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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카이로스의 삶을 살리라(호6:1-11)

주하인 2006. 6. 16. 09:19

(호세아6:1-6:11)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렇지요?

우리의 찢김의 아픔도

우리가 맞는 괴로움도

다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시지요?

그에 따르는 온갖 부수적인 자책감이나 실패감.....  필요없겠지요?

단지 저에게 필요한 건

이런 상황에서 그게 주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멍하니 당했던 이 어리석음과

그에 따른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회개'하면 되겠지요?

주님?

 

그러면 되겠지요?

 

마음이 편해집니다.

더구나 우리 주님이 도로 도로 낫게 하실 것이고 , 또한 싸매어 주실 것이기에  입니다.

 

 어제는 먼길을 직장동료들과 한 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주님 안에서 잘 익어가는 듯한 동료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오랜 쓰라림이 가슴 속에서 스물 거리더군요.

나만.. 왜...

ㅎㅎ

 

주님이 수도 없이 말씀 속에서 나에게 '약함이 강함'이다, '약할 때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주셔서 예전과는 다른 성공을 보였음에도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돌덩어리는 완전히 치워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걸 알고 주님은 오늘 아침 또한번 이렇게 적나라하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 낫게 하실 것이요  싸매어 주실 것" 이라고 말입니다.

 

아유.. 살아계신 그 분 하나님 ~*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수년 전  사고 후 깊은 자책에 있을 시 나사로의 무덤 속을 묵상했던 적이 있다.

어둡고 냄새나고 몸은 천으로 둘러싸여 꼼짝 못하고, 살은 썩는지 온통 따끔거리고...

그 무엇보다 힘든 것은 밖에서 들리는 마리아와 마르다 누이의 한칸 떨어진 소란에도 불구하고 아무 도움도 청할 수도 , 그들이 도울 수도 없다는 절망이었다.

 

 그게 그 당시의 내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치 예수님이 3일 후에 부활하듯이 ..

그 일을 통하여 난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부활.

 

오늘 구절도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신다고 하신다.

그 이틀이 지난 3일의 기간이란 과연

어느 상황인가?

어느 정도의 현실의 기간인가?

난 지금 어느 상황에 있는가?

 

부활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나에게 부활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 같지 않다.

 

 내 안에 깨어지지 않은 수 없는 죄악과 어리석음이 하나하나 깨어지고 마치 누에가 고치를 뜯고 나비로 환태(換態)되는 수없는 부활의 순간을 거친 후에

나는 비로소 우리 주님이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는  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예수님 그 분 앞에서 살리라는 그 고백처럼

움직이는 내 동작 하나 하나가 그 분에게 드리는 다윗의 춤이 될 것이며

발성하는 목소리 한 소절 한구절이 아름다운 찬양처럼 울려나게 될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 분 앞이 될것이며

어디에 있더라도 그 분은 내 우편에 계시게 될 것이다.

 

아 ..

나는  그 앞에서 살리라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해가 뜨는 것이 확실한

   것 처럼 그 분은 나오실 것인 바 그 분은 겨울 비-늦은비- 처럼 오실 것이요, 땅을 적시는 봄비-

   이른비- 처럼 오실 것이다.)

 

 그분의 나오심이라니..

그래서 우리에게 새벽에 해뜨는 사실이 정확한 것처럼 틀림없이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현재의 내 삶은 답답함과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흙같이 보이는데

그리고

그 분을 기다림은 무한정인 듯 긴거 같은데...

틀림없이 일정하게 반드시라니..

 아무리 부르짖고 아무리 금식하고 아무리 회개해도 그 분은 아무 응답도 없고 흔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나 혼자 절해 고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만 무심하게 들리는 듯한데

어떤 때는 깊은 사막에 뙤약볕에 혼자 땀흘리고 살갗이 타는 듯 아픈 것 같은데

그때 주님 도우시라고 그리 소리쳐도 보이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새벽볕 같이 일정하시다니...........................

 

 현재의 내 시간은 너무나 길은 것 같아도 과거를 돌아보면 그 분은 시기에 맞추어 정확히 임하시고 날 도우시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인도하신게 분명하다.

 

 마치 수년 전 삼풍 백화점 지하에서 보름이 지나서도 멀쩡히 살아나온 사람들의 생체 시간이 다른 것처럼 주님의 나라는 천년의 시간이 이곳의 하루같고 이곳의 하루가 그곳의 천년인 것처럼 우리의 객관적 시간은 흘러가지만 나와 주님 만이 알고 있는 바로 이 주관적 시간 , 즉 카이로스은 늘 일정하다.

 내 필요한 첫사랑을 '이른 비'처럼 내리셔서 말라 있던 내 영혼을 적시시고

주님의 나라를 향해 발걸음 옮기는 동안 지치고 쓰러지려 할 때 늦은비의 은혜를 베푸사 쩍쩍 갈라지려던 영혼을 보다듬어 주신다고 하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틀림없는 약속이다.

힘없고 지쳐도 도우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니 힘이 나고

은혜로 퍼부어 주시면

이것은 주님의 애처러움의 표현이니 이 아니 기쁜가?

걱정은 필요없다.

답답함도 필요없다.

늘 주님에게 고정이 되어 있다면

오늘 주신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힘차게 기분 좋게 근심걱정 내려놓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써비스..ㅎ.. 그냥 넘어가려니 서운해서..   카이로스의 시간.. 제목이 되나? ㅎㅎ)

 

 

 

적용

 

1.  이전에 나와 함께 하셨던 주님을 회상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2. 고통은 곧 끝날 것이고 부활을 경험할 것임을 믿고 기뻐하자

  나의 아프고 쓰린 상처는 주님으로  싸매질 것이고 감싸질 것이다.

 

3. 늘 주님 앞에 산다는 신앙을 가지고 살자

  면전 신앙, 코람데오

 

 

 

기도

 

 

 주님

주님 닮으려 애쓰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미어지려고 합니다.

주님 명령 대로 살려고 애쓰면서도

자꾸만 넘어지는 제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속상합니다.

가끔은 이대로 일어나지 않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틀림없이 위안하시고 격려하실 주님의 말씀이 있기에 힘을 냅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한번 살아계신 주님의 입을 여셔

제 영혼에 깊은 감동을 넣어 주십니다.

 

이전에 받아보지 못했던

깊은 사랑을

우리 주님을 통해 체험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신 분.

늘 동행하길 원합니다.

이전에 보였던 선진들의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늘 단속하소서.

이 생의 삶이 힘들어도

비록 낮아져도

주님이 계시면 전 좋습니다.

언젠가

비가 내려 내 갈급한 영혼을 또 감사 주시겠지요.

지금은 최소한 그렇습니다.

감사하시고 고마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다
.

- 닐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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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P.Sarasate/ Zigeunerweisen Op.20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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