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의 탓에( 롬 3:21- 31) 본문

신약 QT

주님의 탓에( 롬 3:21- 31)

주하인 2010. 7. 6. 12:37

제 3 장 ( Chapter 3, Romans )

 

그래

사단아

날 가로막아 보아라

 

이제는

난 안다

비록

나 아직

가로막혀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이제 내 앞에는

놀라운 주님의 해가

날 비추고 있단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의 주님이 주시는 영광은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랍고

날라갈 만큼 가볍고

눈물날 만큼 가슴저민

평강의 그것인 것을..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렇다.

믿음으로 다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삶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내 일생을 내내 인도하실 믿는 믿음 만 있으면

우리는 '의'로와진다.

 

 의롭다.

정의롭다.

그래.

그래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의에 대하여 나오는데 '천국을 들어갈 정도로 착한 사람'이란 의미 외에

어떤 의의가 있는가?

과연 세상을 살아가며 먹고사는 것 걱정하느라 바쁜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나,

조금 더 노력하면 부귀와 영달이 바로 저기 있을 듯

세상일에 조금만 더 투자해야 할... 알지만 바쁜 사람들에게 ,

등 따시고 배불러서 더 이상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자들에게

과연 '의롭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혹시 삶의 의미를 찾고자할 여유가 생긴 사람들에게나 생긴

'자아성취'의 도구 이외에

과연 이 의롭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던가?

 

 그러나, 별로 세상에 살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나에게는

최소한 의롭지 못한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그 무의미에 추악함을 더하는 듯해서

그나마 살기 더 싫어지는 듯하여

의롭다는 생각은 비온 후 의 눅눅함을 벗어던지는

세탁한 마른 옷을 입는 듯한 어떤 개운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 의로움.

그 정의로움에 대한 추구는 내 삶을 겨우겨우 견디게 하는

어떤 모티브 같은 역할을 하게했지만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

그 의를 추구함은 또다른 나의 자아의 거친 면을 가중시키고

의롭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의 그 유치함을 느끼게 해

늘 의로움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개념처럼 느껴졌고

그 의로움에 대한 추구를 위하여

무엇인가 늘 해야할 것 만 같은 강박관념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비단 나뿐일까?

일에 열심인 '워크 홀릭'이나

어디 취미 하나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매니아'나

담배나 술, 사랑, 쎅스, 종교 등에 탐닉해 들어가는 '중독'들 모두

어쩌면 그 의롭지 못하다는 자아 의식에 반발하여

더 추구하거나 오히려 반대로 나가 버리는 그러한 현상들은 '혹시' 아닐까?

  의롭지 못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죄'의식.

죄에 대한 의식이던 '죄책감'이던

그것은 사람을 말려 들어가는 '죽음의 생각'들이다.

성경에 분명히 나온다.

율법.

이 율법이 들어옴으로 죄가 더 들어왔다.

율법으로 구원시킬 수 있는 자 없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게 사도 바울의 고백이셨다.

 이 분도 한때는 이런 고백을 하셨다.

사도 이시면서도.....................

 

이 죄에 대한 것.

누구는 이해를 하지 아니하려

누구는 지적으로 문제가 있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누구는 너무 과도한 초자아의 발달로 과도히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가 '죄'에 대하여 느끼던 느끼지 않던

죄에 대한 이 '의롭다'는 의식은

그 누구도 가지고 싶어하는 바램이다.

단지 그것을 추구하는 가 , 반대로 '죄'에 아예 몰두하여 잊어 버리는가 하는

두가지 중의 한가지로 나올 뿐이지..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나.

고백했지만 늘 죄의식, 죄책감이 컸던 자로서

내 삶은 불헹이었고 유일한 바램은 얼른 나이들어 죽어버리어

내 고통의 삶을 영원 속에 망각 시켜 버리는 게 바램이었었다.

 

 그러다가, 아주아주 놀라운 체험을 하며

난 의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로움이 약속하는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1997.12.28 주일.

그날을 기억한다.

그 첫사랑의 놀라운 감격을 기억한다.

그 놀라운 날아갈 듯한 의로운 평강의 기쁨.

그 개운함.

그것을 지속함의 하나님의 영광을 늘 입고 사는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심령천국'

이땅을 살되 천국을 사는 자의 모습.

늘 의로운 자의 모습임을

난 확연히~ 정말 확연히 깨달았다.

그 후로 난 그 의로운 상태에 대한 그리움을 놓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난 내 더러웠던 생각들을 떨구기위한 여러 노력이

나도 모르게 진행이 되어왔다.

수도적인 방향의 신앙은 그 초보의 신앙인인 나에게

한동안 놀라운 틀을 제시했으나

율법으로의 위험성은 죄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하고

죄책감의 무게는 더 커갈 뿐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그 예수님의 평안과 기쁨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

그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의 원리,

그로 인한 값없이 얻어진 나의 의로운 자격......

그리고 내 영혼과 내 삶의 앞에 펼쳐질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확실히 깨달아 졌으나

그것은 깨달음 뿐,

현실과 과거의 습관과 기억과 상처의 붙잡음과

도달치 않은 이 땅의 미래에 대한 삶의 걱정과 비교와 생각들의 밀어닥침은

나의 깨달음과 의로운 자로서의 자격에

늘 도전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이 '값없이 얻은 은혜로운 의로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련한 인간 주하인은

그 해결을 어떻게든 자신을 쳐서 주님의 그 청빈함과 극단의 인내를 닮아 가는 것으로

다시한번 그 첫사랑의 느꼈던 의로움을 회복하고 놓치지 않으려 애썼으나

그게 가능키나 한 이야기인가?

