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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을..(왕하8:7-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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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뜻을..(왕하8:7-15)

주하인 2006. 10. 16. 08:49

(열왕기하8:7-8:15)  
 

8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평상 시 주님을 멀리하고 주님과 심지어는 원수된 일까지 행하던 아람왕.

그가 병이 나서 못견디자

염치없게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찾아가려 한다.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못하는

아니 선택적으로 나의 심정에 들어맞는 일만 받아들이며

마치 잘 신앙생활 하는 듯 착각하는 나는

과연 하람 왕과 다른가?

 

 순종과 충성과 변화된 인격으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민처럼 행하지 않고

세상의 긁어모은 물질과 허탄한 결과물을 들고

마치

타협하듯이

주님을 찾아가 보는 모습.

 

 

 

10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그래도 주님은 응답하신다.

나으리라고...

그러나..

신실치 못한 결과는 정상은 아니다.

 

 

 

11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 김익배 선교사님...눈이.. 다약인을 향한사랑으로 이글 거리고 계셨습니다.

25년간 정글 속에서, 그들이 맘 상할까봐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몰래 숲에서 혀를

마비시키는 고추를 먹고 들어갔다는 분입니다...^^* )

 

 얼마나 마음이 혼란 스럽고 안타까웠으면 엘리사는 하사엘을 넋을 잃고 혼신을 다해 쏘아 보았는가?

그러다가 그 갈등이 얼마나 심했으면 울기까지 하겠는가?

 이유는 12절 이하에서 곧 나오지만 하사엘이 왕을 죽이고 등극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잔인 무도하게 죽일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엘리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쌍하게 죽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상이 스치며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그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리고 순간...유혹에 시달렸을 것이 아닌가?

얘기하지 않고 죽일 수만 있다면...

그러나

주님의 일에 끼어들수 있단 말인가?

어떤 가공할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것인가?

주님은 왜 자신으로 하여 알게 하셔서 이 고통을 주시는가?

이 고통을 허락하신 개인적 이유가 무엇인가?

눈 앞에 가증스럽게도 자신을 '개'라고 낮출 이 자는 또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인간이 과연 사랑할 만한 존재인가?

주님은 왜 이렇게 이 세상의 일을 이해치 못하도록 운영하시는가?

왜 주님은 악한 자를 살리시는가?

과연 공의란 무엇인가?

예언을 하는 것은 이토록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일까?

예언자의 의무는?

.............................

머리가 깨질 듯했을 것이다.

 

눈 앞에 악의 원흉이라 생각되는 자가 있다.

 

그래도 그는 그냥 두었다.

주님은 살아계시고

주님은 선이시고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이 계심을 그는 믿었다.

 

비록

그 결과가 고통일 지라도

그는 순종을 선택했다.

 

 아침에 일곱시에 영어 회화반이 있다.

의사들의 모임이라서인지

영어도 잘 안되는 나의 처지는 누구도 모르는 지

토의 내용이

'부시'

'김정일'

'하나님의 뜻'...........이었다.

 

알아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차대전의 독일 군에서도 '예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많았고

부시는 모든 일을 결정하기 전에 기도하고 하며

기독교 자문단이 대단위로 있다고 한다.

 

그래도 결과는 전쟁광처럼 비치는 상황에 대하여 어찌 이해할 것인가?...라는 ...

 

난 입이 굳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냥 주님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한 가운데 그는 서 있을 뿐이다.

 

아침 묵상을 보니

그가 엘리사 같은 자는 전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람 앞에 물으러 온 하사엘인지 아람왕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인간의 눈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걸 통해 세상은 주님의 뜻 아래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

기도하는 자들의 역할은

기도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려 하고

기도를 통하여 급박한 일을 도우는 중보의 일도 아주 중요하지만

종국적으로 우리가 해야할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이면 뜻대로 이루소서..하고 기도한 후

결과가 우리 감성에 맞지 않더라도

그냥 순종하고 맡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과 다르다.

믿음의 초보들과는 또다르다.

이제 묵상하고 기도한 후

주님의 기뻐하시는 자로 여김을 받는 자들은

마땅한 의무가 있다.

 

눈이 튀어 나올 듯

눈 앞에 확실한 대적이 보여도

주님의 뜻이면

절대적으로 순종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다.

 

주님은 알 수가 없는 존재이시다.

가히 만들어진 존재가 우리의 의식 속에 가두어

그 분을 판단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며칠 전의 아람 군대 물리치시는 방법 조차 예상할 수 없는 우리가 말이다.

 

그냥 그 분은 선하시며

그분은 진리이시고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합력하고 계심을 믿고 의지함이 너무나 필요하다.

 

이제 세상은 우리의 가시 능력을 벗어났다.

미국과 강대국들은 군비 증강에 몰두할 것이며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북한은 극을 달리며

처처에서 기근이 있고

재앙이 동시 다발 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간단히 늘어 놓고 나니

세상은 계시록의 마지막을 연상시킨다.

 

주님은 이런 시점을 맞이 하여

눈이 튀어나올듯 참는 엘리사의 인내와

눈이 튀어나오도록 사랑하는 그 사랑과

절대적으로 주님의 뜻이라면 명확히 아는 지혜와

주님의 뜻이라면 혀를 깨물고 참는 인내와

참고 예언을 말씀해 주는 의지가 필요하다.

 

모든 것이 주님이다.

주님이 아니시면 그 조차 할 수가 없다.

 

적용

 

1.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대비한다.

 

2.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주님의 역사였음을 인식하고 참는다.

 

3. 화도 복도 주님이 주신다는 욥의 고백을 묵상한다.

 

4. 성경을 5장 읽겠다.

 

5. 마지막 날을 대비하여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겠다.

 

기도

주님..

엘리사의 그 마음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를 통하여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뜻의 광대함을 또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준행해야 하는 우리의 순종적 의지의 필요성에 대하여 또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마지막이 가까워지는 날에

엘리사의 품성을 닮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가까이 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냥 주님이 주시는 편안하고 나른함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정적 차원의 사랑과 긍휼과 인내가 아니고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기는 하지만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녹아내리는 사단의 세력의 약화를 경험하여지는

그런 사랑과 겸손과 긍휼과 인내의 매일이 되길 원합니다.

그게 영혼 깊숙이 스며들어와

이제는 제 품격으로 발휘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님이 되실 수 없다면 아예 주님이 되지 않으실 것이다.

 - 성 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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