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를 내려 놓음(민 4:34-49 ) 본문
제 4 장 ( Chapter 4, Numbers )
주님
구원하심으로
나 어디서나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주님
영접함으로
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주님
성령으로 날 도우시면
나 언제나
만개한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35.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
레위인에게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에서와는 달리
이십세가 아니고 '삼십세 부터 오십세까지' 다.
'성숙한 기독교인'은 이전이나 불신자와는 달라야 한다.
49. 그들이 그 할 일과 멜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함을 입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함을 입었더라
계수함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돌아봄이다.
계수함을 입었다..는 것은
관리하고 돌아봄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라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자율성을 넘어서는 의무적 개념이다.
어릴 때는 방치하였던 것이
나이가 들어 꼭 지켜야 할 때가 오는 것들이 있다.
그 훈련을 통하여 사회의 법규가 유지가 된다.
아이에게 그 훈련을 강요함은 잔인한 율법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들어 하는 그런 것은 '교육'이 된다.
'율법과 믿음' 사이에서
레위인에게는 일반 이스라엘 인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계수를 원하신다.
나.
레위인.
맞다.
믿음의 시간으로 보아 조금 컸다.
시간적으로 봐서 그렇다.
나이.
50세 넘었다.
오늘 말씀하시는 나이가 반드시 50세는 50세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
성숙한 나이의 상한선에 들어 있음은 맞다.
더욱 성숙하지 못한 행위는 그만 하여야 할 '급한 나이' 임을 의미한다.
급한 나이의 나를 계수해 보면
내 속에는 아직도 성숙되지 못한 것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내 원하는 것.
정말 내 원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마음대로 사는 것?
정말 죄악덩어리.. 누구보다 육체적 갈등이 큰 나는 원함대로 하면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을 것이 일러 무엇할까?
그럼에도 세상은 자꾸만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한다.
그러기에 갈등이 크다.
갈등을 마구 누르다 보면 내가 원함이 무엇인지 잊고 살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내가 되고 싶은 것인지 마져 막연하게 살아 왔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보는 것이
나에겐 곤혹스러운 일이었었다.
그러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난 깨달아 갔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기쁜 일이고
그래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을.
그러나, 어디 죄악덩어리 불신의 삶- 오직 '나' , 내것, 내 마음, 내 기분... 만이 중심이 되어 왔던 -을 살아 왔던 내가 어찌 '남'을 배려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원하여야 할 ' 삶이 익숙하던가?
아니다.
하지만 '성장'이란 것은
'내가 원하여야 할 것' 즉,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겪어 내기에 걸리는 그 '어떤 것'을 털어내야 한다.
털어내기 위해서는
'계수'가 필요하다.
그 계수를 입어야 한다.
오늘 ' 30-50세' 까지의 레위인을 계수하시며
'계수를 입었더라'고 표현하신다.
나.
나에게 조금은 더 계수를 스스로 해야 하고
그 계수는 하나님이 미시는 강권에 의함을 느끼게 하신다.
어떤 것인가?
어떤 원하여할 것이 있던가?
그리고 어떠한 것이 그것을 막아서는가?
오늘 ..
모임.
일정치 않은 시간.
나에게는 ..목표가 뚜렷지 않은... 모임.
괜히 한걸음 퇴보하는 듯한..
그러나 거기에도 내 부족한 면을 연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냥 나갔지만
아내의 수술 이후로 딱 걸려 버렸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한 그들의 태도.
수술이 잘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여부 조차
마치 짠듯이 물어 보지 않는다.
그래.. 그것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려 했지만
그 모임에 모이시는 분들이 대부분 많이 배우신 분들이고
털어놓고 나눔을 계속하시던 분들이라서
더욱 실망감이 크다.
수술이 늘면서 피곤이 늘어남을 핑계로 두번을 빠졌다.
돌아본다.
내 원함은 '참가하지 않음'이다.
시간을 잡아먹는 듯한 모임에 가서
괜히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며칠의 말씀은 '그냥 인내하길 바라시는' 듯하시다.
모임을 주도하시는 목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아 왔던 터,
그 분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멈추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하면
내 원함이 ' 참가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은 된다.
그러나, 내 기준의 '내 원함'은 참가하지 않는 것이다.
둘 사이의 갈등이 크다.
오늘 '월요일' .
오늘도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러함에도 아직 마음이 흔들린다.
그 것을 아시는 지
주님은 '급한 나이의 나'로서 다시한번 마음을 계수해 보라 하신다.
그게 메시지시다.
정말 내가 성장한 자로서 계속 하기 위해서는
'내 자아는 싫지만'
주님은 원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자아를 내려 놓아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자아 부인'
내 것을 내려 놓음.
그렇다.
'나를 내려 놓아야 '
주님이 원하심이 내 원함이 된다.
그게 올바른 방향이다.
그게 늦은 나이의 성숙한 레위인이 할 바다.
참여 하리라.
힘이 들더라도..
짜증남. 부끄러움...자아 부인의 증상을 감수할 각오하며...
그 후는 주님이 성령으로 인도하시리라.
은혜를 기대하자.
적용
1. CPE 참가한다.
그것이 자아 부인이다.
그것이 성숙한 레위인이다.
2. 나를 내려 놓자.
부끄러움, 혼란을 즐기자.
아무렇지 않기를 기대하자.
3.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성숙한 레위인이다.
아니다.
조금은 늦은 나이의 성숙한 레위인이다.
그래서 급하다.
4. 성경 세장 읽으리라.
5. 모임을 위해서 기도하자.
6. 나를 위해서 기도하자.
자아 부인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증상으로 나타날 것도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아무렇지 않음이 주님 위해서 임을 기쁘게 명심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과정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도
귀하신 주님.
솔직히 주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원하심을 내 원함으로 바꾸는 과정이고
그 일이 내 영성의 훈련 과정임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 자꾸 부인하고 피하려 했습니다.
나름대로 수동적 보복을 하려는
악한 마음이 숨어 있었던것도 같습니다.
그러기에 제 엉터리 같은 심사에서
자꾸 죄악성이 튀어나오려 함을 느낍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그리고 주님의 주권으로 절 계수하게 하시어
주님의 성령으로 절 이끄소서.
아무렇지 않게 하시고
흔들림을 기뻐하게 하소서.
낮아짐을 기뻐 받게 하시고
약함을 기뻐하게 하시고
그들의 불의와 잘못을 관용하게 됨을 스스로 기뻐하게 하소서.
잘못을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김 받았음을 확신함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삶이
이전의 끈으로 부터 벗어났음을 하나하나 체험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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