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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하소서(수5:1~12) 본문

구약 QT

주님 말씀하소서(수5:1~12)

주하인 2006. 11. 21. 11:39

2006-11-21 여호수아 (Joshua) 5:1~5:12

 

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dried up말려버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no longer had the courage to face the

   Israelites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을 쳐다볼 용기조차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몇가지 구절 들이 있다.

어제 다리 사이를 흐르는 물이 이불 개키듯이 차곡차곡 쌓여져 막혀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몇 단계는 강렬한 파워로 장관을 이루고 계신다.

물을 말려 버리셨다.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그냥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 꽂히더만

요단강물이 그냥 말라 붙어 버리기 시작하며

그 때 순간 하늘로 날라올라가는 수증기의 장관과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시야가 가리면 하나님의 위신이 떨어지므로 (^^*) 순식간에 증발되는 상상이 된다.

 아마도 영적에너지는 계시록에 나오는 커다란 천사가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든

이때 모든 마귀는 힘을 잃고 쩔쩔 맬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쩔쩔 매는 지 마음이 녹았다고 한다.

두려워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 정신을 잃었을 정도로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기서 기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벌이신 그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두려워 했다는 점이다.

'그래.

 난 혼자는 아무것도 안되어.

 늘 그랬다.

 하는 것마다 잘되는 것이 별로 없었어.

 한마디로 재수가 없는 자였지..

 그러나..

 이제 부터는 다른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뒤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 때문에 악한 세력들은 물러가고 부정적인 모든 생각들은 사라지고 내 인생은 더 이상

 재수없는 일에 연루되지 않게 될거다.

  아니 재수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다.

 어둠은 날 두려워 하고 달아날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들은 오금을 못 펼것이다. ..'

 

 그렇다면 마귀가 무서워서 덜덜 정도면 어떤 영적인 상태인가?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할례를 행하니라 
 행하라..

하면

행하는 상태.

 
6.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속에서 한번 뒤틀려 받지 않는 상태.

아담 이후로 깊숙히 들어 앉은 원죄의 이유로

자신의 죄악성에 맞추어 주님의 빛이 조금 변하여 나오는 굴절현상.

이것들이

40년 광야의 연단으로 깨끗이 멸절하여 버려

깨끗해진 상태.

 연단으로 인하여 장성한 믿음이 되어 있는 상태.

주님이 말씀하시면 곧바로 순종할 상태.

상황 상황 때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상태.

특별한 자아적 이유의 세상의 목표를 가지지 아니하고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려 나갈 상태의 인생관을 가지게 된 상태.

세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이 더이상의 내적 부담이 되지 않는 상태.

'성인'의 경지.

폭포수의 생명수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

악은 속에 들어와도 연기조차 낼 틈없이 말라태워지는 상태.

 

 그 상태가 되기 까지 주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이시다.

 

 

 엊저녁 아버지 학교 중보기도회에서 설교말씀 중

놋뱀과 불뱀에 대하여 하신 이야기 중 히스기야가 놋뱀 보다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놋뱀 자체를 보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우상화와 그에 대한 히스기야의 놋뱀을 깨드리는 느후스단 -놋뱀조가리-의 현실에 대한 통찰이다.

 오늘 그러나 그 반대의 예화가 나온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악한 세력들은 우리 뒤의 하나님을 보고 우리를 두려워 하게 되는 것.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은가?

 늘 단 일초라도 하나님이 내 등뒤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야의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날 위하여

내 속의 더러움을 제거 하기 위하여

고통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씻어 내리시는 과정.

 40년 동안 주님은 사랑하는 날 그냥 내버려 두듯이 곁에서 보시면서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신 후에야 이루어지는 연단과정이시니 그 고통이 받는 나에게 힘들어도

사랑받는 힘듦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힘이 든다.

그러나 행복하다.

내 속의 더러운 오물이 곧 떨어져 나갈 것을 기대한다.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기도

주여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이제 곧

악함은 힘을 잃고 주님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나갈 제가 그려집니다.

특별히

제 속에 역사하셔서

변케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가

dried up 이라는 표현에 어찌 잘 나타나는  지요.

오늘도 틀림없이 저의 앞으로의 승리에 대하여 말씀해주시는 걸로 알겠나이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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