 

기도하고 고뇌하고 금식 - 첫 해 부터 3일 금식도 했다 ^^* , 새벽기도도 열심히 나갔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했지만 그 자유로움, 그 영광의 평화로움은 그리 가까워지지 않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주님의 십자가가 나로 인하여 더렵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죄스러움이 날 곤혹스럽게 했다.

'아니 , 한꺼번에 가져가신 그 죄가 왜 이리도 날 사로잡는가?'

'오호라 이 곤고한 자여............'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물론, 그 후에 '말씀 묵상'을 매일 매일 시도함으로 얻어지는

영적인 깨달음과 감성의 개발, 일상의 삶의 변화에 대하여는

늘 고백하였던 바와 같다.

 나.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하며

그 말씀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고

살아계신 말씀대로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오게 됨을 다시금 확신하고 영혼에 각인시킬 수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이 '믿음'으로 인하여 내 삶속에 , 내 영혼 속에 들어오며

그 믿음은 믿음 마져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까이 함에 따라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죄.

먹고 사는 문제에 무슨 영향이 있으랴 싶은 어리석은 자들과

잘 먹고사는데 죄 쯤이야 하는 배부른 무리들과

죄를 없애기 위해 다른 방향의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들에게

 난..이리 얘기하고 싶다.

' 진리는 바로 가까운 곳에 있고

 그 진리는 우주의 궁극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허락하신 십자가 예수님을

가만히 기쁨 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분이 내 삶과 영혼에 역사하실 그 위대한 작업을

 기대 가운데서 기다리라.

 그러면, 모든 두려움과 근심과 막힘과 어두움과 근심은 사라지고

 두근거리는 희망의 평강이

 내 영혼을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며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삶속에도

 절망대신 희망이

 고통대신 그 고난이 소망으로 바뀜을 느끼게 될 것이고

 어깨를 누르던 무게는 어느샌가 사라지는 가벼움을 알게 될 것이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아침에 일어나 큐티 책을 들고 버스를 탔다.

그리 은혜로울 구절이 아님에도

한구절 한구절이 내 가슴을 흔드는게 느껴졌다.

참으로 오랫만에 느끼는 감동이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이 그리 정결하지 못한데도 그런 것이다.

믿음'이란 단어에 흔들거린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 마구 울렁거리듯 내 속이 반응한다.

' 의'

' 영광'

그렇다.

난 이런 증상을 '감동'이라고 부른다.

그 영혼의 흔들림에 내 마음을 집중할 때

내 가슴은 따스한 사랑으로 지평이 넓어지고

가끔은 이상하게 콧날이 시큰 거리기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오늘 같이

내 의로울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은 ,

자식들이나 아내가 나에게 보람을 느낄 어떤 굉장한 보답을 주지도 않은,

칭찬 받을 일을 함으로 감격에 벅차 있을 상황이 아닌

정말로 뜨악한 시간에 그런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는다.

 

 그렇다.

게을러지고 있었다.

말씀 앞에 ..

매일같이 늦어지다가

그 늦어짐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마져도 사라지다가

이제는 버스 안에서 묵상하는 일조차도 희귀한 일로 변해가는,

나름대로 열심히 약속을 했던 일 조차 게을러지는데도

하나님은 그 죄된 상황에서도 날 '의'로운 자로 느끼도록

저런 감동을 주신다.

너무 감사한 내 주님이시다.

그 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탓' - 이 표현이 국어 어법에 맞는지 모르지만 난 자주 쓰고 있다 .  탓...  - 에

난 이리 의로운 감성을 또한번 체험하고 있다.

 주님은 나의 부족함을 통해

어쩌면 또 한번 '믿음'이란

꼭 내 노력에 일치하지 않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탓이심을 체험시키기 위해 허락하신

내 게으름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슬그머니 웃음짓는다.

 

야호~~

 

 

적용

1.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자

 감사는 감정이 먼저올 수 없다.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기뻐하자.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자.

 

2. 난 의로운 자다.

 달려드는 죄책감을 밀어놓자.

 죄는 주님 앞에 고함으로 풀렸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믿자.

주님 앞에 있음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가능하다.

 십자가를 인식하는 삶이 되면 그게 그것이다.

 그 외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자유는 주시는 것이다.

 난 즐길 뿐이다.

 

3.믿음.

 난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다.

 그럴 가치가 있음을 믿자.

 

4. 회개하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는 집중한다.

 그리고는 허락하신 떠오름 가운데 해결 받자.

 

5. 성경 세 장읽겠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계시다.

매일 읽자.

 

6. 전도하자.

 때를 얻든 얻지 못하든

 내 가진 달란트 전부를 동원하여  전도하는 삶이 내 인생의 목적이다.

 내 삶의 유일한 재미가 그것이다.

 블로그도, 찬양도, 사진도.......직업도 ..... 훌륭한 아버지 되려는 이유도.....

 세상의 모든 자, 내 자식들을 포함하여 모든 자들에게 올바른 하나님의 영광을 전함으로

 이땅에 조금이라도 의로운 자 많아지도록 만드는게 내 삶의 이유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은 유난히도 감동이 절 몰아칩니다.

제 글.

준비되지 않은 글에 이리도 몰아치게 만드십니다.

머리속에 마구마구 떠오르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두근 거립니다.

주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평강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와

의로움에 대하여

기쁘게 깨닫도록 하십니다.

제 삶이 점점 더 심령천국으로 변할 것임을 예언처럼 느끼게 하시니

그 또한 사랑스럽습니다.

주님.

고백합니다.

주님 안에 있는것이 기쁨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너무나도 감격입니다.

주님 살아계심의 저의 힘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살아계신 주님 앞에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흔드는 사단의 장난에 흔들리지 않을 평강과 지혜를 주시길

다시한번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주 안에 있는 나에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