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무엇을 원하십니까(요 4:27-42 ) 본문
계곡 같은
우리 아파트의 특성 상
베란다가 춥다.
공구통 가지러 나가다
그 추운 베란다에서
이리 아름다운 꽃이 피워있음을 발견하고 기뻤다.
내
추운 영혼에도
성령으로
꽃이 피고 열매맺는 기적은
일어날 것이다.
제 4 장 ( Chapter 4, John )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먹을 것을 사오고 지칠 대로 지친 그들.
주님이시니 당연히도 하실 일 하시겠지...하며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냥 두었을까?
아니면, 뒤에 나오는 물음이 당연하기에 당연히도 묻지않는 그들의 모습이
당연히 이상한 것일까?
그래서 이리 명기한 것일까?
두 그룹 - 수가성 사람들과 제자들-의 대비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제자들의 잘못인 것일 것이 맞는 것은 같다.
날씨가 아주 아주 춥다.
겨울 답다.
코가 시리고 귀도 시리다.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 드는게 춥다.
그래서 인지 환자 분들이 많이 없다.
잠시 창틀을 통해 스며드는 양광을 맞으며 묵상을 했다.
의자를 뒤로 돌리고..
내가 제자의 입장이 되어서.........
그랬다.
난, 어찌도 주님에게 요구만 해왔던가?
그분이 나에게 필요로 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왜 생각하지 못하는 믿음이었던가?
그 분이 수가성 여인을 통하여 분명코 고급스러운 영적 각성을 주실 것이
너무도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내 신경은 하나라도 더 배울 그 쪽으로 관심이 쏠리지 않고
배고픈 것, 필요한 것, 서운한 마음의 채움..............의 '내 요구'에만 집중해왔던가?
이런 어리석은 내 아이같은 믿음에 대한 넌지시 깨닫게 하는
'주하인에 대한 직면'의 목적이신 듯하다.
왜 그런 추정을 하느냐고?
주님은 살아계신다.
그 분은 말씀을 통하여 운행하신다.
그 말씀은 때로는 똑같은 구절가지고도 너무도 다른 결과의 묵상을 유도하신다.
그 말씀은 정확하기가 말도 못한다.
말씀은 현실에 역사하는 힘이 크다.
그러한 것은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간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 주하인의 짧은 신앙 경력을 통하여도 증명하신다.
나,
부족하였다.
주님이 뭘 원하시는 지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 깨달아야 하는 지 집중 못해왔다.
이제 조금은 달라져야 겠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보라
여자는 물동이도 잊어 버릴 정도다.
그니는 주님의 직면케 하시는 말씀 몇 마디에 천지가 개벽이 되는
영혼의 대 격변을 경험하였다.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 격변은
그 분이 예수님이기에 가능한 일 이다.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우리.
주님의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는
반드시 '전도'를 해야한다.
그것은 '사명'이다.
값없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기는 하겠지만
무슨 면목으로 주님을 뵙겠는가?
이 땅에서 소출이 주님의 명령의 이외 것 , 돈이나 자식, 명예 등의 것이 고작이라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결국은 폐경기가 오게되는 여성거나, 갱년기의 남성이라면
아무런 흥미와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유치한 '욕구'만 남은 배뿔둑이 피곤한 육신 만 남게 될 것을.................
전도하자.
말씀을 나누자.
그것이 주님께 '무엇을 해드릴까요.. ?" 여쭈어 보면
나에게 해주실 답의 일부일 것이다.
거기에 주님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해준 대로
'인생을 직면할 지혜 , 말씀의 은혜, 복음의 그 절정의 감동'을
잉웃에게 나누어 주길 원한다 하실 것일 수 있다.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그래.
이것도 중요하다.
'잡수소서.'
예물도 바치고
기도의 시간도 열심히 채우고 - 기도의 본질 보다는... - 또,
헌신도 하고.........
당연히 해야할 것이지.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아침에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안 드셔도 배부르실 양식이 과연 무엇일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드디어 답이 나오신다.
'주님 하나님의 보내신 뜻대로' 행하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
사랑의 정화인 복음을 전하는 것....
하지만, 어찌 해야 그 것으로 배까지 부를 정도로
안먹어도 될 정도로 내 영혼이 충일 할 수 있을까?
이게 머리 속의 당연한 논리고 과거의 영적 경험의 축적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자신감으로 쌓여진 성장의 정도를 넘어서
주님 예수님 처럼........저렇게 안드셔도 영적 양식으로
육신의 양식까지 될 '기적'이 이루어 질까?
일요일.
어제.
교회가 적어서인지 한분한분 성품, 사정까지 다 아는 바...
어디서나 특별하신 분들이 있는 법.
찬양을 인도하던 중 '제동'을 거시는 분이 있었다.
시간없이 여러 세세한 부분 - 볼륨 조정, 연습.......- 이 부족한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찬양 , 그 중요한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 - 난 유난히 이런 개념이 강하다... - 가 그 분의 감각적 불만족과
인격적 특이성 때문에 제동을 받는 다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내내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자극적인 언사를 선택한 것에 대하여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한편으로 ' 내가 뭣 때문에 이 조그만 교회를 .......'라는 오만함도,
깨어지지 않는 그 성도 분의 미련함 ^^;;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아침의 묵상 구절에서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는 결심이 깨진 것이
속이 상했다.
그래서 저녁 늦게 기도원 갔다.
자고 내려와 배고프다.
우선 묵상집을 들춰보니 '주님의 양식'이 들어온다.
아.....
어찌 이리 부족한 자가..........
난, 주님 하나님이 그리도 먹이고 싶어하시는
이웃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풂을 못하는 가?
왜 그리도 내 자신에 대하여도 용인을 못하는가?
이러니......늘...........허전하고 배가 고픈 것은 아닌가?
........
배가 덜 고프다.
그래..
올초에 결심한 나도 모르는 아침 금식에 대한 이유가 이러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의 양식
'사랑', '.... 그외에 성령의 열매를 내 속에서 맺으면
내 영혼이 충만할 것이고 배가 고플 이유가 별로 없지 않는가?
지금 점심시간.
아직까지 안먹었다.
기쁘다.
금식의 당위성을 찾아서
덜 배고파서
성공해서
기쁘다.
이제
당연히도
주님의 기뻐하심을
주님의 원하심을 신경쓸 때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을 따라할 때다.
아직 힘이 들다.
내 속에서는 거부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
배고 프게 하는 무엇이 아직도 꿈틀 대려 한다.
하지만
원하면 주님께서 성령을 주신다 하셨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한 성령의 사모'가 필요하다.
나 혼자서 되지 않는 줄 안다.
적용
1. 성령을 사모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이 계셔야 한다.
2. 나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여쭙는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아무일 없듯이 하길 원합니다 .
3. 나와 화평한다.
4. 성경 일곱 장 읽겠다.
5. 걸리는 부분.. 기도한다.
6. 남의 도움이 되는 자가 되겠다.
오늘 하루.
7. 금식
당분간 지속한다.
배고픔이 배부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기도
주님
오늘
두 그룹의 대비를 통하여
저의 모습을 직면케 하시는 군요.
그랬습니다.
전
저 밖에 몰랐습니다.
제 평안
제 자랑
제 속상함
제 필요......
그것 때문에 주님께 요구만 해온 듯합니다.
그리고 나서 얻어진 성령의 은혜의 산물로 드러난 약간의 변화를 통하여
마치 제것인양 살았습니다.
피곤하고 배고프면 주님은 먼 데 계신
무감동한 분인듯 싶어 왔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수가 여인 같은 직면을 통하여
그들로 주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늘 깨어 있길 원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주님 성령님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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