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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서의 절규(絶叫)( 욥13:22-2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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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서의 절규(絶叫)( 욥13:22-28 )

주하인 2008. 9. 25. 09:01

제 13 장 ( Chapter 13, Job )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능력이 늘어났어도

가끔

내 속은

이리도 꽉 막혀 있는 듯

답답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청명해지면

이것은

기하학적 구조물의 아름다움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주님

저로 말씀하시거나

저에게 여쭈어 볼 평강을 허락하셔서

푸른 하늘을 보게 하시고

저 구조물이

서해대교의 아름다움임을

알게 하소서. ㅎㅎ

 

 


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주여

제발 불러 주세요.

제가 대답하도록요.

답답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알것만 같았던 것이 혼란 스럽기만 합니다.

주여

주님 만을 집중하오니

제발 저를 불러 주소서.

그리하여

이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벗어 나게 하소서.

 

혹..

그게 잘못된 요구라면  -그것마져 흔들림니다.  혼란스럽습니다. -  주여

저에게 말씀할 기회를 주시고

힘을 주시어서

주님

제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을

주님이 깨달아 알게 가르치소서.

주여.

저로 묻게 하시고

답을 주세요.

제발...

 

 

 

23.  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난

의인으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제 착각이었을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어옵니다.

 

주님.

정말 제가 교만한 것이었던 것입니까?

회개하지 못하고 사는

어리석은 죄인이었습니까?

 

제가 주님 앞에서

매일 같이 새롭게 되고

매일 정결하게 됨을

제 영혼이 느끼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그 사랑을 믿기만 하면

그 순간

제 허물이 다 벗겨 져서

매일 매일 새로워 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속에서

평강의 놀라운 기쁨이 살아나오는 것을요.

 

그럼에도

그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 고백처럼

제 착각으로 회개하지 않은

교만의 덩어리로 쌓여 있는 자가 아닌가 하였던

그런 혼란 말입니다.

 

주여.

어느 것이 옳습니까?

주여

부디 허물과 죄를 알게 하시고

회개 할 것은 회개 시키고

고칠 것은 고치고

주님 앞에

정말 의롭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었던지

잘못이었다면 고치도록 하여 주시고

다시

주님 안에서의 평강을 회복시키소서.

 

 

 

28.  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주님.

지금 저는

제 자신이 몹시도 싫습니다.

마치

썩은 물건 같습니다.

주님안에서

의로울 제 모습은 어디가고

자꾸만

저는 제 자신이 싫어지려 합니다.

좀먹은 의복같습니다.

 

어찌해야 하는 지요.

주님..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

 

 

 

 

 만성 병은

3개월 내지 6개월 이상의 기간을 가지고

괴롭히는 질병을 일컬을 때 '만성'이라 한다.

그러한 만성 질환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다수의 사람이 '우울증'으로 빠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세뇌'라는 것은

같은 소리를 되풀이 되풀이 함으로써

뇌세포에 뿌리 박히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믿게 되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만성질병에 있는 자들은

훨씬 쉽게 세뇌된다.

솔깃하게 된다.

 심리학 책에서

확신있는 소리로 주장하는 사람의 말에

뛰어난 지식을 가진 사람들 조차도

그 엉터리 소리에 '그런가.. '하고 믿게 된다고 한다.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무식한 자들이 많다.

목소리 크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

 

 욥은

만성적 고난- 시기는 주관적 느낌이다.. 3개월은 안되었었지만 어쨋든 그는 심한 고난을 오래 견디고 있다 -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친구들의 번갈아 되풀이 되는

그럴 듯한 '자기 확신 적' 믿음을 강요 받고 있다.

거기에는

엘리바스라는 나름대로 현명한 자도 있지만

소발이라는 목소리만 큰 자도 있다.

  욥은 뛰어난 의인이지만

원죄의 결점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잘 유지 해오던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릴 조건이 충분하다.

그러기에

그의 오늘 외침이 심상치 않다.

 

'絶叫'다.

절규.........

 

부르짖음.

외침

 그런데

그의 외침은

그냥 발하는 비명이라기 보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되풀이 되는 '세뇌'의 공작 - 사단이 배후에서 작용하니 얼마나 ........ㅉㅉ -에

영혼이 기초부터 흔들릴려는 위험.

 생이 편안할 때는

그리도 주님이 잘 응답하시어서

걱정이 들어올 틈도 없어서

'아... 믿음이란 이런 것이고

 아..  올바른 삶이란 이런 것이며

 그래........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만 믿으면.. '하는

확신 - 지금 난, 그렇다...-이 있었을 텐데

지금의 곤란은

이전엔 상상도 못해 보았던 것이다.

거기에

이전에도 있었던 사소한 고통 때에는

그리도 잘 응답하시고 동행하시는 체험을 주시던

그 하나님께서

침묵을 하고 계신다.

 

아.....

신앙인에게 '메마름'이란 놀라운 징벌이다.

주님이 답이 없으심.

그래서

영혼이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메마른 감정은

세상의 어떠한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다.

지금

그는 그렇지 않아도

안팎으로 고뇌하고 있는데

세뇌받아 흔들릴 것 같은데

주님 마져............................................

 

그래서 그는 이리 외친다.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 "

가슴이 아프다.

그나

나나

주님 만이

인생의 유일한 소망인

선택 받은 소수,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럴 수 밖에 없다.

그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있다

사막에 홀로 떨어져 있다.

절벽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

갈 길이 없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의 신앙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해 있다.

자신이 최고로 나뻐 보인다.

괴물로 보인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썩은 물건, 좀먹은 의복으로 느끼게 된다.

 

 

가을 천변의 코스모스 정경처럼..........

내 영혼도

평온하여지길........

 

 

  주님 만을 의지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분의 섭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반

영혼으로 느끼게 된다.

그때는

왜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고

그 마음은 천국의 평강으로 그득차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고착되어야 한다.

욥처럼

흔들려도

힘들어도

주님을 놓지 말아야 한다.

주님 만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유일한 끈이시다.

 

 

 

적용

 

1.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100번 읽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겠다.

   주님.. 주하인..김모를 부르소서.  ...........

 

2. 성장하기 위해서는 '메마름'의 고통은 있다.

 모든 게 주님의 뜻이다.

 인정하고 받아 들인다.

 약한 것들과 ...곤란을 벗어나게 하기 보다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영적 버퍼링을 넓힌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주님께 기도하는 것도 맡기고 기다려 보겠다.

  가만히...

  주님이여 내 속에 운행 하소서.

 

5.  모든게 주의 뜻이다.

 기다리자.

 

 

 

 

 

기도

 

 주님

머리가 혼란합니다.

잘못 살아온 것도 같고

잘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가만히 있는게 옳은 것 같기도 하고

움직여서 적극적으로 회개도 하고 하여야 할 것만 같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것만도 같고

돈은 버려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매사에 어찌 이리 혼란스러운 지요.

그럴 때 주님은

주님 안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원리에 대하여

욥의 절규하는 입술을 통하여 느끼게 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내용 마져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인도 받고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듣기를 간구하는

욥의 부르짖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의 속에서 들끓는 자괴감과 자책의 소리로

그의 정체성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도 보고 있습니다.

주여.

아플때 가만히 기다려 주고

공감해주는 게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위로해주는 것인지도 보고 있습니다.

주님

모든게 헷갈리고 있을 때

주님이여 다가오셔서

어서 어서 응답해 주소서.

메마름의 고통을

너무 오래 허락지 마소서.

예수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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