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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심(왕하10: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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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심(왕하10:1-17)

주하인 2011. 7. 21. 09:41

제 10 장 ( Chapter 10, 2 Kings ) 

퍼붓 듯 내리는

저 푹우 속에서도

그나마 몸을 피할 수 있음은

주님의 허락하신

우산 덕이다

 

그러나 언제까지일까

예후의 착각같은

내 열심의 송곳이

허락된 피난처를 찢을때

 

금새 내 온몸

죄의 빗물과 주의 진노로 

젖어 들고야 말것을 

 

진중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겸허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걸어가는 내 인생

발걸음마져 젖지 않으리라

 


 

4.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 왕이 저를 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이해가 안가는 두려움.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들..

이세벨이 저항할 힘도 없이 죽고

 

7.  편지가 이르매 저희가 왕자 칠십인을 잡아 몰수이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이렇게 칠십명이 예후 한명을 당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10.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하나님이 하심을 확신하는 자와 

하나님이 하시었기에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일이 진행되어져 간다.


  
 

13.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거기에 유다왕 형제들이 왜 나타나는가? 

예후 앞에 지푸라기 처럼 죽어 나간다.

  
  
16.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진짜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쓰임을 받지만

회개가 없고 그 분의 뜻을 돌아보지 못하는 자의 횡포는

두렵다.

 

 

 예후는 분명코 주님께 쓰임 받고 있다.

비록 예후 - 앞으로의 경과... ^^;- 가 안 좋지만..

'하나님'의 쓰임을 분명히 받으면서도

그게 100%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거꾸로 '세상의 놀라운 축복'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분명하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정말 축복이 아닐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후의 예후가 나쁨을 보면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음을 알수 있다.

세상의 축복이 그러기에 어떤 자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반드시 '복' 복 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도저히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잘나감을 부러워 할일 만도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후'의 모습을 보며

어떤 경우의 번성을 경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분명코 '인간의 힘'으로는 그리될 수 없는

상식을 넘어서는 '만사형통'이 이루어짐을 보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사실과 더불어

그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고 사모하는 영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그 분이 역사하시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과는

조금 차이가 보인다.

 

16절에서 드러난다.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무슨 열심이던가?

명령하신 대로 그냥 실행하는 게...그리 대단한가?

오히려 과도한 살륙을 행하는 데 부담이 있어야 하지 않던가?

주님의 명령이시지만 좀더 진중함이 필요하지 않던가?

자신 같은 자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삼아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숙연함이 있어야 하지 않던가?

더 겸손해야 하지 않는가?

자신은 쓰임을 받는 도구일 뿐임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감사해야지 않는가?

거기에는 '자신'의 의가 들어가 있다.

'내 열심을 보라' 한다.

 

이게 문제다.

그는 '회개' 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들여다 보는 자가 아니다.

그는 감사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영적 감성을 지닌 자가 아니다.

그래서 인지 그는 교만하다.

거칠다.

그래서 그는 결국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나.

오늘 '예후'의 잘못 중 어떤 점을 닮아 있는가?

아직도 고치지 못한 내 영혼의 버거움이 어떤 것이던가?

 

 감사.

연습이 많이 되어가고 있다.

참 내 삶이 감사함으로 많이 둘러 쌓여 있음을 발견함이 감사하다.

그 감사함의 이유가 하나님이심이 감사하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연습.

많이 되어 있다.

아직도 깨야 될 부분들이 많지만

주님 성령께서 인도하시면 그 마져 이루어질 듯 싶다.

그때쯤... 내 인격은 많이 성화되고 영혼은 정화되어 있으리라 기대한다. ^^*

 영적 감성.

감수성은 많이 발달해 있다.

 

 교만......

이 부분은 자신이 없다.

많은 부분 열등감이 있으면서도 상대적인 교만도 있다.

특히 스스로 놀라는 것은

말씀 앞에 깨달음이 늘어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는 늘어가면서

한편으로 그걸 모르는 세상의 미성숙한 자들에 대한

나도 모르는 '무시'와 안타까움이 공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성령하나님의 임재와

매일 매일 말씀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발의 등불이 없이시고  인생 길의 빛이 없으셨다면

나... 어느새 예후같은 예후를 밟지 말라는 법이 없을것이다.

 회개 ..도 그렇다.

회개하려는 당위성은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럼은 아프고 힘이 드니 의도적으로 내 아픔 뒤에 숨어

주님이 바라시는 회개를 통한

잘못 왜곡되어져 가는 영혼의 결점을 바로 잡아가지 못할 뻔했다.

 

어제 .

수요일..

삼일예배를 그리도 열심히 드렸던 옛 열심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점차로 부담이 생겨 언제 부터인가

예배 참여 안하면 기도원에 들러서 기도라도 하고 갈 결심을 한 이후

어제도 수영을 가고 느즈막히 퇴근길에 들렀다 갔다.

하루 종일 '회개'를 말씀으로 짊어 지고 있던차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회개를 주 기도제목으로 하기로 했다.

내 마음에 미움으로 꽁꽁 묶어 놓고 있는 자들.

