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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지만 따스한 가슴으로 (레25:39-5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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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지만 따스한 가슴으로 (레25:39-55 )

주하인 2010. 11. 30. 10:33

제 25 장 ( Chapter 25, Leviticus )

 


39.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동족이 빈한하게 된다.

불쌍한 일이고 안된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

정말 만일이지만  그들이 잘못되어 나에게 부속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쩌면 그들을 '종'처럼 보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물론 안그러겠고

그들을 조심스레 대하겠지만 시간이 가도 과연 올곧게

온전히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40.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 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의사가 되었다는 것은

예~~전~~에는 그랬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소유를 의미하는 것.

그런데 우리 때부터 서서히 그렇지 못해졌다.

실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적으로 '의사'를 대우하는 시각은

양극단이다.

일단은 '존경'의 눈초리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돈만 아는 비 도덕 집단 '등의 약간은 왜곡된 시선이다.

아닐까? ㅎㅎ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 맞다.*.*;

 돈이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아주 가까운 부모 조차도 이해하지 않고

무비판 적으로 받아 들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자수성가'한 자로서 거기에 '경제적 무개념'까지 갖춘 나는

참 어려운 과정을 겪어왔다.

형제,, 아내의 형제 ..들에게 조차 도와주지 않는다거나

돈 만 아는 자.. 라는 묘한 원망의 시선을 암묵적으로 받을 때마다

'생활인'으로서의 가난한 ;; 의사인 나는 마음이 많이 힘이 들때가 있었다.

한편으로 도움을 나름대로는 많이 준 그들에게 조차

전혀.. 다른 반응을 볼 때 ,

인간의 어지러운 속성에 대하여 참으로 많이도 실망했었다.

그래서 난 인간관계의 그 복잡성이 참 어려운 편이었다.

통쾌하고 솔직할 수 없는

그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의 복잡성.

 만일 이때 ,

그들 중의 누구를 내 종 같은 상황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을 때

위에도 가정했지만 나는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정말 그들에게 죽도록 변치 않고 퍼줄 까?

아니면 도와 주었자 감사를 모르는

인간 들에 속하는 그들을 '종'과 그냥 똑같이 다룰까?

그 관계 속에서의 중립을 지키기가 참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신다.

" 형제가 '종'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일단 그들을 '품군' 처럼 대하라.

  그들처럼 우거하게 하라.

  그리고 희년까지 그들이 섬김을 다하도록 그냥 두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 희년'까지 적당한 거리에서

 과도하거나 지나친 대접도

 그렇다고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 대하고

 품군정도의 거리로 대하다가 희년이 되면 떠나 보내라'

 그들이 회복이 될 것이다. " 하신다.

 

'회복'을 말씀하신다.

회복을 위하여 균형잡힌 대우를 말씀하신다.

종처럼 나락에 떨어진 것은 안쓰럽고 미안하지만

종이 된 그들을 형제로서 너무 잘 해 주다가 배반의 아픔을 겪는

어리석은 '감정'보다는

균형 잡히고 절제된 심정으로 대하다가

'희년' 즉 , 때가 되면 떠나 보내며 '회복'을 도우라 신다.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다시 한번 주님이 당부하신다.

 

"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라.

 공적으로는 종이되

마음으로까지 엄하진 말라."

 

그렇다.

균형 잡힌 관계의 서있음이 필요하다.

안타깝고 아프지만

인간들의 은혜를 모르는 속성과

그로 인한 가슴 앓이 될 베푸는 자로서의 위험성 등을 고려하시며

정확히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 엄하지 말라며 '  긍휼의 마음을 유지하길 원하신다.

이게 '경계선'이 아니던가?

어쩌면 이게 종되어 버린 형제 들에게도 다행이 아닐까?

 

 그러시면서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뜬금없는 말씀을 하신다.

당연히도 인간, 그 중에서도 유약한 심성을 가진 주모는

중심 잡힌 감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잘 모르는 이유기도 하다.

 몰라도 이유가 있기에 그러라..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시다.

' 하나님을 경외하면 말씀을 지키라.

 그러기에 그렇게 하라. ' 라시는 것이시다.

 

 

 어제 수술 한 환자가 중환자 실에 있는 데

그리 상황이 편치 않았다.

처음 보는 'vaginal tumor, giant' 다.

어찌 어찌 수술은 했지만 다량의 출혈 때문에 조금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늦게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런지 묵상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더구나, 내 상황에 맞지 않는 묵상인 듯 싶어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는 바가 맞는가 생각하면서도

묵상의 글은 진행하고 있다.

거의 최근까지는 내 상황과 꼭 맞는 말씀을 '레마'로 자주 주시곤 하셨지만

'레위기 ' 묵상하면서 어렵기도 하지만 상황과 상관없는 듯 한 말씀이 일관되신다.

하지만, 저녁에는 꼭 그러하신 이유가 말씀 가운데서 깨달아 지곤 했지만

마치 오늘 묵상은 그냥 커다란 산이 막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상황에 꼭 맞는 , 내 감성을 자극하는 말씀이어야 만 레마이던가?

누구의 표현대로 '산'이 가로막혀도 그 산 반대편에 있는 마을이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산이 치워지고 나면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일 뿐.

 

 주님은 내 지금의 눈에 안보이는 듯,

말씀이 지금과는 달리 조금은 상관없는 듯 하지만

사실로 보면 말씀이 사실이다.

 '난 저렇게 살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 자다.

 하나님이 원하시니 이제 저렇게 살 아야 한다.

중심 잡힌 균형을 유지하고

공적이고 사적인 중심을 잘 잡으며

무엇보다 긍휼함을 가져야 한다.

 그리곤, 현재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주님께 그냥 맡겨야 한다.

주님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시다.

잘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신 것처럼...

 

할렐루야.

 

 

적용

 

1.  내 믿음의 형제들의 아픔을 긍휼히 여긴다.

 

2. 그들이 혹 내 도움을 필요로 하게되면 받아 들이되

 품군의 대접을 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자.

 균형잡힌 믿음을 유지하고 그들의 희년을 위하여 기도하자.

 

3. 때로는 서운타 할 수 있다.

 그래도 중심을 잃지 말자.

 '선'은 긋되 그들의 행복을 위해.. .

 

4. 주님의 말씀은 살아계시다.

 나에게 오늘 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심은

 좀더 그들에게 균형잡히고 긍휼이 넘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은 아닐까?

 혹여 지금까지 잘해왔던 그 하나님의 교육의 방법대로 대하라는 묵시적 가르침은?

 

5.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어렵네요.

말씀이 제가 걱정하는 상황과 관계 없으신 듯하여

오늘 주시는 레마가 없으신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혹시 내 걱정이 산처럼 가리워

진짜로 주님 말씀을 못알아 듣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감성은 못따르더라도

영감은 따르지 못하더라도

주님 말씀은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것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으려 하오니

주님 오늘 주신 말씀에 따라

긍휼과 균형이라는 메시지를 따라

냉철하지만 따스한 가슴을 주소서.

그리 하기 원합니다.

종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자들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드리되

그들의 불쌍함에 너무 휩싸이는 감정적 사치는 자제하되

그들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는 긍휼의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고 정확한 댓가로 너무 함부로 그들을 다루는

나도 모르는 횡포에 휘둘리지 않게 하소서.

주여.

균형잡히게 하소서.

말 씀으로 그리하소서.

주님 주신 말씀이 이유가 있으리라 압니다.

그뜻대로 따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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