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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두손들어 기도하자 (왕하6:24~7:2 )

주하인 2011. 7. 14. 09:17

제 6 장 ( Chapter 6, 2 K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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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해 떠오를 때까지

하늘이

맑고 푸르러질 때까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무릎꿇고

두팔들어

내 주님오실

그 때까지

말씀 듣고

사모하고

기다리겠나이다

 

주여

속히 응답하소서

 

 

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나님 이야기를 이스라엘 왕이 한다.

말은 옳은 듯하나, 비아냥 거림이다.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아람 군대가 다시 쳐들어와 모두 굶어 죽게 될 정도가 되나

왕인 그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는 그의 안타까움을 굵은 베를 입는 것으로 표현했고

그것을 들여다 보는 백성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백성 사랑하는 왕으로서의 마음을 알 수는 있다.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그러나, 그는 그 안타까움을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 지 반성하고 회개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돌린다.
  
  
33.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그리고는 '재앙' 의 근원이 하나님이니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 어리석은...

 

그의 이 어리석음이 과연  이 시대의 이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무지한 자들이라 그럼으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식을 쌂아 먹을 정도의 처절한 고통이 되풀이  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음에서 믿음 마져 놓치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그 누가 쉽게 장담할 수 있는가?

 이 이스라엘 왕은 믿지 않는 자던가?

어리석은 자던가?

위의 예를 보아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지 않던가?

 


 
제 7 장 ( Chapter 7, 2 Kings )
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

     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문제는 무엇이던가?

지속되는 믿음의 부족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의 부족이다.

믿는 자로서 매일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노력이 없는 자는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 하여도 실족할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더구나 이러한 처절한 고난 중에서... 

 

 주님을 찾고 또 찾을 때에야


 
2.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이들, 이스라엘 왕이나 장관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는 그 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일어나지 않겠는가?

 

 얼마 전 부터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여 왔던 일이

하나 둘씩 배반하듯, 내 주위를 떠난다.

그러면서 나.......당혹했다.

가장 어려운 일....

엘리사가 새롭게 이글거리는 성령으로 선지자의 리더가 된 후로

그 힘에 새롭게 선지자들의 거처를 넓히기 위하여

도끼질 하던 중, 도끼가 부러져 물에 빠져 버리듯,..

갑작스레이 모든 상황이 날 버린 듯 마구 휘몰아치며

날 흔들어 놓는 태풍처럼 다가오며

난 지독히 고통스럽고  '외로워지려 ' 한다.

그래도 말씀 묵상을 통해 매일 내 발걸음을 밝히시는 등의 인도를 받는 것 같이

상황상황에 따라 '지혜'로 날 밝히시는 주님의 뜻으로

'과정' 중의 하나 임을 나는 눈치 채어갔다.

며칠의 혼란을 딛고 정리해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유가 되는 시간과 조용한 시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함이고

그것이 나의 지금 이후의 '노년'의 삶에 다가올 여러 심적 영적 혼란을

미리 경험하게 하시어 정리시키시기 위한 이유이실 수도 있고

이제 조금 더 깊은 단계의 영적 훈련이실 수도 있음을 알게 하심임을

조금은 눈치 채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흥으로 이사간 후 조금은 소홀해진 '기도원'을 가까이 하기로 마음 먹었다.

 

 기도원.

누구들 처럼 나에겐 그렇게 절절하게 금식하여 응답 받기 위한 도구의 의미가 아니다.

안양 집 바로 옆에 있는 한국에서 가장 맑고 건강한 기도원이 있음에

내 폭풍처럼 다가오는 많은 생각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으로 정리하여 내 영혼에 굳히는

아주 고요한 좋은 장소이었다.

그리고는 내 혼자 도저히 생각이 정리 되지 않을 때마다

너무 좋은 목사님의 설교로 인하여 강한 임팩트로 나를 깨우시는 곳.

하나님의 사랑의 현장으로

집과 좋은 직장과 더불어 삼각으로 날 포진하여

호위하시듯 하던 나의 배려된 장소.

 

 조금 더 남는 시간과 마음이 덜 빼앗기게 되는 기회다.

오히려..

그래서 세상의 배반은 아쉽지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연습하기로 마음 먹었던 터다.

그래서 한동안 소홀 했던 '수'요일 예배만큼은 가능하면 기도원 가서 드리려 마음 먹었다.

어제 역시 비가 많이 내렸다.

우중을 뚫고 가는 기도원의 길은

세상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의 하나님과의 데이트 장소다.

진짜로.. 가슴이 설렐 때가 많다.

 가면 틀림없이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깨달음이 있기에 그렇다.

주님의 깨달음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한 기쁨이다.

난... 거기에 중독이 되었다.

느즈막히 가도 된다.

꼭 .. 내 취향이 아닌 규격에는 덜 맞추어서지만

예배 중간 즈음에 들어갔다.

 요한 복음 11:16절 이하의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신다.

조 담임 목사님.

문학 소년 출신이신 듯.. 너무 정리를 잘하신다.

늘 감동이다.

알고 있는 것을 깊이 통찰로 바꾸시는 데 탁월하신 달란트가 있으시다.

"죽은 나사로를 죽도록 허락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그를 통하여 수천명이 예수님 영접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고난 ' 만을 바라보면 이해될 게 없다.

 하나님의 뜻을 보면 모두 '선'이 아니던가?" 가 주제다 .

말씀이 꽂힌다.

" 오병이어의 기적도 기적만 바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적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던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함이 아닌가?"

맞다.

알면서 자꾸 잊는거..

그것 어리석음이다.

지혜가 부족함이다.

사단의 장난이다.

말씀이 이어지신다.

