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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호9:10-17)

주하인 2006. 6. 20. 12:27

 (호9:10-17) 


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 쬐는 사막을 힘겹게 걸어가다

전혀 예상치 못하던 곳에서 꿀같은 포도를 만났을 때 그 감동은 어떨까?

죽음이 목전에서 왔다갔다 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으며

살갗을 찢는 듯한 태양으로 고통 스러우며

입안은 온통 말라붙어 쩍쩍갈라지는 아픔 가운데서 만나는 포도의 환희는 감히 상상키 어려운 기쁨이었으리라.

 

 사람들이 주말농장에 열광하고

농부들이 경제적 이득이 많지 않으면서도

수없이 오랜 세월을 그 농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신비 때문일 것이다.

그 생명이 올라오는 생기 탓이리라.

 무화과 나무라면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와 더불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과실수 인데

첫 농사 짓던 초심 농부가 그 무화과에서 올라오는 첫 열매를 볼 때 어떠한 기분이겠는가?

경이가 아니겠는가?

 

 주님의 넘치는 사랑이야 어찌 말로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마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위한 오늘의 표현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큐티 하기 전에 십자가를 잠시 묵상하였다.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께서 내려다 보시는 아래쪽에 내가 있었다.

예전 처럼 밉상은 아녔지만 그래도 일상의 죄덩어리 때문에 더러울 듯한 나를 보면서 그 분 예수님의 마음일 듯한 마음을 묵상해보았다.

 주님은 날 사랑으로 보심이 분명했다.

 그 아픔 가운데서도 어찌 그러실 수 있을까?

남도 아니고 나 같은 추악한 자를 ..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의문이 들자 느낌이 왔다.

주님은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미움이 들수가 없는 분이었다.

그분은 사랑으로만 날 보실 수 밖에 없으셨다.

마치 성령충만 했을 때 미운 사람 보면 하나도 밉지 않은 거 증폭 시키면 주님 예수님의 마음이 되리라 생각 되었다.

성경을 읽자

주님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 되어 있다.

 저처럼 날 보실 때 놀랄 만큼의 충격적 기쁨이시었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라도 맺힐 듯 감동스럽게 날 보시고 계신다고 하신다.

 

  아........

 

 과거엔 전혀 믿기지 않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가긴 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주님은 날 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넘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의 그 아픔 속에서도 날 전혀 원망하지 않으신다.

그냥 애처러운 눈으로 날 보신다.

 

 그 사랑의 강렬함이 오늘 구절이다.

 

그 사랑이 그리 크심에

우리의 어리석음이 이토록 안타까우신 것이시다.

 

그분 .

그 사랑의 결정체를 떠나서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이토록 간절히

이토록 열렬히

이토록 충격적으로

사모하는 주님의 그 타는 가슴을 뒤로하고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삶은 바로 여기고

향기가 여기서 나는데

어디로 가서 죽음을 방황하는가?

어디로 가서 썩는 냄새를 맡고 있는가?

주님의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은

마취요 마비고 사망이고 죽음이다.

그것은 느낌이나 확신이 아니고

진리이기에

그 분 하나님은 저리도 간절히 우리의 실족과 타락을 경계하시는 것이다.

 

이제 발견한 이 포도같은 우리들이

신기루 처럼 그 부여 잡은 주님의 뜨거운 손 사이로

마치 뜨거운 모래가 흩어져 내려가듯이

주님을 벗어나니

얼마나 주님께서 안타까우실 것인가?

 

이제

주님의 그 간절한 사랑의 실체를 다시금 보고 있다.

일상을 돌아보리라

그 분이 원치 않는 모습이 무엇이 있는가 반성하겠다.

그 분 사랑의 흔적을 다시금 되돌아 보겠다.

 

그리하여

십자가 위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내 이웃을 동일하게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인식하고 영혼 속에 채우겠다.

 

그래서

주님의 타는 심장으로 

내 영혼에 사랑으로 채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하나님의 열망과 우리의 열망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 존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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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F. P. Schubert/ Symphony No.8 (미완성) 1.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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