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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만 하시면(민 3:14-39)

주하인 2011. 3. 4. 09:19

제 3 장 ( Chapter 3, Numbers )  

 

겨울이라고

모든 생명이 소멸될까

 

대 낮이라고

달이 없을 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요

 

고난이 심하다고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광야가 아무리 메마르고

인생의 과정이 너무 힘들어도

 

주님은 살아 계시고

말씀으로 날 만나 주시니

 

영혼을 펼치고

귀를 열고 눈만 들면

 

아직 메마른듯 하고

아직 그 힘듦 그치지 않았어도

 

어느새 내 영혼에는

평강으로 그득하게 된 것을

 

14.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광야에서.

거친 들,

거친 삶,

가나안 땅 , 주님이 계신 그 곳으로 가는

힘든 인생길

그 사십 몇년으로 표현되는

길고 긴 삭막한 삶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되고

방향이 되며

생명의 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모세에게 광야에서 '일러 가라사대'하시기에

그들은 견딜 수 있고 살수 있었다.

 

 나.

내 인생.

그리 재미가 없다.

골프도 처음 얼마 하다가 재미가 없어 관뒀다.

당구도 오래 치다 관뒀다.

음주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담배도 이십년 피가 끊겼다.

여인에게 눈돌리는 재미도 이제는 별로 없는 나이다. ^^;

자식들, 그 아이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찾기에는 부족하고

벌써 나의 그러한 관심을 멀리 만드신 지 오래시다.

감사하시게도 주님께서.. ^^;;

세상에 대한 성공 욕구..

자라면서 난.. 그리 그 쪽에 열심을 보이는 성품이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그냥.. 그냥.. 그렇게 그렇게 ..

비전 없이 (지금도 큰 비전은 없다.) 살아 간다.

비전 없는

즉 그리 원함이 뚜렷하지 않지만

내적으로는 무언가 활활 타고 있는 자의 가슴은

그 삶이 지옥이나 진배가 없음을

난 그래서 잘 알고 있다.

 오래전 부터 내 바램은 적당히 살다가 일찍 죽어지는 거 였었다.

주님을 영접하고 부터는 약 70세 까지 만.. 으로가 바램으로 변했지만

그전에는 그냥 40세 전후 까지만 살다가 갔으면.. 하였던

아주 아주 힘든 삶였다.

 

 광야.
 건조하고 메말라서 바람 만 불면 모래가 휘날리고

해는 아주 아주 쨍쨍떠서 살이 타 들어 갈듯하고

입은 침이 말라서 하얗게 눌어 붙으며

시선을 들어 쳐다보면 온통 눈이 부셔서

눈을 크게 뜰수도 없는

한마디로 '메말라서' 견디기 힘든...

어쩌면 내 심적 상태와 똑같은 상태가

광야가 아닌가 싶다.

 나.

광야의 삶이라면 그래서 '내 인생'과 어찌 그리 닮았누..하고 쉽게 이해가 간다.

그 광야에서 모세 일행이 사십년 넘게 버틴다.

버티면서도 힘이 남아 있음은

오직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이다.

 나.

예수님 믿고 그 분이 허락하신 그 샬롬은

내 영혼에 부어지는 생수 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갈증이 해소되고

타는 내 심사에 성령의 물이 부어지면

마치 뜨거운 해에 달구어진 본네트에 물을 부으면

치익하고 잠시 식어지듯

내 갈증이 해소되는..

그래서 그 기대로 70세까지의 삶도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말씀이 내 영혼에 들어오게 되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내 영혼의 흐름을 조정하면서

갈등은 조금씩 잠재워지고

그 잠재워지는 고요의 평화 속에서

'나 나름의 예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이 찍히고

찬양을 올리고

글을 쓰고

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뵈는 사람들 마다

주님을 전하려 틈만 찾고.......

 

' 광야에서 주님을 만남'은

광야가 꼭 메마른 곳 만이 아니고

메마른 곳에서도 주님을 만나면 촉촉해지는

인간의 이성으로 경험할 수 없는

기적의 일들이

주님으로 인해서 일어나게 됨을 체험함이다.

 

 

 
15.  레위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가족을 따라 계수하되 일개월 이상의 남자를 다 계수하라
 문제는 있다.

그 만남... 만 가지고

그 감성의 달콤함과

기적의 놀라움만 누리고 있으면

어느새인가 영혼은 비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계수하라'

그 명령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16.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그 명하신 대로 계수하니라 
  그리고 그 말씀을 좇아 명하신 대로 계수하는

순종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때가 되면 그게 필요하다.

