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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들켰지만 난 좋다(왕하20:12-21)

주하인 2006. 11. 17. 11:44

 (열왕기하20:12-20:21)  
 

( 외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 ♬ )

 

12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있을 때.

위로와 선물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래도 주님의 뜻이 아닌지 먼저 살펴야 한다.

 

14 먼 지방 바벨론에서 

 비록 그것이 ’먼’ 곳에서

현실의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

아무런 상관없어도.

주님의 길이 아니라면 가지 말아야 한다.

 

 

17 이 이르리니

 주님의 날이 언제 이를 지 ..

항상 그 분을 생각하고 살다가도

매일 똑같이 되풀이 되는 삶의 궤적안에서

자꾸만 나태하고 게으러져 간다.

 아니라고 자꾸만 마음 속에서 부정하지만

내 삶의 동안에

그 분의 날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거야.. 하는 자책감도 들 때가 있다.

 

 

19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그러다가

나름대로 합리화하는 의식이 있다.

 ’ 그래.

 내 삶이 중요한거야.

 나만 편하면 되지.

 이런 정도의 신앙이면 적당치 않아?

 이 정도의 축복이면 그나마 주님의 이뻐하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야..

 참으로 감사하신 하나님.. .’

하며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려하는 마음이

내 안에 많다.

 

그러다가

 그 상황에 반하는

내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려고만 해도 가슴이 덜컹 거릴 때가 있다.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

 거기에 적당한 정도의 성취까지 있으면

그게 과연 잘 살다가 간 것일까?

 

 주님은 오늘 묵상을 통하여

훌륭한 히스기야의 모습에도

헛점이 많음을 보이심으로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신다.

 

 

 그것은 이렇다.

 

외로움과 어려움은 인생의 필연이다.

히스기야를 보라 .

그처럼 대단한 신앙과 실행력의 대단한 자도 아프고 외롭다.

고통 때문에 고통할 필요는 없다.

 

 어려움이 길어지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때 생길 유혹에 조심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늦추지 마라.

주님의 뜻이 우선이다.

그것이 고리타분하고 지나치지 않느냐는 송사에도 반드시 주님의 뜻에 맞추어 넘어갈 일이다.

절대로 모든 세상의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그 분의 뜻에 맞추어 바라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날은 반드시 온다.

시간은 그 분이 정하신다.

그 때

징책은 내 몫이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

죽어 그 분 앞 갈 때까지 큐티는 놓지 마라.

이 안에 내 고쳐야할 모든 부분이 있고

내 장래에 대한 보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지나온 과정이 그걸 증명한다.

 

 사랑이 부족한 부분이다.

심지어는 자식의 고통까지 한다리 건너 불구경 같이 느껴지는 것이

비단 히스기야의 심정일까?

난 후유하지 않을까?

참으로 미안하고 들킨 심정이지만

부모의 안타까움도 있지만

히스기야의 후유도 내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이웃에 돌릴 때 난 더 그렇다.

나쁜 자이다.

아직은 주님 바라시는 그 범위까지 가기에는 요원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힘으로 안됨을 난 묵상 때마다 절감한다.

예전 보다는 많이 사랑이 늘었음을 내 속에서 체험하고

내 눈에서 흐르는 이웃을 향한 눈물이 아주 조금씩 늘어남을 보면서

주님의 응답과 그 분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면서

그러나 희망을 더 키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을 보면서 감사드리는 것은

히스기야의 그 화려한 삶의 궤적

신앙의 드라마틱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과거에는 내 속에 열망과 더불어 그에 반하는 좌절 내지 포기의 감정이 많았음에도

이제는 아니다.

 누구나 주님 앞에서는 부족함을 알게되었다.

비록 그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어마어마한 이룸을 이루었어도

오늘 보이는 내 것의 오류가 그에게도 똑같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그게 반드시 주님 보시기에 상급이 많지 않을 수 도 있음을 안 이후론

좌절보다는

실은 예수님 믿고

예수님 앞에서 나에게도 똑같은 기회와

부족하지만 비슷할 수 있는 상급의 원리를 깨달음으로써

그 분안에서

모든 것의 자유의 가능성까지 펼쳐짐을 알고는

생각의 모든 부분에서 자유로와 지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생각조차도 삶이 지나가고

주님 안에서 묵상의 시간과

그 분이 허락하시는 표준적인 믿음의 예를 눈 앞에서 보며

큐티를 꾸준히 한 결과로 나온 것이지만...

성령이 모든 걸 다하시는 것이다.

 

 

기도

주님

오늘은 부족한 히스기야 인간을 보면서

내 속이 들킨  듯

처음에는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나를 걱정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를 통한 내 변함의 지표를 알게 하셨다는 점에서

그리고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변함을 얻게 하셨는지

살아계신 주님을 다시금

흠향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을 알게된 이 기쁨

주님 덕분에 하나씩 깨달아가고

주님 때문으로 내 속의 결점들이 하나하나 메꾸어져 가는 이 신남

주님으로 인하여 기대되는 삶의 결과로 인하여

삶이 힘이 있어져 갑니다 .

 

 비록 오늘 제 속이 들켰고

그 까맘에 놀랬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들킴이라 감사합니다.

비록 까만 탄광 갱도 속 같은 내 마음이지만

그 속에 드는 대낮의 강렬한 빛으로 인하여

속이 다 들여다 보여 통쾌합니다.

 

감사하신 예수님께 찬송드립니다.

아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불가능하다.

- 토마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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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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