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부르실 때(왕하 9:1-13) 본문

구약 QT

주님 부르실 때(왕하 9:1-13)

주하인 2011. 7. 18. 11:38

제 9 장 ( Chapter 9, 2 Kings )

주님 부르실 때

내 영혼 이리

폭죽 터뜨리듯

반겨 맞으리다

 

늘 준비된 마음

감사한 마음

즉시 응답하는 마음으로

주님 맞으리이다

 

내 사랑하는 주여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선지자 생도 중 하나... 다.

이름도 없다.

그에게 하나님은 일을 시키신다.

 
2.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역사의 대 현장에 '그 이름없는 선지자의 생도'가 나타나서


 
3.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기름을 붓는다.

예후에게..

그리고는 얼른 도망치라신다.

그만큼 위험하다.

 

주님 부르실 때 어떻게 대하는가?

 
 

11.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그만큼 예후 이외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볼 만큼

그 생도는 '소년'이고 '미친 자'로 보일 만큼

아직은 미성숙한, 갖추어지지 않은 모습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예후의 반응은 달랐다.

그 어린 소년의 기름 부으면서 말할 때

그는 하나님을 느꼈다.

예후.

그는 장성한 남자고 반역을 꾀할 힘있는 자였다.

그가 어린 소년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그도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고

그의 야욕 -왕이 되고픈-에 정확히 들어 맞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부르심.

 

부르실 때

두 사람은 어찌 달랐을까?

 

소년 선지자 생도에겐 '야욕'이 있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목숨을 걸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던 바

그는 자신의 '선지자'로서의 정체성에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했을 것이고

 예후.

그는 생각이 많고 야욕이 많은 자.

그는 비록 '미친 듯, 치기어린 듯' 한 어린 소년의 기름 붓는 행동에

하나님을 알아차린 것은

그의 야욕에 합당한 시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결국 생도는 '순수'하고

예후는 ' 순수치 않았던 '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차이일까?

무엇을 보이시려는 것일까?

이 시간 .

이 아침에 나에게 무엇을 보이시려는 것일까?

 

흔들리려는 나.

많이 내려놓고 많이 포기하고

많이 기다리는 훈련을 하려 했지만

틈만 나면 날 밀고 나오는 걱정 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으로 바뀌려는 이루려는 욕심들.

가끔은 그래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너무나 확실한 이유로 날 흔드는 생각들.

 주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날 부르시고 날 흔들어 보실 수 있다.

만일 주님이 때가 되어 날 부르실 때,

순수하게 목숨걸고 응답할 소년 생도 같은 모습이 되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안절 부절 ,

내 바램을 극대화시키고 한편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금식도 하고

세상의 것 추구하고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만 혹 예후 같은 모습은 아닐까?..생각이 든다.

 생도로서 소년선지자는 열심히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엘리사나 엘리야님 같은

대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세상의 것,

세상의 가지고 싶은 것을 열심히 추구함도 필요할 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에게 달란트로 주어진 것,

의사로서의 나.

찬양자로서의 나.

블로그를 통하여 영광드리는 나....

그리고 그 통합을 위하여 하나하나 이루어지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서

주님이 부르실 때를 기다리며 갈고 닦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소년 생도.

세상의 왕하고 비교하여 초라할지 모르지만

주님의 편에서 들여다 본 묵상은

그가 옳고 예후가 싫다.

 

 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금의 내 입장.

장래에 생각되는 내 형편.

과연... 세상의 눈으로 보아 그것이 꼭 부족할까?

더욱 몸부림 쳐서 예후 쪽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제 불현 듯 깨달은 바가 있다.

부르심 받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것.

'공부' .

' 기타... 연습.'

' 기도' ...

그리고 '기다림'

주님이 가장 선하심을 믿으며,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 꼭.............그리 암울한 것 만은 아닌 것.

어쩔 수 없이 펼쳐졌지만

그 어쩔 수 없음 이후에 주님과 나 만이 아는

많은 선한 열심으로 여기까지 쌓여져 온것.

그래서 기쁨 가운데..

 더 기다릴 것.

그게 소년 생도를 부르실 때처럼

나에게도 부르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 유지하는 것 같다.

 

 

주님

놀라우신 내 아버지.

세상 살면서 때로 예후처럼,

아니 더 나서서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렇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주 도태되는 것만 같은 초조함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저같이 이리 있어도

더 열심히 살아 돈 많이 벌고 자식 좋은 대학 보내도

모두 한 나이들 든 육신을 가지고

장래에 어찌될 바 모를 초조함으로

그냥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허덕이고들 사는게

모든 인생의 황혼 시기인바,

어쩌면 내 주님의 말씀을 매일 발등의 빛을 삼아

한걸음씩 나아가며 영적인 강건함으로

매일매일 조금더 선해지고 순수해지는게

훨씬 더 옳은 것일 수 있다는

아주 가끔이지만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소년 선지자 생도의 부르실 때 모습을 묵상해보니

그 위험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최첨단의 명령을 받고

순간으로 순종하는 그 모습에서

나도 저런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게 아닌가

내심 나이에 비해 '순수한 ' 영혼을 유지해가려는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차로 말씀에 비추어 깨끗해져가는 게

감사합니다.

가끔 비교되어 흔들리려는 제 어리석은 본성을

고백합니다.

주여.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는 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와 제 가족 모두 그리 준비된자 되길 소원하고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