하다.

정말 자신이 추하게 느껴지려 한다.

 어제의 묵상이 떠 오른다.

'이 추악한 자를 참으신 예수님'

' 난 추악한 게 아니고 실수하는 아들일 뿐'

조금은 속상하려는 게 가라앉는다.

그렇다.

내가 추악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꼭 잘해야만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난 주님의 자녀로서 족하다.

 잘못한 것, 짜증나려던 태도는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필요하면 정중히 사과하면 끝난다.

자꾸 추한 생각으로 자신을 몰고 가면 그 기분에 사로 잡혀 계속 짜증이 나는 것 이다.

 그것을 주님이 확인시키시려는가?

오늘 묵상은 예레미야님과 따라 다니면서

그 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는 자의 묵상이다.

최소한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의 폭탄을 직격탄으로 맞을 위치에 있지는 않다.

분위기는 무섭고 그렇지만

그냥 난 예레미야님 편에 있다.

이 구절이 생각난다.

'그 날에 고통을 감하리라'

마지막 날,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 대환난의 시기에

전 세계를 불 같이 '진노의 잔'을 퍼 부으셔

강의 1/3이 쑥같이 변하고 바다의 1/3 생물이 죽어 버리고..............

수도 없는 무서운 심판이 오겠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 특별히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사모하는 자, 성화되어가길 소망하는 자 들 - 그날에

예레미야 님의 뒤를 좇는 사람처럼

조금은 편안한 가운데 지낼 수 있을 것이란 것.

 

 마음이 좀 편하다.

짜증이 가라앉는다.

짜증내는 나는 참 받아 들이기 힘들고

주님이 인상을 쓰실 것이란 생각은 안하려 한다.

어차피 내 '선'이나 '의'는 지금 하나하나의 선하려는 행동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결심,

그분이 날 , 내 추악함과 상관없이 사랑할 것임을 믿는데 달려 있을 것을...

 

 극동방송 홈페이지를 연결하여

토요일 오후 방송되는 '김석균과 함께'를 틀어 놓고 있었는데

마침 멘트가 적절히 이어지신다.

'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재밌는 시간을 지내며

 술도 마시고 골프 이야기도 하기 보다는

 이 시간 이 방송을 들어가며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소릴 듣고

 주님을 찬양함에 공감하고

 자신을 변해가려는 모든 분들에게.......................'

그렇다.

얼마나 될 지 모르지만 이런 심령을 가진 모든 분들은

주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적용

 

1.  아버지 학교 스텝모임 가겠다.

 

2. 성경 일곱장 읽으리라

 

3. 그런 나를 사랑하자.

 

4. 감사하자.

  주님 편에 서게 해 주신 것을..

  그날을 감해 주실 것을..

 

5. 좀더 친절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다.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기도

주님.

가끔은 이해할 수 없게 짜증이 튀어나옴을 경험합니다.

아직도요.

그럴 때마다 저를 짖게 누르는 것은 '속상함'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입니다.

이제 저로 더 이상 조건에 속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믿는 자로서

당신의 뜻에 맡게 매사에 겸허하고 온전한 인격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도 심하게 좌절할 상태도 아니고

제가 주님의 아들로서 자격을 상실하는 것도 아님을 이해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서 늘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서 당당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 죄를 멀리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 죄책감도 버리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 '회개'를 서두르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아들로 성령 충만할 나 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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