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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전함(단7: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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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전함(단7:1-16)

주하인 2006. 6. 17. 10:31

(다니엘7:1-7:16)
 

 

8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진실한 회개는 매일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 가는 것이다.

                                                                 - 마틴 루터

 조급함은 마귀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마귀이다. -칼융

 

 

 

  1. 에브라임

 

 1) 에브라임을 지칭하심은 무슨 뜻이신가?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은 야곱의 축복을 받을 때  손을 엇갈려서 형인 므낫세를 넘어서는 파격적 축복을 받은 자이다.

 유다 만큼은 못해도 12지파 중에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자로서 주님을 실망시키면서 이스라엘 나머지 10지파에 속해 버린 족속.

 

2) 난 에브라임과 다른가?

 혹시 주님의 그 십자가 , 순전한 사랑을 받으면서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2. 열방에 혼잡되니  

 

 1)  열방

; 세상

 

 2) 혼잡되다'는 뜻은 무엇인가?

; 세상에 정신이 분산되어 있다.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으로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에 반반씩 - 그것 만이라도 다행은 아닌가?  심지어 10% 의 시간도 주님을 위해서 못 받치는 건 아닌가?-  나뉘어 있다는 뜻은 아닌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말씀을 나누고 싶어도 사람 들의 눈치 때문에 적당히 꿀바르고 하고 싶은 얘기를 혹시 시험에 들까봐, 아니 스스로 확신이 흐트러짐에 따라 나누지 못하고 마는 그런 현상도 혹시 '혼잡'은 아니지 않은가?

 

 3) 혼잡되지 않고 순수하게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디까지의 의미인가?

 수도자적인 삶

 주님 재림 대비의 철저한 경건의 삶이 최선인가?

 

 

 4) 수도자 적인 삶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는 것인가?

  굳이 유다보다는 에브라임을 거론하신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특별히 아주 뛰어나지 않은 신앙인인 나에게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락하신 느낌이다.

 

 

 5) 아니라면 어디까지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일상의 순전함'일까?

; 전체적으로 성경을 통달하고 수없는 금식과 회개와 통한의 삶을 전개하며 늘 주님을 묵상하고 이 땅의 소산물 전부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육체의 소욕으로 버리고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늘 가슴 속에 평안이 있고 마음은 무한대로 넓어지며 작은 스치는 바람에도 눈물이 날 감성이 날 지배하게 되니 그 얼마나 기쁠 것인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세상은 날 붙든다.

자식으로

부부로

부모로

직장인으로

생활인으로....

 매일 매일 부딪치는 세상의 유혹 속에서 어떻게 해야만 혼잡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상기한 것처럼 유다에 대한 주님의 바람 처럼 살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난 엄연히 에브라임 일 듯싶은데...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을 생각하니

그 얼마나 기쁜가 !

그 생각을 하고

그 이름을 호흡하고

이 땅에서 그 일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 프레데릭 파버 -

 

 

가 ) 에브라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함이 좋을 듯싶다.

 지나친 유다에 대한 바람도 , 사마리아의 방탕함도 난 아니다.

 

나) 순간 순간 오는 혼잡에 대한 유혹은 어찌 대처하는가?

 

 . 주님을 늘 의식해야 한다.

  면전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늘 살리라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 일상에서의 기준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필요 이상의 금전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할부나 대출은 가능하면 피한다....

     아침의 몇분은 주님 먼저...

     취침 전 회개의 시간....

 

 

. 특정한 시간을 주님께 여쭙는 시간으로 .

 ...............

 

 

 

   3.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 떡을 화로에 굽다가 그냥 뒤집지 않으면 밑은 타도 잠시 동안 위의 모습은 괜찮아 보일 수 있다.

 그게 뒤집지 않은 전병이다.

겉 모습은 건전하고 거룩해 보이고

집사고 장로여도

인격의 변화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면...

 

회개는 전병을 뒤집는 집게이다.

 

 

 

적용

 

1. 주님께 여쭙는다.

 나는 어디까지 혼잡지 않음을 원하십니까?

 

2. 오늘 있을 열린 아버지 학교에서 내가 혼잡해 지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혹시 그 봉사가 내 감각의 만족이 되려는 건 아닌지?

 그들의 영혼을 위해..

 주님의 기뻐하심을 위해 ..

 믿지 않는 가정이 주님의 복음이 들어가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 주소서

 그 자리에 선다는 강력한 의식을 불어 넣어 주소서

 

3. 난 뒤집히지 않는 전병은 아닌지 반성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 순전함에 대하여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순전하기 위해 세상과 벽을 쌓을 수도

순전하기 위해 어찌하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을 때 반대 급부로 주님의 기뻐하심을 더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감사합니다.

세상과 주님의 뜻 사이에서 회개와 늘 구하는 지혜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이는

뒤집혀 지지 않고 눌어 붙어 버린

겉으로만 멀쩡한 타버린 전병의 꼴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세상 살면서

어디까지를 내가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것을 주님을 위해 해야 하는지

지금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인지

날 위해서 하는 것인지 

늘 인식하고 살게 하소서.

 

필요없는 일에 가슴앓이 않게 하소서.

필요한 일 넋놓고 잊어 버린 줄도 모르고 살지 않게 하소서.

 

힘을 주소서.

특별한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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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유키구라모토/ Lake Lo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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