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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그립다 (요 3:22-36 ) 본문

신약 QT

요한이 그립다 (요 3:22-36 )

주하인 2009. 1. 9. 12:51

제 3 장 ( Chapter 3, John )

 

 

무슨 탑인지 몰라도

밤길 걸어 퇴근하다가 본 밤하늘.

탑에 갇힌 듯한 달.

 

가둔 것 같아도

갇힐 달은 아니다.

착각일 뿐.

 

주님은 나에게 속한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을 위하여 내가 존재할 뿐..

살다보면

주님께서

우리에 속한 분으로 착각될 때가 있다.

 

그 분은 흥하고

난 날마다 쇠할 자가 맞다.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 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이 그립다.

 

그와 같은 올바른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이 욕심이 없는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이 주님이 모든 것이고 천국이 결국으로 살아가는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이 자신의 정체감이 뚜렷한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은 사람이 모본으로 존재하는 그 때가 그립다.

그와 같이 세속의 갈채에 흔들리지 않는 이가 그립다.

그와 같이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내던질 청빈한 자가 그립다.

그와 같이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그립다.

 

 

 요한이 열정적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며 따랐을 때

사람이라면

당연히도 흐뭇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 날이 하루 이틀이면

주님의 뜻대로 다 내려 놓을 수 있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욕심도 버릴 수 있고

내가 금과 옥조처럼 지니고 있던 가치관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주님이 원하시고 나에게 은혜만 온다면.........

 하지만 수년간 지속적으로

저런 칭송을 받고

제자들이 따라다니고

세상이 갈채를 보내며 높아질 위치에 있을 때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없다.

오히려 힘이 들땐 주님을 생각하기가 쉽다.

칭찬 받을 때가 위험하다.

 되풀이 되던 칭송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견딜 수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굳이 '유명 연예인'들의 속속 자살하는 심정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요한의 입장에서

요단 강 바로 건너편에서 예수라는다른 인물- 비록 그 분이 자신의 선포 속의 그 분이 맞다 하여도 -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빼앗아 간다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질투와 허전함에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분노로 바뀌어 갈 위험이 다분하다.

그게 보통 사람이다.

 이러한 논리적 바탕 하에

제자들이 요한을 쳐다보며 26절의 장면을 연상해 보았다.

제자가 요한의 얼굴을 쳐다보며

'랍비여  ~~ 사람이 ~ 다~~ 가나이다 !' 하는...

 날 거기에 대입해 보았다.

듣는 순간 , 심장이 덜컹하며 얼굴이 굳어지고 식은 땀이 등골을 흘러내리며

말을 더듬었을 지도 모른다. ^^;;

그러면서 머리 속에는 수 ~ 많은 상념들이 뒤 흔들었을 것이다.

 "나는 쇠하고.. 그는...'하기는 해야 해... 하지만 .. 내 이 시간 이후는...

 내 젊음은 ... ......................     ..........."

안다.

알긴 안다.

 내 귀중한 생명을 바치며 할 것 안하고 십일 조 내고

밤낮없이 교회와 기도원 가서 부르짖고

나름대로는 찬양으로 앞장 서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퍼주기도 했고

결단하는 이유로 불의한 돈은 거절하고..................... 하는 게 모두

우리 주님 때문이고

주님이 늘 살아계셔서 권면하시는 듯 하기에 했지만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뜬금없는 허전함의 실체는 무엇인가?

내 인생의 목표가 끝나 버린 듯

날 몰아가는 회오리 같은 공허감의 흡입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죽고 싶을 것만 같이 외롭다.

슬프다.

소리소리 내어 울고 싶다.

.....................

이렇지 않겠는가?

 그래 , 오랜 기간의 광야 생활로 연단을 받아

얼굴에, 신체에 표시는 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깊은 좌절은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요한은 달랐다.

요한의 얼굴이 이 무딘 영감의 소유자의 머리에 살포시 그려지는 것만 같다.

그의 눈빛은 짐작하기 힘들다.

깊은 호수와 같다.

웃는 듯도 하고 아무 내색이 없기도 하다.

후련한 듯 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만 같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고요하다.

늘 그랬듯이 편안하다.