 

 

 인생.

참 쉽지 않다.

어느 삶이고 꼭 편한 것 만 있을까?

주님 믿는다고 반드시 물질적 사회적 축복만 있을까?

그렇다고 믿는 자에게 반드시 '고난' 만 있을까?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고난을 인내만 하면 세상의 축복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일차원 적 믿음 만이 

하나님의 원리일까?

 아니다.

주님은 메마르고 고난 중에

당신을 사모하고 말씀을 준행하려는 결심하나 만 가지고

상황과는 상관없는

놀라운 영적 물질적인 통합의 축복을 허락하신다.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 보아

그 상태가 메마른 광야이라도

그의 영혼에는 생수가 흐르고

힘이 들어도 감사하는 삶이 될수가 있고

그들의 판단과는 다르게 '축복'의 행운을 누리며 산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

당직을 마친 아침.

게으름, 게으름... 늦게 일어났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출근하고 진료실에 앉아 묵상기도를 했다.

분명코 메마른 삶에서 메마른 죄를 지었음에도

내 예상과는 다르게도

촉촉한 감성이 날 사로 잡으며

그런 나의 축복과 행운에 대하여 다시금 감사를 드릴 마음이 소록소록 올라온다.

세상에 감사한 것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이 '구원 받은 것' 임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왜 이 죄인에게 이러한 감사의 행복을 진심으로 느끼도록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말씀을 들으려는 내 마음'을 기뻐하시는

주님의 사랑 탓이실 듯 싶다.

그래서 난 참으로 자유롭다.

 

 들여다 본 묵상 구절에 ' 모세의 광야에서의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의지를 통하여

더욱 증폭되는 광야 삶의 에너지를 보충받음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

나.

뚜렷한 비전 없지만

내 삶을 움직이는 깊은 원동력은

성령의 운행하심이다.

날 살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들고

그나마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만들어 가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영혼 속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성령 탓이시다.

성령 하나님 탓이시다.

 

그게 그게 감사하다.

 

 

적용

1.  내 인생.

 자주 자주 아직도 날 습격하는 메마른 감성들이 있다.

 사는게 재미가 없다.. 는..

 그래도 나에게는 '말씀'이 있다.

 그러기에 난 점차로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살 준비를 해야 한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 도 ..

 내 아내와 내 가족들 모두를 위해서도..

 영적 육적 내 모든 가족...

 

2.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묵상은 그 하나님을 만남이다.

 매일 묵상을 죽도록 놓치지 말자.

 

3. 성경 세장 읽자.

 

4.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려 노력하자.

 기뻐하며 살자.

 

5.  금요 성령 찬양예배가 있는 날이다.

  내 감사함을 찬양에 담아 올리리라.

 

 

 

기도

주님.

저..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왔습니다.

별 비전없고 낙이 없는 그런 삶.

주님을 만나고 삶에 힘이 생겼습니다.

언젠가는 비전 마져 크게 허락하시어

내 삶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태우도록 만드실 것임도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메마른 광야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 만이 내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전 잘 알고 있습니다.

점차로 그 에너지가 날 충만히 채워가고 있음도 느낍니다.

어찌, 점차로 소진되어야 할 에너지가

점차로 채워지는 이 비가역적인 현상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오직 내 하나님.

나의 하나님과 저 만이 알수 있는 이 귀한 현상들을

주님이 말씀을 통하여 또 이렇게 이렇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주여.

그게 감사합니다 .

저로 하여금 신화적 믿음이나 신비주의적 믿음이나

심리적 장난에 휘말리지 않는

말씀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하나 밝혀져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느끼게 하심으로

확증시켜 가시는

나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셔서 말입니다.

 

오늘 또 하루 허락된

이 광야의 삶 속에서도

또 한번 주님 만을 바라보고

주님 허락하신 말씀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바라옵기는 말씀에 의거하여

더욱 뚜렷한 소리를 듣길 원합니다.

삶속에서 강력한 레마로 체험되길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찬양이 있습니다.

제 영혼을 전율시키시어

저로 인하여 단 한명이라도 더

주님의 사랑을 가까이 체험하게 하는 도구 되게 하소서.

제 아내 지키시어서 감사합니다.

빠른 회복도 감사합니다.

더욱 더 빨리 회복하게 시키시옵소서.

제 아들 둘.

꼭.......기억하소서.

제 믿음의 과정들을 단축시키어

세상에 드문 영육혼 간의 통합적인 건강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삶속에서 깊이 깊이 주님 만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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