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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하7:11-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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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하7:11-20)

주하인 2006. 10. 14. 14:40
(열왕기하7:11-7:20) 

 

 

16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문명이 덜 발달하면

훨씬 믿음의 역사가 잘 일어난다. 

선교 다녀와서 그 현장에 다녀오니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어딘지 모를 깊은 감동이 있다. 

논리적 이유를 들이대기 어려운 것 보아서 성령의 역사다. 

 그러나

물질이 발달한 곳에는 예외없이 성령의 역사가 줄어든다. 

성령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약아지니...

아니.. 

영악해 져서 그렇다. 

어제 일본에 선교사로 나가신 여목사님이 진찰 오셨다. 

 일본은 전도가 극도로 어렵단다.

유럽은 거희 유물화되다 시피한 교회가 천지다.

미국도 비슷해져 간다고 하고..

우리나라는 어떤가?

작년과 다른 올해의 우리 직장내 영적 뜨거움의 차이는 확 표시난다.

사람들의 자신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받고

끝없는 사탄의 속삭임에 자신도 모르게 무너지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그게 되겠어?

가능키나 한 이야기야?

라는 기본 속삭임이 있다.

 그 속삭임의 기본에는 '인간의 눈'으로 모든 걸 자르고 판단하려는 욕구가 기본이고

그 것은 돌려 말하자면 하나님의 무소부지성, 전지전능성에 대하여 인정할 수 없는

비 신앙적인 생각이 은연 중에 우리 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이 살아계심을 알기에 믿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원속의 티끌 보다 못한 자들이

한계 속에 갇혀있는 적은 피조물들이

오직 자신의 경험과

오직 자신의 감각과

오직 자신의 머리 속의 뉴론 들의 연결 속도 만을 믿고

그것에 의하여 판단을 하며

오히려 영원하시고 불멸하시며 광대하신 그 분 하나님을 판단하려 하다니

그게 가능키나 한 이야기인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도자기가 어찌 장인에게 뭐라 하겠는가...라고 성경에 대 놓으셨겠는가?

 

 아직 밀림 그 성령의 꿈틀대는 현장의 감동이 식지 않고

그 식지 않는 기쁨이

살아계신 성령의 증거와

그 성령을 무대뽀 - 죄송 ^^;; -로 따르는 달란트 대단하신 선교사님의 업적을 통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리도 역사한다는 것을 보고 온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냉랭해질까봐

주님께서 미리미리 경고하시는 것 같다.

 

모든 걸 주님께 맡겨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리라.

그 증거는 거기에도 있었고

여기 성경 묵상에도 있다.

오늘 너에게 말하는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래도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참새 한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기도

 

주님

늘 주님을 상고하기 원합니다.

세상이 혼잡해져갈 수록 자꾸만 주님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주님의 말씀이 딴 나라 언어처럼 멍하니 들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주님 말씀대로 이루어 짐을 알고

겸허히 주님께 집중하길 원합니다.

어느때인지 알수 없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감사하며 받습니다.

모든 말씀 예수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다.

- 조지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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