아래로 깊이 깔리면서 공명하는 저음이 섞인 듯 듣기에 좋다.

그가 그런다.

' 그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늘 그랬듯 그가 오셔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가슴이 아프다.

자신이 쇠한다.

주님은 흥한다.

그래, 맞다.   안다.

나도 날마다 중얼 거리기 위하여 집중한다.

'주님 난 , 날 마다 죽길 원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난 약한 것들과... 기뻐한다.'

하지만, 내 심령은 전혀다.

아직도 변화가 없다.

위에 계속 상상했지만,

요한의 힘있는 고백을 힘있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멀다.

어제도

얼마전에도 '영생'을 묵상했지만

그의 당연성은 머리로만 알지 가슴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넌 할일 이 끝났다.   천국만 사모하고 기다려라.'라 하면

견딜 수가 있을까?

 

 어찌 가능할까?

어찌 그는 '스스로 쇠하여야 한다'는 소리를

그 오랜 시간의 영광 뒤에

갑자기 빼앗기는 듯 한 상황에서

자연스레이 할 수가 있을까?

 

 그는

정말로 주님의 살아계심을 절절히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 분이 자신의 성과물을 취하신다는 데 어찌 안 기쁘겠는가?

거기에 허전함이 어쩐 일이라는 말인가?

 

그는

천국과 부활체의 영생을 아는 자이기에 그럴 것이다.

아니, 아는 정도를 넘어서는 체험이 있어서 일 것이다.

당연히도 천사들이 하나님의 예언을 해 주시고 임신 된 자이니 얼마나 당연할 까?

 이게 중요하다.

천국의 삶

영생의 삶이 이제는  실체화 되어 나에게도 체험되어야 한다.

그게 이 땅의 썩어져 갈 것에 대하여

코 막고 하시라도 버릴 확신을 줄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누구들처럼 천국의 체험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 신비적 체험이 꼭 있어야 하는가?

머리로만, 잠시간의 은혜로만 아는 것을 넘어서는 어떠한 체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체험하기 위하여 내가 해야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을 결단하고

무엇을 간구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죽으면 죽으리라.. 선교의 서언을 할까?

...........

주여 .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청빈한 삶을 살던 자다.

그러기에 그에게 소유라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가 소유하지 않을 것은 세상의 칭찬과 가치도 포함되었다.

하시라도 놓을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는 확실히 아는 자다.

나도 그러길 원한다.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세상을 살 수 없는 자임을

올해 한해는 확실히 각인 시켜 살아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친구들의 다정한 위안

직장동료들과의 따사로운 점심한끼.

그들과의 감미로운 영적 대화...........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 없이도 주님 만을 볼 온전한 만족감이 나에게 필요하다.

 

 요한이 그립다.

그의 온전한 주님 앞에서의 서 있음이 부럽다.

 

 

 

적용

 

1. 요한의 얼굴을 묵상한다.

 

2. 천국 , 영생에 대한 실체적 감동을 원한다.

 기도하자.

 

3.  난, 주님의 전도를 위하여 이땅의 모든 것이 허락되었음을 매일 선포한다.

 

4. 요한의 청빈함을 닮자.

 한끼 금식은 한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더욱 넓히자.

 

5. 말씀 일곱장 읽겠다.

 말씀은 절대로 놓치지 말자.

 

 

 

기도

 

 주님

사도 요한을 묵상했습니다.

그 분의 그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묘한 분위기의 꼭 다문 입과 그의 굳건한 표정

현기어린 눈빛이 가슴에 옵니다.

그의 고백은 가슴을 찌릅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한다. '

가슴이 미어질 것도 같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 큰 자의 존재하심이 그립고

그런 분의 향기가 그립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바라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철저히 알고 있는 자의 모습을 닮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 정체는 하늘의 하나님이 심을 철저히 인식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와 갈채도 눈돌리지 않고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마음을 원합니다.

안됩니다.

안되기에 그리하길 원합니다.

요한이 그립습니다.

그런 분의 지혜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한이 그립습니다.

그의 과감한 결단이 그립습니다

요한이 그립습니다.

그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는

위엣것을 바라보는 눈이 그립습니다.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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