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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가요?( 요 3:16-21) 본문

신약 QT

정말인가요?( 요 3:16-21)

주하인 2009. 1. 8. 14:47

제 3 장 ( Chapter 3, John )

 

퇴근 길

아파트 정문 앞에서 찍은 하늘.

달.

아름답고 늘 떠 있지만

그 달이 하나의 거대한 행성임을 잊는다.

그냥 아름다운 동화속의 이야기 처럼......

 

인지능력은

거기가 한계다 .

 

주님은

내곁에 계시고

그 분은 날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영원을 약속했것만...

바보처럼

설화속의 주님 동화로 인식할 때가

거의 대 부분인 듯 싶다.

속상하고 죄송하지만

거기가 한계다.

 

주님

도우소서.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포함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도 아는데요.

그리고 , 그 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알고

그 달리심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도

실은, 그 보다 더 힘이 드신 것이

위생의 개념이 전혀 없는 그 중동의 고대 삶 속에

제한 된 육체 속에 갇히신 것 이 얼마나 힘이 든지..

그러한 이유가

오직 '나'를 사랑하신 이유 한가지란 것도 압니다.

 

 주님

하지만 '은혜' 있을 때는 아니지만

흔들릴 때는 왜 저에게는 감동이 확 떨어지는 것인지요?

힘이 들고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묵상 구절에

너무도 유명한 저런 말씀이 주어지면

피하고 싶어지는 지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구원을 얻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구원을 얻음은

죽어서도 영원토록 천국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영생의 부활체의 삶을 기약 해놓은

너무나도 대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뻐 춤을 추고 절정의 감격으로 넋을 잃지 못할 까요?

 

 늘

주님은 말씀으로 날 인도하시고 가르치셨는데

왜 인지요?

말씀이 너무도 당연하고 정확하고 은혜의 구절임에도

'영생'이란 단어나

주님이 날 '이처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신 사실이

멀리만 느껴지려 하는지요?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아마도

나의 속의 어두움이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다시 '빛'을 두려워 하게 만들도록 준동을 하여서는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멀리 하게 하고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혼동을 야기 하려는 획책은 아닌지요?

 수개월 간

지독히 바빴습니다.

아니... 솔직히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빌미로  게을렀습니다.

말씀 묵상으로 하루를 꼭 시작하려던 결심이

어느 순간에 하루의 뒤로 미루어지던 것이

점차로 묵상을 들여다 보는 것 만으로 '자위'했었습니다.

그리고는 겨우겨우

나누고 적용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의 감동을 체험하기 보다는

하루 하루 했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해갔습니다.

처음에는 죄송하다는 느낌으로 충일 했었지만

그래도 주님은 아시겠지.. 와  '말씀 놓치지 않는다는 결심 만은 아직 준수하고 있다'는 나름의 합리화로

당당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금 옛날의 혼돈이 내 속을 흔들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얼마동안 너무도 평안한 하루하루 였던 것이

익숙한 혼란이 또 스물거리려 합니다.

 내 영혼의 에너지는 반분이 되어

내 반쪽 만 빛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다른 반쪽은 어두움의 옛 것들에 대하여 흔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흔들림이 꼭 내 잘못에 의한 징죄의 것은 아니겠지만

늘 지극하신  善이신 주님은

당연히도 무감동 내지 메마름을 허락하심이

나의 '선'을 위한 배려일 듯 싶기는 합니다.

 

 그런데 주여.

영생이

이 복잡한 심령으로

가져 가지지는 않겠지요?

정말 당연히도 그러하겠지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좇는 자

행위

오나니..라는 말씀에

능동적 선택을 권고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 집니다.

 

 진리를 힘을 내어 좇는 자들은... 이라는 얘기는

잠시의 흔들림을 불구하고 의지를 발휘하여

 진리를 좇아 가려는 노력을 자- 나에게 그러하라는 말씀이시다-는

빛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 - 내가 결단 해야 할 행위는 무엇인가?   말씀 앞에 다시 바로 서려는 노력이다.- 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알 수 있겠지요?