" 사단은 똥파리다. 

 똥파리는 파리채 들면 금새 보이지도 않는다.

 두손 들면 사단도 그렇게 된다.

  사단은 똥개다.

  도망가면 열심히 짖으며 쫓아오다가도 돌아서서 눈을 마추치면

 꼼짝도 못하다가 가만히 돌이라도 집어 들라치면 소스라치게 도망가는

 똥깨처럼 사단도 그렇다.

 약한 듯 보이면 소리소리 내며 쫓아오지만

 우리가 무릎꿇어 두손을 들라치면 어느새 도망간다. "

  참 명쾌하시기도 하다.

그러시면서 시를 읊듯 그러신다.

" 비바람 폭풍우 세게 몰아칠 때

가장 안정된 자세는

무릎꿇고 두손 드는 것이다. "

아.........

맞지 않는가?

 

 고난이 왔는가?

무릎 꿇었던가?

그리고 두손 들었던가?

그리곤 기다렸던가?

 오늘 묵상의 주제가 그것이 아니던가?

이스라엘.

세상에 드문 환란이 몰아 닥쳤다.

자식을 삶을 정도로..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으로 버티려 하다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단계로 돌아섰다.

미리 미리 엘리사를 찾아가 하나님의 의중을 물었더라면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았을 것을...

혹여 늦게 깨달았더라도 주님의 시간을 조금 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

 

 어제 설교를 들어가며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나.

참 오랫동안 '피하려'했던 그 고난.

그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주님을 더 찾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난 자체를 '십자가'로 기뻐하며 받아 들인 것은 없던 것 같다.

어쩌면 .. 주님의 선한 결과를 믿고

인내하는 것이 더 옳은 믿음일 수도 있다는..

하지만, 그러하기엔 나의 그 동안의 버퍼가 너무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마져도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할 수 없는 일..

이제 주님께 또 여쭈어야 할 주제가 생긴 것이다.

 고난.

나의 어려움.

나의 끈질긴 터부.

그 어려움이 빌어서 없애야 할 기도의 제목이던가?

아니면, 십자가로 받아 기쁘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 것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날 그리 바꾸시도록 그 마져 기도해야 한다.

어느 것이 주님의 뜻인지 기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어렵다.

믿음의 길.

특히 현대의 이 복잡한 삶 속에서

주님 만을 바라보고 무릎 꿇고 두손 든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을 소모하는 초조함이 가만 두지 않을 듯 싶다.

그 바쁨과 분주함은 그래서 '사단의 궤계' 인듯 싶고..

 

이제 오늘 묵상을 통하여

이 바쁜 세상에 '가만히 무릎 꿇고 두손 들어'

주님 안에서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이

가장 선한 믿음임을 보고 있다.

 

감사하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자.

 말씀을 읽는 것이 주님의 은혜를 끊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가장 우선되는 선결조건이다.

 

2. 고난도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주님은 무조건 선이시다.

 고난은 주님의 변형된 축복이 맞다.

 베드로는 배반의 심적 고통을 겪고 놀라운 사도가 되었다.

 나사로는 죽은 후에야 다시 살아난 체험을 했고

 그의 누이들은 그 사별을 통하여 예수님의 영광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다.

 모두 주님의 뜻 속에 있다.

 

3. 축복도 주님의 뜻이시다.

 현재의 내 삶의 안정,

 어쩌면 앞으로도 예비된 번영할 내 가족의 운명...  . .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주셔도 안주셔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4.  무릎 꿇고 두손 들자.

 어느 순간에도 기도하자.

 어느 때에라도 주님을 갈구하자.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말자.

 

5. 세상은 희망이 없다.

 주님 만이 희망이다.

 모래 위의 '성'이 세상이다.

 비 멈추면 '물가'가 춤을 출 것이고

 '오염'된 산하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고

 기후는 예측할 수 없이 사람들을 어지럽힐 것이다.

 먹을 것은 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고

 유가는 모든 괴로움을 가져올 큰 위험 요소다.

 병들은 점점 악해져 간다.

 앞날 만 보면... 암담하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

 예수님의 뜻,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면 소망이 생긴다.

 더 인내하고 깊이 주님을 사랑하자.

 

 

기도

 주여.

이들의 고난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번성한 이 시기에 가장 위험한 일들이 도처해 산재했습니다.

대청호가 쓰레기 더미로 변해 먹을 물이 충청권에 사라지려 합니다.

처처에 문제 덩어리입니다.

주님.

이때, 주님의 뜻을 생각해 세상의 모든 주님을 믿는 자들이

겸허해지면 하나이다.

세상적으로 굵은 베 입고 서로서로 위안함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어리석음입니다.

주님.

세상이 사실을 알게 하시고

모두 주님을 위하여 무릎 꿇길 원합니다.

주님.

우선 절 바꾸소서.

제 오래된 고난을 그리 고난스럽지 않게 바꾸게 하소서.

그리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의 십자가로 생각해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

주님  뜻이시고 때가 되셨으면 저에게 그 고난 거두셔서

이제 좀 넉넉한 삶 살았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잃지 않는 .. 귀한 삶이 되게 하소서.

만일 주님...

제 고난을 통해 그래도 제 주위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거나

제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 아픔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버퍼를 주시고

저 그러함을 깊이 받아 들일 수 있도록 깨닫게 하소서.

주여.

저.. 불쌍히 여기소서.

아직 깊이 무릎 꿇고

더 힘껏 두손 들지 못한 삶을 사나이다.

이런 어리석은 자.. 용서하시고

주여 불쌍히만 여기소서.

그리고 감사하나이다.

절 여기까지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제 자식들.. 잊지 마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두손들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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