설령 용서했다면서도 아직도 마음에 부담으로 가지고 있는 자들..

하나하나 입으로 풀어제칠 만한 영적인 버퍼가 없는

나.....

 그래서 십자가를 연상하며 한분 한분 연상을 하고

회개가 주신 말씀임을 상기하며

자연스레이 흐르듯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오고

손이 높이 들리고 안타까움의 눈물도 흐르기도 한다.

마음이 참.. 편하다.

내가 무엇을 하려 할 때

의지적으로 용서하려는 시도를 할 때...

가능치 않을 것 같던 마음의 부담들이 별로없이

앞으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주님 성령께서 임하시면,

회개마져 시켜주심을 난 알고 체험하고 있다.

 이런 체험이 쌓이면서

별로 걸림이 없어질 것 같다.

물론, 한번 가지고 다 되겠는가?

주님이 허락하시는 순간까지 매일 매일을 인도하심 받아야지..

 

 오늘 예후의 거친 영혼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내 거친 부분을 발견한다.

이제 오늘은 '교만',

타인을 함부로 봄.

긍휼을 가지지 못함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내 아버지가 나에게 그러셨듯

난, 심지어는 내 자식들에게 조차

내 기분에 맞을 때야 '내 사랑' - 사랑이라 착각하는.... .- 을 주었던 것 같다.

실은 진정한 사랑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바라고 원함을 채워주었어야 하는데..

물론, 그게 하나님의 뜻과 타인에 대한 부담이 안되는 한에서...

 오늘 예후의 모습은

'내 열심' 이라 한다.

어쩌면 나도 오늘 묵상 제목으로 하루 종일 마음 속에 담고 다녀야 하는 제목은

' 내 열심'을 깨는 것'인 듯하다.

하나님의 뜻을 앞서려는 '내... 자아'의 만족.

하나님이 하신 것을 교묘히도 내것을 만들어 칭찬 받고 싶어하는 교만.

무지.

큰 죄.

 

 당직이다.

오늘 하루종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되

그 안에 날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겠다.

 

 

 

적용

1.   내 열심.. 으로 착각하는 것은 없는 지 늘 조심하자.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중 내가 잘나서 한 것이 어디 있는가?

 블로그 , 7년 이상의 열심, 사진, 글.....찬양..의사로서의 현재..........

 어느 것하나 내 잘나서 이룬 것이 있던가?

  가만히 보면 난.. 어느 순간 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낸다면서

 내 잘난 것을 힘써 자랑한 것은 아닌지 싶다.

 

2. 교만. .. 자제하자.

   겸손한 하루되자.

 

3. 예후의 예후를 잊지 말자.

 

4. 늘 하나님을 의식하는 하루가 되자.

 

5.  잘나가는 자를 부러워 하지 말되 경멸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내 열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기도하자.

 

6. 병원... 기도가 필요하다.

 실크로드가 거의 해체 지경까지 왔다.

 병원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초창기의 하나님에 대한 뜨거움이 식었다.

 실크로드.. 그 과정에서 어떤 이유든 쓰임을 받았다.

 아련한 기억으로 내 인생의 한 지점을 장식한다.

 아쉽다.

 

7. 성경 세장 읽겠다.

 

8.  주님이 허락하시는 빈 공간, 빈시간.

 다음의 쓰임을 위하여 준비하자.  

 

9. 주님 축복 주소서.

 겸허한 가운데 주시는 축복을 간구합니다.

 

 

기도

 주님.

예후를 보면서 다양한 마음이 교차함을 느낍니다.

그의 부흥을 보듯,

그의 주위에서 밀어닥치는

주님의 손길로 이해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풍성한 복을 옆에서 보면서

나도 저리 되었으면 하는 복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하나이면서도

그의 '내 열심' 소리 들어가면서

그와 닮아 있는 내 부족한 부분이 뜨끔하기도 합니다.

주님.

주위에서 보이는 저런 풍성한 발전을 보이는 자들을 축복하는 너그럼이 생기게 하소서.

그들이 풍성히 누리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기를 기도하게 하소서.

아..

특별히 오래된 친구 LKS의 대 성공을 축복합니다.

그의 하나님 앞에 열심을 축복합니다.

그의 좀더 겸허함을 축복합니다.

주여 크게 쓰소서.

병원의 발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서 많은 , 놀라운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도 많은 누림을 받았습니다.

주여.

부디 예후의 경우를 통하여 깨닫는 겸허함을

모든 리더분들에게 허락하시고

이 안에 거하는 모든 직원들이 주님의 그 놀라우신 평강 안에

들어오길 소원합니다.

주여.

제 부모님..제 자식들, 제 아내 , 제 식구.. 모두

주님의 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영적 교류와 겸허한 자들되기 원합니다.

주여.

모두 축복합니다.

제 자신... 더욱 낮아지고 겸허한 자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허락하시면

저에게도 부러운 예후의 저 축복도 주소서..

그 안에서 열심히 쓰임을 받되..

주님 제 인격을 더욱 깊고 풍성히 발전시키소서.

내 열심보다...

주님의 영광위해 매일매일을 살아가며

풍성히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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