 

 

 

 메마름.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

 

 빛 가운데서 은혜를 누릴 때

자신의 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상태로 받던 무조건 적 보호하심에서

빛이 강해지며 우리 속에 있는 어두움이 더 크게 느껴지며

잠시 혼란이 느껴지는 상태.

그리하여 이전에 받았던 놀라운 빛의 은혜가 그리워

밝음 쪽으로 좇아나오는 의지를 발휘하심을 보심으로

밝음이 더 밝음이고

어두움은 근접할 가치조차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도록 하시기 위한 상태.

 주님은 그 '성장'과정의 메마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그 성장 후

온전히 주님이 내 영혼을 주장 하시게 되는

성화의 시기가 되면 

영생이 과연 어떠한 축복이고

그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가

정말로 놀랍도록 감사한 주님의 은혜 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늦은 퇴근 후

들어가던 아파트 현관 앞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높이 떠 있다.

 그 달이

참 아름답다.

달이 아름다웠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은혜 가운데 전율 할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밝고 아름다웠고

부는 바람이 그토록 시원 한 줄 늘 알았었으며

하늘의 달을 볼때 그 만드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기뻤다.

 그러나, 잠시 잊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달은 신화의 아름다운 그림자 만은 아니란 것이다.

그 달은 지구와 비슷한 형태의 커다란 행성이다.

아름다움 만을 느낄 때는 '행성'이란 사실을 잊는다.

그 거대한 규모를 알지만 늘 생각지 않고 있다.

 

주님은 영생을 말씀하신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서는 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신다.

 

십자가

고난

구원

영생

 

그리고

예수님...

 

어느 새인가?

난, 달의 아름다움 조차 잊고 있는 것을 넘어서

달이 행성임을 아예 까맣게 잊어 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저 큰 사랑을 잊고 있었다.

영생의 그 귀한 원리는

달이 행성이란 사실을 아예 까맣게 잊는 것 같이

생각지도 않고 살아 왔다.

이제는 둔한 내 영혼이

이 어두움과 빛의 공존 가운데서 살아가는 영생이

과연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엄청난 축복인 '영생'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전혀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나에게 '영생'의 진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 어리석은 주하인은 영생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영생'을 도전으로 남겨 두고 계신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신다.

나를 위한 그 사랑을 보라 하신다.

하지만 난, 아직도 처절한 감사함에 날 맞추지 못하고 있다.

 

 

적용

 

1. 영생에 대하여 묵상한다.

   이 모습 이대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영생이 무슨 의미인가?

영생의 실체화를 위해서 기도하자.

 

2. 십자가에 대하여 감사하며 묵상한다.

 

3. 말씀을 일곱장 읽겠다.

 

4. 메마름은 의지에 대한 권고의 시간이시다.

 아침 금식을 며칠간 성공하고 있다.

 아주 조금의 의지 - 배고픔이 내 최고의 시련이다. ㅎ ^^;; - 로 주님에 대한 의지의 훈련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지속하자.

 

5. 어두움과 빛에 대하여 묵상하자.

 

6. 아침 묵상의 시간을 준수한다.

 

 

 

기도

 

주님

원인이 무엇이 든 간에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우왕 좌왕 하고 있 는 듯 느껴졌습니다.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십자가의 구원의 정화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기적안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현실화 되고 정화 되지 못한' 피상적 믿음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감각의 믿음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 안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의지를 발휘하고 주님 앞에 발휘하시길 권유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묵상하길 마음 먹습니다.

조금 절식 할 수 있길 원합니다.

의지를 발휘해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길 원합니다.

빛으로 좇아가길 선택합니다.

그래서 빛이신 예수님을 들어낼 제가 되길 선택합니다

주님

간절히 소원하옵건데

영생이 저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깊이 알고 싶습니다.

조금은 더 실체적으로 알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도와 주소서.

제 안에 있는 어두움의 생각들이

잠시 선을 위한 도구임을 믿게 하소서.

주님

도우소서.

제가 주님을 위하여 올바로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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