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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으로( 삼상19:8-2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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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으로( 삼상19:8-24 )

주하인 2008. 6. 12. 11:20

제 19 장 ( Chapter 19, 1 Samuel )

 아침 버스정류장 풍경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이리 열심히들 살까?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14.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17.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사울에게

악신이 임하기도

하나님의 신,

성령이 임하기도 하신다.

 한 사람에

악신이 임하기도

성령이 임하기도 한다.

 나타나는 증상은 서로 다르다.

악신이 임하면

정말 악해진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언도 하고

살의를 품고 갔던 사울이

그 사실을 잊을 정도로

유순해진다.

하지만 

' 사울 (따위도 ^^;;;) 예언을 하냥? '하는

사람들의 비아냥처럼

어딘가 좀 이상하다.

 

 미갈은

자의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

'거짓'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도 한다.

 

 다윗처럼

악신에 의해

미쳐 버리는 사울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서

당하는 어이없는 고난에 대하여

당연하다는 듯이

연단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성령의 충만한 체험을 하고도

약간의 고난 앞에서도

잊어 버리고

자주 실의에 빠지고야 마는

주모 같은 자들도 있다.

 미갈은

다윗 같이 훌륭한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영적인 놀라운 스케일과

그의 뒤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느낌을

불같이 느끼는

영적인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철저히

마치

사극 '여인천하'.. 등에 나오는

욕망과 철저한 현실 주의 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 실제로는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 남편을 위해

하등의 양심 내지

영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거짓말을 떡먹듯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든다.

 

 우선

악신 조차 다스리시는

당연하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 분의 능력 안에

보호받고

점찍혀서 '성령'안에서 산다는 사실이

으쓱하다.

 

 또 하나

악신을 부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애꿎은

사랑받는 다윗의

불같은 연단,

고생길이

지긋지긋하게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 상황에 들어간다면

'아니..

그리 사랑하신다면서

사울을 좀 말리시지

일부러 부리시는 악신을 통하여

다윗을 '

나를.. 고생시키시는 게

웬일인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다윗의 끝을 안다.

너무도

통속적인 듯하지만

고난을 통하여

그 분은

자신의 사랑하는 다윗을

불 가마 속의 철 같이 다지고 두드리고

단단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것도

사울의 범죄를 통하여

엮어가시는 것이시다.

 그러기에

주님 안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 안에서

주님을 놓치지 만 않는다면

모두가 감사할 조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다.

 

 

 또,

사울의

악신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사실이다.

 설령

성령이 임하셔도

그 분이

역사하시기 위해서

받는 사람의

영적 성장과

순간 순간

사울이 교만하고 편하기 위한 마음을 선택하듯,

미갈이 '거짓을 선택하듯'

의지로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다양하게 역사하신다는 점이다.

  즉,

세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하나님 의지로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시질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게

인간과 하나님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져 간다.

 성경을 통하여

수도 없이 나오지만

일상에 살며

잘 못되거나 힘들어지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원망으로 투사하려는

심사가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오늘 묵상을 보며

그러한

사울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 익어진 결과

성령이 역사하심에도

하나님 나라의

그 놀라운 평강과 기쁨의 비밀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옷을 벗고

중얼 중얼 대며

헛소리로 예언하는 등,

마치 미친 사람의 그것 같은

혼란한 모습을 보임을 보아

그렇다.

 

주님은

철저히 일대일 이시다.

그 분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고

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를

존중하시면서

그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과정 하나 하나를

안타까워도 하시고

때로는

아주 재밌어도 하시면서

쳐다보고 계시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에

매사

일거수 일투족을

주님의 눈을 의식하고

주님께 드릴 기쁨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늘

주님께 의논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한도에서

살아야 한다.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하지만

주님은

어려움과  선택 만을 강요하지는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선택에

힘을 실어 주시고

놀라운 위로로 함께 하시고

기쁨의 폭을 넓혀주시며

진실한 행복이 어떤 것인 가를 알게 해 주시며

주 안에서 거하는

평강의 진실이 어떤 것인가

과연

행복이란 것의 실체가

어떤 형태인가를

뚜렷이 보게 해 주신다.

 

 그리고도

마치

다윗이 연단을

너무도 세게 받아

힘이 들어 죽을 것만 같을 때

라마 나욧 같은

도피처로를 허락하시기도 하신다.

사무엘 같은

위로자도 주신다.

그리하여

사울의

검은 발톱으로 부터

상처가 날 상황을 막아 주시고

그들

대적에게

마치

미가서 7:8 에서'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 나온 것 같은 고백이 나오게 하시기도 한다.

 

 

 주님은

놀라운 분이시다.

도저히

우리의 상상으로 엮을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엮어 가신다.

 그 분의 뜻과

그 분의 역사는

감히 어찌 짐작할 수가 없다.

 

 하나,

확실 한 것은

그 분은 진리이시고

그 분은 선이시고

그 분은 우릴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그 분은 기쁨의 원천이시며

그 분은 행복의 근원이시고

그 분은 절대로

우릴

혼자두시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단,

그러한 고백이 지속되기 위하여

주님을 인식하지 않고는

마치 사울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실족해 버릴 위험성이 있는

곡예의 삶이

이 세상의 삶이라는 점이고

그러기에

늘 눈을 뜨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하며

그러기 위해

날마다

말씀에 점착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사실이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오늘 당직을 위하여 기도한다.

 

3. 늘 올바른 선택을 하겠다.

 그 선택이

내 자아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준하는 선택이 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4. 거짓을 피한다.

 체면, 합리보다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정직은 오랜 후 귀한 보상으로 온다.

주님의 칭찬 !

 

5.  어떤 일이든 기뻐하고 감사하려 노력하겠다.

 

6. 언어의 문제가 있다.

 급하다.

 회개합니다.

 온유한 마음 허락하소서.

주여.

 

 

 

기도

주님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주님을 잊지 않는 선택을 도우소서.

주님

이 놀라운 평화를 위해

주님을 잊지 않도록 도우소서.

주님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주님 말씀대로 살 의지와 기쁨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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