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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새로운 시작이다.(애5:17-22)

주하인 2006. 3. 23. 08:35

(예레미야 애가5:17-5:22)  
 

17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 피곤하고 지치면 아무 생각 하기도 힘들지요..)

 

 

 우리의 마음도 힘이 들다.

육신도 약해졌다.

 

 

 

 

 

18 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 황량하지요 ? )

 

 외부환경도 황무해졌다.

영화를 자랑하던 곳이 메마르고 거기에 폐허의 상징인 여우가 소리높혀 울부짖는다.

 

 어딜 돌아봐도 남은게 없다.

기대할 것도...

한톨 힘도..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 어디나 계신 주님의 생기 )

 

 

 그러나 우리 주님 여호와는 그 비젼없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듯한 곳에서도 계신다.

전혀 떠난 적이 없으셨다.

영원히 계실 것이다.

 

이게 희망이고 소망이다.

 

 노아의 방주가 황폐화된 지구의 땅에 내려 앉은 당시에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들 뿐.

그들에게 여호와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무런 삶의 비젼이보이지 않는 상태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님이 동반하셨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주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직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흑암과 공허 뿐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갈데도 없다.

그냥 허허롭다.

거기서 어떤 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건 그냥 끝이다.

아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빈 무덤가 황량한 사막 근처의 산 !

한번의 센 바람이 불어 지나간 후 적막을 깨는 여우의 '아~우~'하고 울부짖음은 소름은 끼치고 암울한 분위기지만, 그건 그래도 여우의 생기나 있다.

 

 그럼에도 세 환경 모두에 공통점이 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

영원히..

 

 예레미야의 오늘 마지막 울부짖음에는 그래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노아의 황량한 발 디딤에도 새로운 시작이 믿어 의심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시고

천지 탄생의 황량함도 곧 거대하고 폭팔할 듯한 하나님의 파워가 농축되어 있다.

 

 이처럼 가혹한 고통 뒤의 무기력함은 주님 여호와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재 창조의시발점이다.

 

우리는 이걸..

"바닥치기"라고 한다.

 

 완전히 내가 무엇을 한다는 의지와 헛된 야망이 스러지고 무기력을 인정하고 두손 두발을 다 든 후에야 주님이 역사를 하신다.

 성경은 이걸 '약함이 곧 강함'이라고 하셨다.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이제 두손 두발 다 들고 주님께 돌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 남으면 이런 고백할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이 처절히 실패한 상황.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처절한 패배.

눈에서는 생각만하면 쏟아지는 눈물.

뼈 속까지 아픈 듯한 깊은 좌절.

...........

 

 이게 주님이 안계실 때는 황량한 시온 산성에 메마른 바람 뒤의 여우 울음 소리에 지나지 않을 줄 모르지만. 우리 주님이 계시면 다르다.

 

새로운 시작이다.

파워의 응축된 꿈틀거림이다.

녹색이다.

더 큰 축복의 전주곡이다.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신 그 분 예수님을 놓치지만 않으면 실패는 우리에게 또 다른 축복이됨을 암시한다.

 

할렐루야.

 

 

 

적용

 

1. 실패했던 일을 적어보자

   열등감을 고백하자 .

   그리고, 그걸 통해 임하시는 주님의 뜻을 감사하자.

 

2. 장점을 생각하자.

   주님을 위해 쓸 수 있는 바를 묵상하자.

 

3. 기도하자.

 

4. 여우의 울음과 바람

 그리고 , 수면 위의 꿈틀거리는 주님의 생기를 묵상하자.

 

 

 

기도

 

주님.

오늘로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깊은 울음을 마주하길 마칩니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신 며칠 이었습니다.

 

피상적으로 흘러가던 내 생활 속의 죄를 회개할 기회를 허락하시어

그 분 예레미아 선지자의 눈물과 함께 씻어내려

내 영혼이 정결케 됨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 오늘.

주님께서는 황량하지만

우리의 주님에 대한 고정된 눈만 있으면

황량이 오히려 행운이고

황량이 오히려 땅 속에 숨어 있던 씨앗의 발아 기회이며

황량이 오히려 노아의 새로운 신 세기를 의미함을 의미함도 된다는

그런 귀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힘을 내서 우리 주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이전의 모든 죄를 용서 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축복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가 깨어나고 세상의 악이 저지되는 곳마다 누군가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 아서 T. 피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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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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