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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주님이다(왕하8:16-29)

주하인 2006. 10. 17. 10:16

(열왕기하8:16-8:29)

  

19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22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26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28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     밀림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탄 차령 10년의 일제차가 수도 없이 멈추었습니다.

 날은 덥고 .. 뒤에 보이는 아이가 병원 이사장님 손자, 기사가 인도네시아인 신학교 교수..

 고치고 나서는 미안하여  ' 이니 모빌 빠구스 스칼리(이차 최고다..)'를 되풀이 할 정도로 고생은

 했지만 주님이 명분이 되니 아무 불만 없었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추억이 되었지요... )

 

참 많은 왕의 이름이 들먹여 집니다.

아합

여호사밧

여호람

요람

아하시야

 

그리고...

다윗

 

 왕들끼리의 교류가 볼만하다.

아합을 중심으로 혼인이 이루어져 끼리끼리 얽힌다.

아하시야 왕은 요람왕과 아주 친해 보인다.

같이 싸움에 나간다.

요람이 아프자 아하시야 왕이 문안하러 온다.

어찌 보면 연합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형제 나라로서 서로 굉장한 반목을 보이는 나라가 유다와 이스라엘 아닌가?

어찌보면 아름다운 해빙의 무드일 수 있게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정신이 없어 보인다.

에돔이 배반해 나간다.

이스라엘에서 아사헬이 아람왕으로 분리해 나갔다.

 왕들이 오래 치리하지 못한다.

여호람은 8년

그러나 이 기간 조차 다윗의 덕이다.

그 아들은 일년

요람도 아람왕과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어 병이 생겼다.

 

 아합은 악의 대명사이다.

그 악은 주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주님을 철저히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이다.

 그의 이러한 삶의 태도가 상당한 매력이 있나보다.

 

항상 경건하고 우아한 것 보다는 약간은 묘하고 독특하고 어딘지 모를 퇴폐적인 분위기가 죄악성을 가진 인간들의 원죄를 자극하여 그게 꿀에 모여 들어 빠져 죽는 파리 떼 같은 현상을 유발함과 비슷한 이유일 듯 싶다.

 증거로서 주님께서 안타까이 선지자들을 통해 질책을 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늘 이런 자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우습기도 하다.

혼나도 혼나도

아합 두목을 필두로

졸개 들이 모여서

서로 옹기 종기 돕고 위로하고 산다.

외부에서

자기들의 틀을 깨려 하니

지들끼리 연합을 해서 싸움도 하러 간다.

그러다가 다치니까 '호~'해주러도 간다.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보니 아름답기 조차 하다.

귀엽기도 하고...

 

그러나

항상 그렇듯 마귀의 장란은 언뜻 보면 아름답지만 댓가는 쓰다.

요절한다.

절대적인 특징이 있다.

'분열'된다.

자기들끼리 뭉치기 때문에 소외되는 자들이 나온다.

그들의 분열을 배운 또다른 악인 들에게 배반이 된다.

아름다울 듯 하지만 아프다.

훨씬 나쁜 결과가 온다.

 

그럼에도 이러한 권선징악 적 결과가 반드시 있는 것 만은 아님은 여호람의 잘못을 용서하시어 질책을 뒤로 미루시는 이유가 '다윗의 계보'에 대한 주님의 너그러우심 때문 임이 보인다.

 이런 것 같다.

내 큰 잘못을 묵인하고 용서하여서

날 주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시고

지금까지 위로하고 이끌어 주시는 그 큰 은혜가

우리 집사람, 부모나 형제....

혹은 다른 지인들의 '중보기도' 탓인 듯 싶다.

새삼 중보를 주님께서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 가 알 것같다.

 

세상은 참으로 험악하다.

너무 교묘히 믿음을 파고들어 혼란케 한다.

심지어 한발 들고 뒤로 물러나 보면 이건 아닌 것을...

'합리'

'인간애'

'비교'

.......의 이유로 해서 얼마나 많은 혼란을 가져오는가?

 

 주님의 이유을 들면

'고리타분'

'요즘 세상'

'유치'..........의 이유로

많은 직 간접의 공격이 있다.

 

 

 세상을 보면 비슷한 일이 많다.

 

 '종교 대타협'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안 좋을 수도 있다.

 

 '북한을 무조건 감싸 안음'

 인도적인 일이다.

그러나 안좋은 결과가 최근에 나오지 않는가?

 

부시의 '악의 축 제거'

좋은 명분이다.

그러나 많은 부작용 및 인명 살상과 기독교에 대한 반감등 수많은 오류를 가져왔다.

 

'성전 건축'

...........

 

' 동성애'

' 안식일'

..........

 

 

결과는 '세상의 혼란'이다.

세상 모두 각 개인이 주인이니 어찌 혼란치 않겠는가?

이제는 누구도 그 혼란에 대하여 제재를 하고 잡을 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없게 되었다.

그래..

바른 소리 하면 얼마나 많은 리플이 달리는가?

 

 결과는 얼마든지 보여지고 있다.

세상에 펼쳐지는 재앙 등을 떠나서

건강에 국한시켜도

젊은이들의 주님을 잊고 삶은 그들의 건강이 옛날에 볼 수 없을 정도의 강도로 나온다.

성인병을 가지는 아이들.

요절하는 젊은이들.

골다공증이 있는 젊은이들.

무엇보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심한 질병들.

 

이혼은 늘어나고

싸움과 쟁패는 ...

진료실에 맞닦드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10년전과 또 다르다.

암환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 모든 것이

오늘 보여지는 묵상처럼

모든 판단 기준을 인간에 두어

'아합'의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좇아

끼리끼리 이합집산하고

서로 만 박수쳐주는 당파의 삶이 일반화되는 등...

'주님을 멀리하고'

'주님이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하는'

지나친 인본주의의 결과물이다.

 

 아직은

다윗같은 아름다운 신앙인들의 중보가 살아 있는 때이다.

주님의 노함이 그들의 중보를 넘어서는 순간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종말의 때로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뒤에 운행하시는 주님의 뜻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이 세상이 주님의 선하신 성령의 열매로 채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판단 기준이

비록 우리 육신에 비본능적인 이유라서 따르기 어려워 보이고 고리타분 해보일지라도

주님을 따르려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는 의욕 만이라도 보이는 순간

그 분은 너무 기뻐하신다.

 

어찌나 기뻐하시는 지

그 어려운 결단의 순간

은혜가 퍼부어질 때도 있다.

 

어제 써놓은 감격의 글이 그런 순간이다.

 

기도

 

주님.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그 세상에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저도 모르게 그들과 비슷한 이상을 추구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주님

지혜를 주시어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용기를 주어서 그 상황을 과감히 차고 일어나게 하시며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은

어떠한 의혹이 와도

어떠한 유혹이 있어도

쳐다보지 않을 담대함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곧 있을 듯 싶은 마지막 날에

주님의 칭찬 받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권세란 없다.

- 애드리언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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