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부르실 때(왕하 9:1-13) 본문
제 9 장 ( Chapter 9, 2 Kings )
주님 부르실 때
내 영혼 이리
폭죽 터뜨리듯
반겨 맞으리다
늘 준비된 마음
감사한 마음
즉시 응답하는 마음으로
주님 맞으리이다
내 사랑하는 주여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선지자 생도 중 하나... 다.
이름도 없다.
그에게 하나님은 일을 시키신다.
2.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역사의 대 현장에 '그 이름없는 선지자의 생도'가 나타나서
3.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기름을 붓는다.
예후에게..
그리고는 얼른 도망치라신다.
그만큼 위험하다.
주님 부르실 때 어떻게 대하는가?
11.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그만큼 예후 이외의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볼 만큼
그 생도는 '소년'이고 '미친 자'로 보일 만큼
아직은 미성숙한, 갖추어지지 않은 모습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예후의 반응은 달랐다.
그 어린 소년의 기름 부으면서 말할 때
그는 하나님을 느꼈다.
예후.
그는 장성한 남자고 반역을 꾀할 힘있는 자였다.
그가 어린 소년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그도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고
그의 야욕 -왕이 되고픈-에 정확히 들어 맞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부르심.
부르실 때
두 사람은 어찌 달랐을까?
소년 선지자 생도에겐 '야욕'이 있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목숨을 걸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던 바
그는 자신의 '선지자'로서의 정체성에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했을 것이고
예후.
그는 생각이 많고 야욕이 많은 자.
그는 비록 '미친 듯, 치기어린 듯' 한 어린 소년의 기름 붓는 행동에
하나님을 알아차린 것은
그의 야욕에 합당한 시기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결국 생도는 '순수'하고
예후는 ' 순수치 않았던 '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차이일까?
무엇을 보이시려는 것일까?
이 시간 .
이 아침에 나에게 무엇을 보이시려는 것일까?
흔들리려는 나.
많이 내려놓고 많이 포기하고
많이 기다리는 훈련을 하려 했지만
틈만 나면 날 밀고 나오는 걱정 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으로 바뀌려는 이루려는 욕심들.
가끔은 그래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너무나 확실한 이유로 날 흔드는 생각들.
주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날 부르시고 날 흔들어 보실 수 있다.
만일 주님이 때가 되어 날 부르실 때,
순수하게 목숨걸고 응답할 소년 생도 같은 모습이 되어 있을 수 있을까?
혹시 안절 부절 ,
내 바램을 극대화시키고 한편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금식도 하고
세상의 것 추구하고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만 혹 예후 같은 모습은 아닐까?..생각이 든다.
생도로서 소년선지자는 열심히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 엘리사나 엘리야님 같은
대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세상의 것,
세상의 가지고 싶은 것을 열심히 추구함도 필요할 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에게 달란트로 주어진 것,
의사로서의 나.
찬양자로서의 나.
블로그를 통하여 영광드리는 나....
그리고 그 통합을 위하여 하나하나 이루어지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서
주님이 부르실 때를 기다리며 갈고 닦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소년 생도.
세상의 왕하고 비교하여 초라할지 모르지만
주님의 편에서 들여다 본 묵상은
그가 옳고 예후가 싫다.
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금의 내 입장.
장래에 생각되는 내 형편.
과연... 세상의 눈으로 보아 그것이 꼭 부족할까?
더욱 몸부림 쳐서 예후 쪽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제 불현 듯 깨달은 바가 있다.
부르심 받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것.
'공부' .
' 기타... 연습.'
' 기도' ...
그리고 '기다림'
주님이 가장 선하심을 믿으며,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 꼭.............그리 암울한 것 만은 아닌 것.
어쩔 수 없이 펼쳐졌지만
그 어쩔 수 없음 이후에 주님과 나 만이 아는
많은 선한 열심으로 여기까지 쌓여져 온것.
그래서 기쁨 가운데..
더 기다릴 것.
그게 소년 생도를 부르실 때처럼
나에게도 부르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모습 유지하는 것 같다.
주님
놀라우신 내 아버지.
세상 살면서 때로 예후처럼,
아니 더 나서서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렇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주 도태되는 것만 같은 초조함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저같이 이리 있어도
더 열심히 살아 돈 많이 벌고 자식 좋은 대학 보내도
모두 한 나이들 든 육신을 가지고
장래에 어찌될 바 모를 초조함으로
그냥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허덕이고들 사는게
모든 인생의 황혼 시기인바,
어쩌면 내 주님의 말씀을 매일 발등의 빛을 삼아
한걸음씩 나아가며 영적인 강건함으로
매일매일 조금더 선해지고 순수해지는게
훨씬 더 옳은 것일 수 있다는
아주 가끔이지만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소년 선지자 생도의 부르실 때 모습을 묵상해보니
그 위험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최첨단의 명령을 받고
순간으로 순종하는 그 모습에서
나도 저런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게 아닌가
내심 나이에 비해 '순수한 ' 영혼을 유지해가려는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차로 말씀에 비추어 깨끗해져가는 게
감사합니다.
가끔 비교되어 흔들리려는 제 어리석은 본성을
고백합니다.
주여.
그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는 저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저와 제 가족 모두 그리 준비된자 되길 소원하고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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